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 부엌

자유글 조회수 2940 추천수 0 2014.11.13 20:35:08

부엌

 

                                              임길택

 

쓰다 남은 판자 조각에

비뚜름히 새겨놓은 글귀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아궁이 앞

불쏘시개 솔잎 한 줌만이

날마다 이 글귀를 읽고 있다

 

 

 달마다 받아보는 글쓰기 회보 가운데 '함께 읽는 시'에 실려 있는 시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살고프다고 내내 노래를 부르면서도 나는 요새 그러고 있지 못하다. 없어서 사고, 불편해서 산다. 사기 위해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 특히나 요새 제일 많이 사는 것이 식재료이다. 부엌육아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하고서 이것 저것 시도해보는 것도 있지만, 아이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자꾸 사댄다. 그러다보니 미처 다 요리하지 못한 재료들이 버려질 때가 많다. 이번 달 카드값을 보고 남편이 걱정할 만하다. 돈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하루라도 무언가를 사지 않는 날이 없는 게 더 문제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처음 임길택 선생님을 알게 된 때부터 선생님처럼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 제일 좋은 음식은 내 정성이 들어간 소박한 음식임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머리로만 알고 몸이 그걸 실천하지 못하는 거다. 따뜻한 밥 한 공기, 김 한 조각,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만 있어도 잘만 먹는 아이를 곁에 두고서, 좋은 고기를 욕심낸다. 내의 몇 벌 껴 입어 따뜻하기만 하면 만족하는 아이인데, 예쁘고 좋다는 옷을 보면 욕심이 난다. 옆집 언니가 물려준 까꿍책을 몇 번씩 웃으며 읽는 아이를 두고, 좋다는 어린이책에 손을 뻗는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아이를 키우고, 아이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무얼 해주기보다 안 해 주는 연습이 필요한 때다. 시를 여러 번 읽으며 나에게 힘주어 이야기한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356 [자유글] 엄마가 나를 두고 갔잖아! [5] kimharyun 2012-03-26 4973
355 [자유글] 아이에게 쏟는 관심 반만 떼어서! [14] 분홍구름 2012-03-25 4679
354 [자유글] 개운의 비결 [6] rins 2012-03-23 5379
353 [자유글] 부족한 아들, 부족한 엄마 그래도 행복하게~ imagefile [4] jsbyul 2012-03-23 4426
352 [자유글] 김영훈 원장님 출연하신 EBS 부모 4부 image [2] jenifferbae 2012-03-23 4744
351 [자유글] EBS 부모 김영훈 선생님 3부 image [2] jenifferbae 2012-03-20 5788
350 [자유글] [궁금해요] 각 당의 보육정책 공약, 어떻게 생각하세요? [12] 양선아 2012-03-19 5364
349 [자유글] 일요일 출근하는 엄마덕택에 아빠랑 북카페 데이트 imagefile [9] 강모씨 2012-03-19 6051
348 [자유글] 이거 다 봄인 탓입니다. [6] 분홍구름 2012-03-17 4602
347 [자유글] 햇님군 그림솜씨 자랑.. ㅋ imagefile [1] 전병희 2012-03-17 5490
346 [자유글] 서른다섯번째 생일, 감동의 도가니 남편의 미역국 imagefile [16] 양선아 2012-03-16 16233
345 [자유글] 아들의 작품 세계 imagefile [7] blue029 2012-03-16 7336
344 [자유글] ‘교실에 책걸상ㆍTV 없어요’‥발도르프교육 첫도입 imagefile anna8078 2012-03-14 22604
343 [자유글] [부모교육]육아멘토와의 만남 - 부모도 마을의 멘토가 필요해! (3월 15일) minkim613 2012-03-13 5049
342 [자유글] 돌잔치가기다려지네요.. [1] kmj7618 2012-03-11 4777
341 [자유글] 주안역리가를다녀와서 gorhfdie 2012-03-08 4620
340 [자유글] 우리딸벌써돌잔치해요^^ [3] skdbsaka 2012-03-07 4809
339 [자유글] 제주 강정마을 얘기를 접하며... [3] ubin25 2012-03-07 4511
338 [자유글] 모유수유는 왜 어려울까?(모유 수유선택의 옵션은 사생활 포기) [9] corean2 2012-03-07 6044
337 [자유글] 드디어 봄이 오는 건가요? [2] jsbyul 2012-03-06 4492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