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은 ‘한글에 흥미를 갖게 하는 교육’을 지향하지만 학부모들은 ‘과잉교육 열기’


“여긴 왜 낱말카드 쓰기 안 해요?” “우리 아이는 맞춤법을 자꾸 틀리는데 왜 그렇죠?” “영어도 좀 같이 하면 안 되나요?”


이은경 서울 ㅍ어린이집 원장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학부모들의 ‘컴플레인’에 시달린다. 이 원장의 어린이집은 과잉교육을 지양한다. 만 3~5살의 아이들에게는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 것, 글씨를 잘 쓰는 것보다 그림책을 읽고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해 조리 있게 말할 줄 아는 법, 친구의 말을 잘 듣고 자신이 말할 차례를 기다릴 줄 아는 법, 쓰는 활동에 흥미를 가지는 것 등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은경 원장은 “낱말카드 쓰고 맞춤법 익히는 것보다 그게 훨씬 중요하다고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끊임없이 설득하는 일이 주요 업무일 정도다”라고 말했다.


“영어도 좀 같이 하면 안 되나요?”


141274865461_20141009.JPG » » 공교육에서 ‘한글 교육’을 책임지기보다 가정으로 떠넘기는 경향이 심화되면서 한글 사교육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글 사교육 업체들은 적용 시기를 점점 낮춘 한글 교구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누리집에서는 ‘조기 문자 교육이 좋다’는 내용을 홍보한다.

영·유아기 아이의 엄마들에게 한글 교육은 이제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할 지상 과제다. 서울 한 지역 육아맘들의 온라인 카페.


“6살 아이에게 한글 가르쳐보려고 시도하나 전혀 하기 싫어하고 관심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요. 한글 자석 줬더니 로봇이나 만들고 있네요.” 한 엄마가 글을 올렸다.


댓글 30여 개가 주렁주렁 달렸다. “한글 DVD 좀 보여주고 전 그냥 ○○나라 시켰어요. 진도대로 가다가 어느 순간에 떼더라구요. 쉬운 책은 읽어보게 도와주니 쉽게 늘더라구요.” “전 곰돌이로 뗐어요. 젤 중요한 건 아이가 관심 있어야 해요. 딸이 스티커북 좋아해서 자연스레 스티커형 한글책으로 2년간 했더니 어느새 다 외웠더라구요.” “좀 기다려보세요. 서두른다고 되지 않더라구요. 학습지도 해보고 좋다는 DVD랑 ○○○도 사서 보여주고 문제집도 사서 보고 했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그냥 기다려주다가 7살 초에 말놀이 동시집 하루에 2개씩 같이 읽었어요. 그게 아이에게 스트레스 없이 자연스럽게 한글 떼주었어요. 전 말놀이 동시집 추천드려요.” “하기 싫어함 하지 마세요. 5세·6세 때 시도했다 맘만 상하고 6세 겨울에 시작해서 7세 초에 한글 떼었어요. 지금은 한글 읽고 쓰는 데 문제없고 오히려 일찍 학습지 시작한 애들보다 받침 같은 거 잘 안 틀리고 쓴다고 어린이집서 그러더라구요. ○○ 문제집 사다가 집에서 두 달 정도 가르쳤어요.”



“취학 전 아이들의 국어 능력을 연구하는 것은 한글 교육의 출발점을 정하는 데 중요하고 필요한 연구지만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이경화 한국교원대 교수


글을 올린 엄마는 이것저것 해봤으나 “결국 기다려야 하나요”라는 결론을 냈지만, 답을 찾는 과정은 여전히 계속될 듯 보였다. 엄마들의 혼란은 국가가 부추긴 탓이 크다. 누리과정에서는 한글 문자 교육은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의사소통 영역에 말하기·듣기·읽기·쓰기가 있지만, 읽기·쓰기의 교육 내용은 문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친숙한 글자를 찾아보고 만 5살이 되면 친숙한 글자를 읽어보도록 하는 정도다. 책읽기의 교육 내용도 ‘책에 흥미를 가진다’ ‘책 보는 것을 즐기고 소중하게 다룬다’ 등 책읽기 태도와 함께 ‘그림을 단서로 내용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그친다. 쓰기 역시 글자를 쓰고 익히는 게 아니라 ‘쓰기 도구에 관심을 가지고 사용해본다’ ‘쓰기 도구의 바른 사용법을 알고 사용한다’가 교육 목표이자 교육 내용이다.


누리과정에서는 ‘한글에 흥미를 갖게 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반면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은 문자 습득을 전제로 짜여 있다. 문자를 익히고 이해력을 확장하는 단계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사실상 교과서를 개발하면서 취학 전 아이들의 국어 능력을 제대로 연구한 적이 없다. 이경화 한국교원대 교수는 “교과서를 개발하면서 취학 전 아이들의 국어 능력을 연구하는 것은 한글 교육의 출발점을 정하는 데 중요하고 필요한 연구지만,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2012년에 딱 한 차례 이뤄졌지만, 그조차 표집단위가 너무 작고 문항이 쉬워 신뢰하기 힘들다”며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마련하려면 취학 전 아이들의 국어능력진단검사를 정밀하게 또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재는 10%뿐, 아이를 기다려라


교육부 교육정책개발 담당자도 “‘2015 개정 교육과정’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 교과서를 만드는데 현재보다 난도를 낮춰야 할지 등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이 많다. 격차가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정책적으로 출발점이 어딘지 우왕좌왕하는 동안 학부모는 사교육에 점차 기대게 된다. 육아교육정책연구소가 지난 6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100개 지역 2519가구의 만 5살 이하 영·유아 3630명에 대한 조사 결과, 전체 영·유아 보육비·교육비의 절반인 2조2천억원이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학습지와 시간제 학원을 이용하는 비율은 2013년에 그 전년보다 각각 1.5%가량 늘어나 영·유아 10명 중 3명이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한글 사교육 시장은 ‘더 빨리’를 주장하며 한글 사교육의 연령을 점차 낮추고 있다. 음절 단위의 한글 교육으로 엄마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던 ㅎ 한글 교재 개발업체는 36개월부터 시작하던 기존 교재에 더해 18개월부터 한글을 익히는 ‘아기’ 버전을 추가로 개발해 판매 중이다. 태어나자마자 시작하는 유아 통합 자극 교구를 개발해 “자연스럽게 모국어와 영어를 경험하여 영어를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한 학습지는 13개월부터 한글 스티커를 붙이며 한글을 익숙하게 하는 ‘13개월 과정’을 개발했다.


아이가 준비가 됐을 때,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을 때 문자 교육을 해주는 것은 적절하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아이에게 가해지는 과잉교육은 학습에 흥미를 잃게 하는 것은 물론 창의력을 해치고 정서적 문제도 낳는다. 정대석 서울아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소아정신과)은 “언어를 받아들이는 시기는 아이마다 다르다. 문자 교육에 대한 준비가 된 아이에게 문자 교육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4살 정도 시기에 문자를 깨치는 ‘영재’ 성향이 있는 아이들은 10%에 불과하다. 아이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교육해야지, 과도하게 시키면 오히려 책읽기를 싫어하고 우울, 불안, 자존감 저하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겪게 된다. 과잉교육은 당연히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장은 “유럽에서는 1960년대에 시도한 유아기의 지적 교육을 효과 면에서 실패로 인정하고, 이미 1970년대부터 유아 교육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만 3살 시기에 읽기·쓰기를 배운 아이들이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으로 어떻게 발달했는지 추적연구를 마친 결과, 이들이 정서적 결핍과 창조적 판타지의 영역에서 미흡한 발달을 보였다”고 말했다.


5살이 되어도 뇌는 준비되지 않아


김중훈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도 “유럽의 서로 다른 3개 언어에서 연구한 결과 7살에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이 5살에 시작한 아이보다 읽기 성취가 높았다는 결과가 있다”며 “뇌에서 읽기에 중요한 시각과 청각을 통합하는 부분은 5살이 돼도 활성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너무 빠른 조기교육은 아이의 뇌를 망가뜨리고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겨레 21  2014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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