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58737_P_0.JPG » 한겨레 사진 자료


세 살된 아이를 데리고 긴 여행을 떠난 이 엄마를 바라보는 난 분명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미리 여러분들의 소개를 받아서일까, 여행을 떠났다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크게 부럽지 않았다. 오소희님은 아이와 그 시기에 자신의 삶에서 여행을 택했고 잘 소화해냈다. 여행을 가기까지 그 전에 본인이 한 노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일하는 남편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내고 아니면 서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또한 아이를 데리고 짐을 들고 움직일 수 있게 자신의 체력을 유지하고,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까지도 다 이 분의 숨은 노력으로 보였다. 억수로 운 좋게 여행 중에 아이가 크게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다는 것도 있지만 힘든 일이 생겼다하더라도 그에 맞게 잘 헤쳐냈을 분이구나 싶었다. 신발을 혼자 신을 수 있게 기다려주는 일만 봐도 내공이 있는 분이란 게 느껴졌다.

만약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부럽다면 우리나라 가까운 곳을 아이와 며칠 둘러보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르면서도 같은 게 사람 사는 모습이다. 올 여름에 아이들을 데리고 평소보다 조금 길게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 애들 데리고 길게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구나.'란 걸 알았다.

이렇게 한 번 시도하고 나니 다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한결 마음 먹기가 수월할 듯하다. 확 일을 저지르기 힘들면 조금씩 내공을 키워가면서 내게 맞게 하면 된다. 굳이 똑같을 필요야 없다.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레알라는 어쩜 어린 동생을 이 아줌마보다 잘도 보는지, 내 눈에도 사랑스러운 레알라였다.

 

우리는 불결을 객관적인 지수로 측정하려 든다. 그래서 불결한 것은 언제나 논의의 여지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불결함이란 가난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서, 우리가 삶의 무대를 조금만 옮겨보면, 그것이 건강과 생명을 크게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 됨을 알 수 있다. 즉, '어느 정도의 빈곤과 불결함 vs 부와 청결함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는가'의 여부는 한 개인의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p.206

 

최근에 편해문 선생님를 뵈었을 때 선생님이 애들 좀 더럽게 키워도 된다고, 강의 끝나고 이 말을 못했구나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공감을 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씻기는 간격이 다르지만 샤워와 머리감는 걸 매일 해주진 않는다. 애들이 둘 다 어렸을 때 아토피 증상이 보여서 비누 사용도 가능하면 자제를 했었다. 굳이 아토피에 좋다는 비누를 찾아쓰기보다 비누를 아에 안쓰는 걸로 해보았다. 가끔 비누로 씻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히 아토피가 심한 편도 아니었고 크면서 점점 더 나아졌다. 내 아이에게는 통하는 방법이지 않았나 싶다.



모든 이름 없는 개, 거북이, 심지어 개미까지도 아이의 차별 없는 눈앞에서는 평등하게 존재한다. (중략) 아이의 눈은 득도한 자의 눈이다.  p. 207

 

편해문 선생님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과도 맞닿았다. 우리 아이들이 보살이라고. 오소희님도 '아이의 눈은 득도한 자의 눈이다.'라고 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접했지만 통하는 이 묘한 인연.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아이들은 금방 화가 나도 금방 화가 풀린다. 길게 가지 않는다. 세상을 안다는 많은 어른들이 못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래도 아이에게 상처로 남은 일은 문득 문득 들춰진다는 걸 주의해야 한다. 둘째가 아기 때 밤 중에 너무 아파 둘째만 데리고 응급실로 간 일이 있었다. 첫째는 워낙 잠을 잘 자는 아이인지라 한 번 잠들면 아침에 깰 때까지 푹 자는 아이다. 잘 먹고 잘 잔다는 할머니 칭찬이 끊이지 않았던 첫째인지라 자는 아이를 혼자 두고 엄마, 아빠, 둘째가 나갔다 온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그게 아니었다. 아픈 둘째를 안고 나가면서 피운 소란에 아이가 살짝 잠을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얘기한다. "엄마, 나 혼자 놓고 갔었지."라고. 그렇게 아이가 이야기했을 때 내가 진심으로 사과했었나? 어, 이런 기억이 가물가물. 아이 눈을 보면서 사과해야겠다.  

 

개구리 소리는 마치 코맹맹이 소리처럼 귀엽게 울려퍼진다. 나는 내 멋대로 아이에게 그 소리를 통역해준다. p. 275

엄마가 되면 한 번씩은 흥얼흥얼 엄마만의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게 되나보다. 정확하게 뭐라고 불러주었나 기억나지 않지만 나 또한 두 아이한테 흥얼대며 노래를 불러주었던 기억이 난다. 녹음이라도 해둘걸 그랬나 싶다.

 

이 책에서 내가 뽑은 한 문장은 이것이다.

"난 지금 호랑이가 나타난대도 별로 안 무서울 것 같아. 내가 지금 제일 무서운 건 중빈이가 자다 깨서 혼자 우는 거야." p. 279

같은 엄마로서 가장 공감가는 대목이었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나갔다오거나 첫째를 잠깐 데리러 갔을 때 '걸음아, 날 살려라!' 무섭게 나를 뛰게 만들었던 것, 그게 바로 아이가 혼자 깨서 우는 거였다. 실제로 아이가 깨서 운 적도 몇 번 있다.

 

부모가 어린아이의 교육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미래에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미리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갖기 힘든 것을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이를테면, ...... 부모가 따로 시간과 돈과 품을 내어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영혼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p.340

 

육아서를 찾아 읽는 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사실 육아서라고 따로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 책이 육아서이다. 

 

아들아, 세상에는 유희가 생략된 유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단다. 네게는 세 살부터 시작된 이런 여행이, 한평생을 다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사치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많이 있단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들을 부단히 많이 보아서, 끝없는 속도전에서 비롯되는 초조와 이기심으로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렸을 때마다 스스로 발광하는 태양처럼, 스스로 네 마음을 뜨뜻하게 덥힐 수 있기를 바란다. 가진 것을 느끼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부터 나누고, 함께함으로써 더 많이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융숭 깊은 사람으로 자라주렴. 네가 살아 있는 한 온 세상이 너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담그고 느끼거라. 그 안에 네가 안아줄, 너를 안아줄 모든 것이 다 한데 어우러져 있단다. p. 342

 

올림포스에서 쏟아져내린 밤하늘의 별들을 머릿 속에 그려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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