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3년 전 한국을 떠나올 때 우리와 함께 미국으로 올 국문 책을 선별(?!)해 왔다. 우리 인생에 중요한 책들,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보지 않고 있기엔 아쉬울 책들을 가져왔는데, 이번 릴레이 글을 쓰기 위해 그 책장 안팎에서 다시 열 권을 추려 뽑았다. 뽑아 놓고 보니 내가 요즘 열중하고 있는 이 '글쓰기' 작업이 괜히 시작된 게 아님을 깨닫는다. 내가 선호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읽기엔 조금 불편하고 거칠더라도 읽는 사람이 잠깐 멈춰 생각할 수 있는 글이다. 그리고 십년, 이십 년 후 나의 글은 읽는 사람이 생각 뿐 아니라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언젠가부터 '작가-활동가'를 내 꿈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열망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스스로도 궁금해질 때가 있었는데 바로 이 열 권의 책에 그 답이 들어 있었다.
*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대담>, <시장 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등 도정일의 책
이 분과의 만남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자 행복이었다. 3, 4학년이 많이 듣는 한 영문학 강의에 들어간 대학 2학년생의 나는 이 분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이 분의 강의와 책, 칼럼, 개인적인 만남은 내게 하나 하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내게 공부가 무엇인지 깨우쳐 주신, '작지만 의미 있는 생각 하나'를 늘 품고 다니게 해 주신 분. 그리고 그 분의 책들은 내 평생의 스승이다.
* <전태일 평전>
대학 후반부에 조금씩 사회에 대한 고민이 늘면서 찾아 읽었던 책. 이 책을 읽고 나와 우리 세대가참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구나, 깨달았다. 그는 어려운 책을 같이 읽어 줄 대학생 친구가 그렇게 필요했다는데, 나는 그가 그렇게도 바라던 대학생이 되고서도 대학생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내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 알 수 있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2007년, 남편이 내게 연애를 걸어오기 직전 선물했던 책. '뭐야, 이런 책을 선물하며 연애를 걸다니. 지금이 팔십년대도 아니고' 싶었지만 결국 이렇게 같이 살고 있다. 좁은 방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겪고 생각한 일들을 가족 앞으로 보내는 편지에 풀어 놓았는데, 암울한 시대, 억울하게 들어간 옥 안에서도 '바깥'으로 내뻗는 사유를 할 수 있는, 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 <예수전> 등 김규항의 책
<B급좌파>를 소개해 준 것도 남편이었다. 그 후 나는 김규항의 열혈 독자가 되었고, 그가 만드는 어린이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후원하는 '고래이모'가 되었다. 그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글과 현실 정치의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신랄히 꼬집어 주는 글을 특히 좋아한다. 어려운 얘기를 에둘러하는 수많은 식자들과 달리 그는 조금 불편하지만 우리 삶에서 중요한 문제를 쉬운 말, 직접적인 표현으로 얘기하는 사람이다.
* <월든>, <시민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
남편과 내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또 한 사람의 저자. 그의 <월든>은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해 준다.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로 자그마한 집을 직접 지어 2년 반 남짓 살며 남긴 그의 기록은 소박하고 낭비 없는 삶, 고요히 사색하고 성찰하는 삶이 가져다 주는 어떤 '힘'을 알게 해 준다. 그의 <시민 불복종>은 노예 제도와 전쟁에 반대하며 양심 있는 시민으로서 정부의 요구에 불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인데, '행동하는 양심'의 전형으로서 늘 내 가슴에 살아 있는 글이다.
*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 <삶 읽기 삶 쓰기>, 조(한)혜정
<나는 왜 쓰는가>는 남편이 선물해 준 조지 오웰의 에세이 집에 들어 있는 짧은 글이다. 그가 "내가 어떤 일에 화가 나지 않았더라면 그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쓴 것 중 가장 생명력이 없는 책은 정치적인 목적 없이 쓴 책이다" 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내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대부분 무언가에 분노했을 때, 절망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삶 읽기 삶 쓰기>는 조한혜정이 90년대에 대학원생들과 세미나식 강의를 하면서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썼는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가 참여한 여러 세미나들이 결국에는 왜 흐지부지 되었나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려주어 내게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내게 "나의 삶과 관련해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게 먼저라는, 아주 쉽고도 어려운 답을 던져주었고, 그를 만난 이후 내 책장은 그런 책들로 조금씩 채워져가고 있다.
* <미국 민중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등 하워드 진의 책
하워드 진은 자신의 삶의 궤적 만큼이나 흥미로운 역사책을 펴 낸,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대표적인 지식인-활동가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힘은 소수의 영웅적 인물이 아니라 다수의 민중에게 있다고 보고 기존 미국 역사서와는 다른 시각에서 미국사를 써냈다. 남부의 작은 대학에서 재직할 당시에도 그는 강의만 하는 백인 교수가 아니라 흑인 학생들과 함께 집회를 열고 경찰과 권력에 대항하며 미국의 인종 갈등 문제에 대해 깊이 천착한 학자이자 운동가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교수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우리 사회에는 하워드 진 같은 학자가 없나, 탄식했다. 여기 온 후로 틈틈이 그의 책을 읽고 있는데, 내게 좋은 공부가 된다.
* <침묵의 봄> 레이첼 칼슨
화학제품 생산/소비량이 급증하던 시대에 관련 업계의 비난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DDT(염소계열 농약의 일종)의 위험성을 고발한 책이다. 생명들이 깨어나는 소리로 가득차야 할 봄이 죽음같은 침묵으로 둘러 싸였을 때, 칼슨은 "이 일에 내가 침묵한다면 나는 계속 불편할 것"이라며 오로지 학자적 양심 때문에 이 책을 썼다. 게다가 그는 원래 이 쪽 전공자가 아닌, 해양생태학 전공자였다. 책 뒤에 붙은 참고자료 목록을 보면 밤낮없이 논문만 들여다 본 천생 '학자' 같지만, 생태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그는 개미, 벌레, 작물의 잎, 인간 몸 속 작은 세포 하나 하나가 겪는 고통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과학자에게 왜 문학적 상상력과 시적 은유가 필요한지, 문학도에게 왜 과학적 추론과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한지 알게 해 주는 책.
* 계간지 <녹색평론>과 발행인 김종철의 서문을 모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어느 강연에서 처음 김종철 선생을 보았을 때의 전율을 지금도 기억한다. 작고 마른 몸집에서 뻗어나오는 단단한 그 무언가, 꿰뚫어보는 듯한 그 눈매, 듣는 이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드는, 신랄하고 강력한 주장들. <녹색평론>이 지금껏 발행되고 있는 것은 모두 그의 고집과 뚝심 덕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공론화되기 어려운 문제--해외파병, FTA, 민영화, 4대강, 핵발전소 등--를 계속 끄집어 내고 있다. 한국에서 꽤나 급진적인 이야기인 '기본 소득' 문제도 계속 얘기하고 있고.
* <공산당 선언>, <독일 이데올로기> 등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저작
대학 졸업 때까지, 맑스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어쩌다 읽게 된 책에서 "철학자들은 지금껏 세계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 한 문장에 반했다. 그런 그의 사유와 그의 저작들이 학교안에서는 그저 활자로만 가르쳐지고 소비되고 있는 게 못마땅했다. 학교를 나오고 난 뒤 줄곧 나를 이끌고 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의 저작이다. 아직 읽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을 기르고 싶은,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연대'에 동참하고 싶은 내게는 이들의 저작이 내 평생의 과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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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고민이 좀 되더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작업이었는데, 베이비트리에 올리기엔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요. 하지만, 결론은 "그게 나인걸 어떡해" 이렇게 났습니다. 그래서 올립니다. ^^;; 다음 주자로는, 푸르메 님을 생각했는데요. 요즘 바쁘신지 소식이 좀 뜸한 것 같아 혹시 무리한 부탁을 드리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푸르메 님, 괜찮으시다면 이어 받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