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겄다~"

자유글 조회수 3634 추천수 0 2013.12.11 11:50:14

20대 후반에 허리가 아파 꼼짝을 못하고 입원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써놓은 글들을 읽으면 그때만큼 삶에 대한 의지, 삶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때가 없었다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힘들때면 그때 써놓았던 제 글들을 읽어봅니다. 페북에 올렸었는데, 베이비트리 독자분들에게도 이 글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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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수놓인 빨간 망토를 입은 할머니가 운동치료실에서 자전거타기 운동을 하고 있는 날 보며 대뜸 "너는 좋겄다"라고 소리쳤다.

'빨간 망토 할머니'는 병원에서 눈에 띄는 분이다. 피부가 하얗고 고운 할머니께
빨간색이 참 잘 어...울리는데 작은 코 작은 입술을 지니신 게 젊었을 때 '한 미모' 하셨을 것 같다.
할머니는 뇌졸증을 앓으시는데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탄 채 팔감각을 살리기 위해 운동치료실에서
파랑, 노랑, 빨강색 막대기를 동그랗게 뚫린 구멍속에 넣는 연습을 하신다.
그런데 운동할 때 마다 통증을 느끼시는지
"아야! 아야!" "아~"라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시고 사람들이 말이라도 건네려하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기 일쑤고 간병인 아줌마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욕도 자주 하신다.

그런데 어느날 그런 할머니가 내게
호의적인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부러운 듯한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뭐라 규정하기 힘든 아리송한 표정으로
"너는 좋겄다"라며 먼저 말을 건네는 것 아닌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난
'내...참... 내가 뭘 좋단 말이지... 참 속 모르는 얘기 하시네..겉으로 멀쩡해보여도 지금 속으로 내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니까 저런 말 하시는거야... 그리고 20대 꽃다운 나이에 좋아하는 일도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못나고 그것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허리가 아파 이렇게 병원에 죽치고 있는데... 뭐가 좋단 말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전거바퀴를 돌리는동안
할머니의 절규하는 듯한
"너는 좋겄다"라는 말이 계속 귓전을 울린다.
그러면서 할머니께 나의 어떤 모습이 좋아보였을까
하고 차근차근 내가 좋아보였을만한 이유를 헤아려본다.

우선 할머니께 난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보였을 것이다.
70살이 다 되어가 보이는 할머니께는
(나이를 묻는걸 깜빡했다. 나이와 성함 확인은 기자에게 기본적인 확인사항인데...병원서 기자로서의 감각 완전 빵점됐나부다... ^^)
이젠 20대보다는 30대에 가까운 나일지라도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지닌
'햇병아리'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야 하고
팔로 물건을 들려해도 통증을 느껴야 하는 할머니와 달리
통증을 느끼더라도 걸어다닐 수 있고
손과 팔, 다른 모든 몸 감각은 정상인 나는
얼마나 행복해보였겠는가.

아무리 치료를 해도 별 변화가 없고
밤마다 "잠자리에서 머리가 아파 잠을 못잔"다는 할머니와 달리
수개월에 이르는 치료끝에
이젠 밤에 잠도 잘 자고
수술을 해야한다고 할 정도로 심하던 통증이 대폭 줄어들고
이젠 곧 퇴원을 앞두고 있는 내가
얼마나 부러우셨겠는가.

'생각'이란 놈은
참 무서운 놈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현재 상황을 정반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하루가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멀리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 지은이와
광주에서 바쁜 생활을 하는 종인, 선미가
퇴원파티를 해준다며
케익과 책 두권, 따뜻한 녹차라떼를 들고 찾아왔다.
아이처럼 고깔모자를 씌워준 채
사진도 찍고 웃고 떠들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친구들이 병실을 떠난 뒤
난 며칠동안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몇 번의 좌절끝에 자신이 바라던 공사에 취직해
커리어우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지은이가 멋져보였고
결혼을 한 뒤 더욱 성숙하고 안정돼보이는 종인이가 부러웠고
고등학교 선생님인 선미는 아이들과 축제준비로 들뜬 모습이었는데왜 그렇게 신나보이던지....
그들의 현재 모습과 내 모습을 비교하며
난 정체모를 우울한 감정에 한없이 빠져들기 시작한 거다.
또 오랜만에 찍은 사진속의 내 모습은
여드름투성에 살이 토실토실 올라
더이상 예전의 '에너자이저 양선아'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빨간 망토 할머니'가 내게 소리친 그 말.
"너는 좋겄다".

그 말 한마디로
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고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바쁜 주말 시간을 쪼개
낭만적인 퇴원파티를 열어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왔고,
그동안 날 걱정해주고 격려해준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옆에 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인생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하고. ^^

기분이 좋아지니 할머니께 긍정적인 말을 건넨다.
"할머니~할머니도 빨리 나으시려면 좋은 생각만 하셔야지요~~
아야! 라고 하지마시고 아프시면 그냥 좋은 생각하시면서 '아싸~~'라고 말해보세요. 자~한번 따라해보세요. '아싸~~~ '"

처음엔 "싫어"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몇 번 똑같은 말을 반복하니
갑자기 내 말을 따라하신다.
"아싸~~~~~~~~~~~"

그리고 운동치료실을 떠나는 내게
'빨간망토 할머니'는
"고맙다......건강해라....너는 좋겄다"
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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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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