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는 것

 

시는 어렵다.

어렸을 때 시를 쓴다는 건 운율을 맞추고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하는 막연한 과정으로만 느껴졌다.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써야 시 다울까?’를 생각하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쓴 시와 비슷하게 써보려고 흉내를 내본 적도 있다. 최근 몇 년 전까지도 내게 시는 어려웠고 아무나 쓸 수 없는 문학의 한 장르였다. 그랬던 내가 시를 쓰고 있다. 신기하다. 아니다. 신기한 일이 아니다. 시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시는 나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란 걸. 우리가 추는 춤, 부르는 노래, 그리고, 쓰고, 말하고, 움직이는 몸짓, 표정. 이 모두는 나를 표현하는 일이다. 처음 시를 접했을 때 아마도 선생님은 나를 표현하는 것 중 하나가 시 쓰기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시답게 써야하는 과제였다. 과제라...... 우리는 어쩌면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어렸을 때부터 과제로 받아들이는 교육을 받고 자랐나보다. 교과서에 실린 동시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 비스무리하게 쓸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우리의 표현교육은 잘 써야하고, 잘 그려야하고, 잘 추어야하고, 잘 불러야하고, 잘 연주해야하는데 맞춰졌던 게 아닐까. 일찍부터 상벌을 접하는 교육이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을 갖도록 만든 건 아닐까.


다시 돌아와서 시 쓰는 걸 다르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매일쓰기를 한 해 목표로 잡으면서부터였다. 언젠가 나도 장문의 설득력 있는 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 일기라도 매일 써보자고 결심했다. 일기라도?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의 결실이다.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일기를 매일 쓴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특히 글이 길어지면서 정리되지 않고 생각이 하염없이 이어질 때면 난감했다. 두서없이 흘러가는 글 속에 오히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정을 짧게 써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짧은 단어로,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갔다. 그 다음에 위아래를 바꿔보기도 하고 말을 약간씩 손보면서 보면 볼수록 형식이 시랑 닮아갔다

 

최근에 쓴 시를 예로 들어본다. 해질녘 개인 일로 들렀던 건물에서 나오는데 앞에 보이는 63빌딩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눈에 확 띄었다. 꽃샘추위에 바람은 차가운데 층층마다 여기저기 켜진 불빛들이 따뜻하게 보였다. 그 순간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새록새록 어렸을 적 기억이 되살아났다. 남동생이랑 아빠랑 함께 올라갔던 63빌딩 전망대, 안내원이 했던 말, 버스만 타면 멀미를 했던 나, 택시 안에서 토했던 일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잊어버리기 전에 보이는 것, 떠오른 감정을 폰 안에 있는 메모장에 적었다. 메모장에 적었던 다듬어지기 전 날것의 형태를 여기에 옮겨본다

 

 

해진 시간

갑자기 눈에 들어온 63빌딩불빛

그 전에는 이 길을 지나가도

앞에 있던 빌딩이 안보였는데

이 시간에 지나가서일까

우뚝 서있는 건물에서 따뜻하게

반짝이는 불빛에 불현듯

아빠 생각이 났다

 

국민학교 때

동생이랑 아빠랑 왔던

서울나들이

63빌딩은 가봐야한다며

들렀던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안내원이 침을 삼키면

어지러움이 덜 하다고 했던 말이

메아리친다


그 때 어린 난

이리 훌쩍 자라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멀리 서있는 빌딩 꼭대기의

간판은 한화로 바뀌었고

멀미가 심했던

딸내미가 토했던 걸

치우느라 택시 안을 닦으셨던

아버지


아버지 생각에

퇴근길 따라 걷는 걸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빠 보고싶어요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정리를 하고 단어나 글의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보면서 나온 시가 며칠 전에 올린 그리움이다. 처음에 생각한 제목은 아빠 보고 싶어요’였는데 바꿨다. 글을 올리고도 중간에 상징상징이었다.’로 수정했다. 그렇게 나온 시를 여기 다시 올려본다.

 

 

그리움

 

 

어느 새 해가 지는구나

앞에 선 건물이 성큼 다가온다

차가운 바람에

층층이 켜진 따뜻한 불빛들

자주 다녔던 길

그저 스쳐갔던 배경이

아빠 얼굴과 겹쳐진다

 

국민학교 때

남동생이랑 아빠랑 왔던

친척집 나들이

63빌딩 전망대는

서울 나들이의 상징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안내원이 건넨 말

침을 삼키면 어지러움이

덜하다고

덜하다고

메아리친다

 

어렸던 여자애는

이리 훌쩍 자라

여드름 송송 돋은

작은 소녀의

엄마가 되었고

멀리 서있는

빌딩 꼭대기의 간판은

주인이 바뀌었고


멀미가 심했던 딸아이가

토한 걸 치우느라

택시 안을 닦으셨던

아버지는

기억 속으로


퇴근길 따라

아련한 노을빛 따라

걷는 걸음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아빠 보고 싶어요


이렇게 쓴 시를 다시 읽으면 그 때의 감정들이 살아난다. 내 안에서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시가 내게 주는 선물이다. 시를 쓰고 나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나누고 싶어진다. 특히나 그 순간을 함께 한 사람이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더 나누고 싶어진다. 상대방에게 말을 걸듯 시로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우리 올해는 시를 써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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