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달라지셨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우리 식구들은 다들 각자 바빴다.  자연히 서로에게 소원한 부분이 많았고 학창시절부터 소원해진 관계가 계기없이 개선될 이유는 없었기에 그냥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내가 결혼한 후엔 멀리 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주중에 새롭게 갖게 된 직업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주말에는 시댁에 다니고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빠가 딸에게 가진 애정이 어떠하든 표현되지 않고 공중에서 산산히 부서진 지 오래였고, 아빠와 난 그냥 알면서도 그걸 지나쳐버렸다.   

임신 전에 오래만에 아버지와 텔레비전을 보는데 뜬금없이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지 오래인 현무 씨가 우리 동네에 산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당시 난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라 아버지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 뒤에도 시간을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개선없이 그냥그냥. 

내가 낳은 아기가 당신을 닮았다는 걸 느끼시고 예쁘다고 하셨을 때까지만해도 그냥 첫손주려니 했다. 

그런데.. 4개월에 접어든 신이가 고개를 가누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까꿍에 반응을 하게 되자 아버지가 달라지셨다. 

내가 어릴 때 주말에 놀러갈 수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no. 1, 삶의 활력소인 축구 동호회 활동 때문이었다. 지금도 회장직을 맡으면서 토요일 일요일을 운동장에서 내내 보내시는 아버지셨다. 

그런데 아버지의 귀가가 빨라졌다. 금요일 저녁 손주가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좋아하시던 약주도 마다하고 귀가하셨다. 들어오자마자 손 씻고 손주 얼굴 한번 만져보시고는 샤워재개하시고 손주를 품에 안으셨다. 아침잠 많은 엄마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손주를 안고 얼러주시다가 운동장에 가셨고, 약주하시면 늘 씻지 않고 주무시는 문제로 엄마와 투닥거리셨는데 거나하게 취하셔서 돌아오셨음에도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여 샤워재개 하신 후에야 손주와 마주하셨다. 

일요일 아침 가부장적인 아버지께서 아침일찍부터 손수 집안 곳곳을 청소하신 후 손주를 맞으신 것도 모자라 분유 안 먹겠다고 떼 하는 손주 앞에서 톤을 높여 격려의 재롱을 보여주셨다. 

엄마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삼십 평생을 못본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가 달라지셨다.ㅋㅋ

IMG_1193_face0.jpg

엄마 대신 할아버지를 품은 기특한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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