mayse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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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 가족
‘옛 폭군’ 아버지와의 대화
▶ 소설가 김훈의 산문에는 아버지를 묻던 날 여동생들의 울음소리에 작가가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고 꾸짖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서운해하셨지만 자신은 세상의 바닥을 박박 기던 아버지의 편이었다고 늙은 아들은 말했습니다. 여기, 집안의 폭군이었던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최초의 대화가 있습니다. 모든 아들은 아버지 편일까요? 누군가의 자식인 당신은 어떠신가요? 서로서로 인터뷰하는 새로운 가족의 초상, 독자 여러분도 도전해보세요. 투고는 gajok@hani.co.kr.

아버지는 독재자였다.

집안 대소사부터 저녁 메뉴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 마음대로였다. 이사를 가거나 가구를 들여놓거나 심지어 자식들의 진로를 결정할 때도 아버지의 의견이 늘 먼저였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처럼 아버지가 결정하면 가족들은 해야 했다. 가족들의 이견은 무시되거나 버럭 한마디로 간단히 진압됐다. 자신의 뜻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같이 사는 엄마나 장모의 생각은 애초에 고려할 바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유복자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는 아버지가 아비 없이 자라서 아버지 무서운 걸 모른다고 탄식하곤 했다. 스무살이 된 아버진 손에 쥐고 있는 게 없었다. 형제들이 있었지만 자신들을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싸움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아는 주변의 권유로 권투를 배웠다. 그 주먹으로 세상과 대적하며 살아왔다. 결혼 뒤 선수 생활을 접고 권투장에서 사범을 했다. 그 시절 아버지와 어릴 적 시내에 나가면 몇 걸음에 한번씩 모르는 사람들이 “형님” 하고 인사를 해 오곤 했다. 어린 아들은 그때 ‘나도 커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돼야지’ 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맘을 먹었다.

미군 기지에 드나들면서 큰돈을 만진 아버지는 그 돈으로 노름방에 드나드는 지인들에게 돈놀이를 했다. 고등학생 때 갓난 여자아이를 들고 집에 왔다. 애엄마가 못 키운다고 하니까 우리가 키워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엄마는 달포를 앓아누웠다. 그날로 우리 집엔 배다른 막내 여동생이 생겼다.

구제금융 사태 때 빌려준 돈을 떼이면서 집안이 크게 기울었다. 술만 취하면 아버지는 “이것들이 나를 뭘로 보고. 그놈들 잡아 족칠 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살던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했다. 용돈벌이라도 한다고 아버지는 저녁에 노름방으로 나갔지만 잃는 날이 더 많았다고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진 무서웠다. 거짓말을 하거나 생떼를 쓰는 일을 아버지는 특히 용납하지 않았다. 어릴 적 동생과 엄마 앞에서 재롱을 피우다가도 아버지가 오시면 급하게 방으로 숨어서 자는 척했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청국장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달 내내 식탁에는 아침저녁 청국장이 올라왔다. 집안 가득 진동했던 청국장 냄새는 가부장의 냄새였다. 동생은 그때 이후로 청국장을 먹지 않는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기 마련. 나나 동생의 머리가 굵어지면서 아버지의 치세에도 균열이 생겼다. 아들들이 법대나 경영학과에 가길 바랐던 아버지 뜻을 끝내 꺾고 난 미대에 진학했고 동생은 국문과엘 갔다. 1975년 엄마와 결혼하면서부터 권력을 틀어쥔 이래, 철권통치를 이어가던 아버지가 20여년 만에 맞닥뜨린 최초의 불복종이었다.

이제 자신도 아버지가 된 아들은 아버지를 더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만 짜증이 날 뿐이다. 권력은 기울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아버진 결코 꺾이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은 걸까? 아니면 모르는 걸까? 진갑이 5년이나 지났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하루에 2시간씩 운동을 한다. 성마르고 괴팍한 성정도 잦아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부자 사이가 그렇듯 내 나이 마흔이 되도록 아버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걸까? 아내와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적은 있었을까? 결혼을 해서 아버지가 된 내가 이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한달 만에 고향집에 갔다.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아내에게 “엄마와 할머니를 모시고 지민이(딸)랑 찜질방에 다녀오라”고 부탁했다. 지난 토요일 밤, 아버지가 좋아하셨다는 <록키>디브이디(DVD)와 캔맥주를 들고 안방엘 들어섰다. 아버지는 티브이(TV)를 보고 계셨다.

한때 집안의 독재자였으나
더이상 무섭지 않은 아버지
고향집에 가 ‘록키’ DVD와
맥주를 들고 그와 마주앉았다

“임마, 임마 좀 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애아빠라구요
그렇게도 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저도 부부싸움 땐 아버지 모습이…”

 아부지, 뭐하세요?

아버지 …….

 아부지~이.

아버지 왜? 뭐?

 아버지랑 영화 보면서 맥주 한잔 하려고요.

아버지 갑자기 뭔 영화냐. 맥주는 뭐고.

 영화 <록키>아시죠? 아버지 이 영화 좋아하시잖아요.

아버지 연속극 할 시간인데. 그나저나 지민이는 어디 갔냐?

 아버지 주무실 때 엄마랑 할머니 따라 찜질방에 갔어요.

아버지 날 추운데 웬 찜질방이냐. 애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괜찮을 거예요. 근데 무릎은 좀 어떠셔요?

아버지 션찮다. 그렇게 걱정되면 약값이나 더 보내라.

 네. 엄마 몰래 부쳐 드릴게요.

아버지 (싫지 않은 목소리로) 니 엄마 알아도 상관없다.

 이 영화 보면 옛날 생각 나죠?

아버지 다 지난 일 생각하면 뭐하냐.

 처자식 생각에 권투선수 그만둔 거 후회 안 하셨어요?

아버지 니들 때문 아니여. 내가 하기 싫어서 그만둔 거여.

 아버지 권투 사범 할 때요. 아버지랑 목욕탕 가려고 시내 나가면 후배들이 아버지한테 막 인사하고 그랬잖아요.

아버지 걔네들이 다 아부지한테 한대씩 맞은 애들이지.(웃음)

 그래요? 하긴 저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도 아부지 얘길 했어요. 자기 젊었을 때 아버지가 나쁜 놈들 혼내주는 의적이었다고.

아버지 선생 이름이 뭐냐? 근데 그나저나 뭔 옛날 일을 자꾸 얘길 해쌓냐? 임마 너 또 사고쳤냐?

 제가 무슨 사고를 쳐요.(웃음)

아버지 그거 맥주냐?

 네. 여기.

아버지 …….

 아버지는 살면서 후회해 본 적 없으세요?

아버지 ……. 임마 너 술 마셨냐?

 지금 마시잖아요.(웃음) 저 고등학교 때 지은이(가명) 데리고 오셨잖아요.

아버지 임마, 그 얘긴 갑자기 왜 해?

 그냥요. 결혼하니까 아버지 마음 이해할 것도 같고 그래서요.

아버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지민이 엄마에게 잘해. 임마.

 그럼요. 그때 엄마한테 미안하지 않으셨어요?

아버지 ……. 남자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 아냐. 임마.

 남자는 안 할지 모르지만 남편은 해야죠. 아부지 같은 남편은. 그리고 다 큰 아들한테 임마, 임마 좀 하지 마세요. 저도 애아빠예요.

아버지 넌 아비한테 늘 애기여 임마.

 사실 아부지…. 저 아부지가 예전에 많이 미웠어요. 엄마나 할머니한테 막 대하는 거 정말 싫었거든요.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도 했어요. 근데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지민이 엄마랑 다툴 때 나도 모르게 아버지 모습이 나와요. 버럭 화내고 소리 지르고. 아들은 아버지 닮는다는데 정말인가 봐요.

아버지 ……. 못난 아비 닮은 게 자랑이냐. 임마. 다른 자식들은 잘만 자랐다. 조강지처한테 잘해라. 나중에 후회하는 것까지 닮지 말고.

여기까지 얘기하고 아버진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를 떴다. 티브이에선 록키가 정육공장의 고깃덩어리를 샌드백 삼아 치고 있었다. 난 안방을 나왔다. 아버지와의 첫 대화는 빙빙 주변만 겉돌다 급하게 끝나 버렸다. 마치 한참을 잽만 날리다 어퍼컷 한방에 케이오되고 만 권투 경기 같았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줄만 알던 아버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40여년 세월의 강을 30여분 만에 건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엄마를 생각한다면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어쩌면 미안한 마음의 일단을 내비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지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 엄마께 전날 있었던 일을 일러 드렸다. “그래서 그런지 생전 이부자리 한번을 안 깔던 양반이 그날은 이부자리를 깔고 자고 있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께 용돈을 부쳤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아부지, 용돈 부쳤습니다. 주말에 지은이 오면 같이 데이트 다녀오세요. 지은이한테 얘기해놨으니 들어오는 길에 엄마랑 할머니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가지고 오시고요. 나중에 후회하시기 전에요.^^;;” 아버지는 답장이 없었다. 주말이 기다려진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은 아들

(*위 글은 2015년 12월4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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