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요즘 유치원마다 학교마다 운동회가 한창입니다.

지난 주엔 큰아이의 초등학교 운동회,

이번 주말엔 작은아이 유치원 운동회가 있어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하는데

엄마인 저는 2주에 걸친 도시락 스트레스 땜에 가을 탈모가 장난이 아니라는;;

아빠와 아이들이 기대하는 운동회 도시락은 ...

 

no35249_MM_550.jpg

 

대충 이런가 본데,

해마다 운동회날, 제가 만든 도시락 뚜껑을 열 때면

3초 정도 정적이 감돌며 식구들의 실망하는 눈치가..;;^^

일본 엄마들은 운동회 도시락을 왜 그리 열심히들 싸는지.

운동회 끝나고 나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는가로 수다가 오고가는데

5시에 일어났다, 그러면 늦지않냐 4시에 일어났다.. 등등

부실한 저의 도시락엔 다 이유가 있었나 봐요. 7시에 겨우 일어나서 대충 싸니 뭐..

 

암튼!  이번 운동회엔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4학년인 큰아이가 한국 노래로 단체 댄스를 한다고 하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운동회에 참석해서 보니, 일본 초등학교 운동장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쩌렁쩌렁 울려퍼지더군요.

 

DSCN2124.JPG

 

4학년 아이들이 모두 신나게 말춤을 추고,

학부모들은 "어머, 강남스타일이잖아!" 그러면서 다들 즐거워했답니다.

운동회 프로그램에 '강남' 대신 학교 이름을 넣어 '00스타일'이라고 쓰여있었어요.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한일관계가 싸늘한데도

아이들은 아직 크게 못 느끼는지 마냥 신나하더군요.

큰아이는 그래도 자기가 좀 한국어를 안다고 친구들에게 노래 가사 해석해주고ㅋㅋ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 분 한류열풍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언어가 큰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는 무척 감성적이고 매력적인 언어로 이미지를 완전히 굳힌 것 같은데

(드라마에서 아줌마들이 머리잡고 싸우는 장면은 빼구요^^,

대신 이런 부분은 꽃미남 배우들이 감성+달콤 대사로 커버를 해주고 있죠)

올 봄에 JYJ가 도쿄 돔에서 콘서트를 할 때,

팬들에게 일본어로 쭉 이야기를 하다 김재중이 좀 답답했는지, 갑자기

한국어로 "저 쪽에 조명 좀 켜 주세요~" 그랬을 뿐인데

일본인 팬들이 그 말 한마디에 환호성을 지르며 다들 쓰러질려고 하더군요.

 

요즘 한류 스타들이 일본어를 잘 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이 가장 근사하고 멋있어 보일 때는, 유창하고 품위있게. 한국어를 구사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일본인들도 그런 말 많이 하죠. 열심히 듣는 팬들을 위해 일본어공부하고

말해 주는 건 너무 고맙지만, 그래도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즐기고 싶다! 라구요.

내용을 다 알아듣진 못한다해도 그 언어만이 가진 이미지, 리듬, 감성을 즐기고 싶을 거예요.

 

제가 한류 평론가도 뭐도 아닌 그냥 일본에서 아줌마로 살지만,

감히 한류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하자면

외국어를 열심히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큼 한국어를 정말 품위있고 아름답게 구사하기 위한 노력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 언어를 잘 모른다 해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자신의 모국어이긴 하지만, 유난히 리드미컬하게

듣기좋게 말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않나요.

늘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본인 중에서도

유난히 표정도 밝고 발음도 정확하고 자기 논리도 분명하면서도 감성적인 표현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아름답게 일본어를 말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만날 때마다 기분이 참 좋답니다.

 

분홍구름 님이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에 대해서도 쓰셨던데

저도 한글날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untitled1.png

 

도쿄 돔은 몇 만 명을 수용하는 크기라던데

이 수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어 한마디에 이렇게 열광하는 순간을,

초등학교에서 한국 노래에 맞춰 일본인들이 춤추는 광경을,

100여년 전 이곳에 사시던 재일 조선인 분들은 상상이나 하셨을까요..?

 

외국에 머무는 세월이 쌓여갈수록

모국어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이 새록새록 들어서

고등학교 때 영어사전을 a부터 한 쪽씩 공부하는 게 유행했던 기억이 나서

국어사전을 ㄱ부터 그렇게 읽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올해 새해목표 중에 하나가 그거여서

부엌에 국어사전을 두고 국이나 찌개 끓는 거 보면서 한 낱말씩 보곤 했는데.

진도가 너무 더디긴 하지만 내년에도 쭉 해볼까 하고 있답니다.

 

설날이 가까운 어느 날, 사전에서

'가래떡'을 읽을 차례가 되었는데, 너무 신기한 경험을 한 기억이 나요.

글쎄, 사전 속의 가래떡이란 글씨 위로 모락모락 김이 나지 뭐예요!

명절 즈음마다 도지는 향수병에 어머! 내가 왜 이러지! 그랬는데

모국어란 그런 건가 봅니다.

어릴 적, 시골 방앗간에서 보았던, 하아얀 김을 뿜으며 기계에서 빠져나와

찬물에 풍덩 빠지던 그 가래떡의 이미지가 글자 뒤에 떡 버티고 있는 것.

외국어에는 유년기가 없다는 말, 그래서 나온 말인가.. 싶었답니다.

 

아! 몇 달 안 남은 올해와 내년에도 쭉- 국어사전 읽기 계속 해보고 싶네요.

열심히 읽다보면 육아일기를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요?^^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132008/75d/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1156 [자유글] 비판과 분노 넘어 연대와 공감으로 [13] 케이티 2014-04-29 8385
1155 [자유글] 겨울방학, 게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법 [1] 베이비트리 2012-01-03 8378
1154 [자유글] '왜 미운 4살일까?' imagefile [13] 새잎 2012-06-07 8320
1153 [자유글] 성탄 카드 만들었어요 imagefile anna8078 2010-12-10 8304
1152 [자유글] 봉숭아물 imagefile guk8415 2010-07-15 8298
1151 [자유글] 엄마랑 아빠랑 우리 가족 행복한 나들이 ktw8124 2010-06-05 8237
1150 [자유글] [답변포함] 모유수유에 대한 질문입니다. ssal1150 2011-02-01 8222
1149 [자유글] 주말, 딸아이와의 대화 imagefile [4] sano2 2011-10-24 8173
» [자유글] 일본 학교운동회에 울려퍼진 강남스타일! imagefile [4] 윤영희 2013-10-10 8155
1147 [자유글] 가족과 함께한 둘째 자연출산기 imagefile [6] lotus 2013-01-24 8103
1146 [자유글] 생판 몰라도 엄마라는 이름의 연대 imagefile [17] 안정숙 2014-01-27 8079
1145 [자유글] 초등학교 선택과 1년 간의 사교육 [12] 난엄마다 2013-11-03 8047
1144 [자유글] 베이비트리, 축하해요 imagefile sano2 2010-05-16 8013
1143 [자유글] [베이비트리가 콕콕 짚어줘요] ⑫ 여름방학 현명하게 보내기 imagefile [1] 베이비트리 2015-07-27 8000
1142 [자유글] 주부에겐 언제나 즐거운 남의집 구경 imagefile [2] 윤영희 2014-01-25 7977
1141 [자유글] [70점 엄마의 쌍둥이 육아] 아침을 여는 유치원 버스 imagefile [2] 까칠한 워킹맘 2013-07-12 7971
1140 [자유글] 루스핏? 노노! 허리띠? 굿굿! imagefile [2] 베이비트리 2014-09-25 7958
1139 [자유글] 엄마는 아들바보, 아들은 엄마바보 imagefile [2] blue029 2012-07-22 7956
1138 [자유글] 탁틴맘, 영화 ‘아이들’ 상영과 감독과의 대화에 초대합니다!(11월 4일) file minkim613 2011-10-26 7952
1137 [자유글] [토토로네 감성육아] 이런 보육현장 꿈꾸면 안될까? imagefile [12] pororo0308 2015-01-20 7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