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팅만 종종 하다가 처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그런데 카테고리를 나들이로 해야할지, 가족으로 해야할지, 처음부터 스텝이 살짝 꼬이는 듯 하지만 차차 적응이 되겠지요?!
덥다, 덥다.
괴산에 사는 친구 집에서 며칠, 대전 친정에서 며칠, 일주일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집이 찜통 같다.
실내 공기가 후끈한 것은 물론, 바닥도 뜨끈해서 보일러를 켜 놓은 게 아닐까 하고 자꾸 보일러 계기판을 쳐다보게 된다.
주말인 오늘, 에어컨 나오는 도서관에 갈까, 어린이 회관에 갈까, 하다가 그냥
(내가 글쓰기창을 열어놓고 딴짓을 하는 동안 아루가 적었다. 아루는 일곱살 딸의 이름)
수영장을햇다우낀걸무한번도더햇다그리고아주재미있었다
옥상 바닥은 찜질방, 바닥에 물을 뿌려도 순식간에 마른다.
그래도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고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풀어주니 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 켜는 것보다 훨씬 낫다.
좌린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집안일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솔직히 그래서 불만인 적도 많았지만, 연장을 쓰는 집안일은 참 잘 한다. 건물 꼭대기층에 살다보니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다시 말해서 여름에 정말 덥고 겨울에 정말 추운데, 보다 쾌적하게 지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도하곤 한다. 차양막을 쳐서 햇빛을 가려주니 여름 한낮에도 옥상에서 지낼 수가 있게 되었다.
웬만한, 소소한 공사는 손수 해내고, 어떤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고치거나 좁은 집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잔머리를 많이 굴린다. 다소 보수적인 성향인 나는, 좌린이 무언가 부지런히 일을 벌일 때, 지금도 나쁘지 않아,라는 태도를 견지하는데 막상 결과를 보면 만족스러울 때가 많다.
내 성향이 보수적이라서보다 좌린과 내가 신경쓰는 집안일의 영역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좌린이 벌이는 일에 무심하게 반응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좌린이. 내가 주로 하는 집안일, 빨래, 청소, 설겆이 등에서 적절한(내 기준에서) 타이밍과 완성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며칠전, 오랜만에 롯데월드에 갔다.
놀이공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잠실 근처에 살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2년째 연간회원을 하고 있다. 평일에 너무 너무 심심할 때 가끔, 멀리 사는 친지들이 놀러올 때 접대용으로 주로 간다.
이번에도 대전에서 함께 올라온 조카에게 서울 구경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갔던 것인데, 여름 방학이라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 주차장에서만 삼십분을 헤매다 겨우, 그것도 놀이공원에서 한참 먼 곳에 차를 세웠다. 매표소마다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들어가기 전부터 입이 딱 벌어졌고 아이들 잃어버릴까봐 신경이 곤두섰다.
날씨는 덥고 사람은 많고 놀이기구 하나 타려면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하는 상황에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역력했고 어쩌다 부딪히거나 말을 섞었다가는 잘못한 것도 없이 호되게 당할 것 같았다.
정환아, 사람 참 많지? 오늘은 서울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사는지, 사람구경하는 날이야.
놀이기구를 타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마음 다스리기 힘들고 그러다보면 아이들과 편안하게 지내지 못할 것 같아서 조카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나도 마음을 비웠다.
TV 광고에서만 보았던 놀이공원에 처음 와 본다고 몹시 들뜬 조카에게 광고처럼 즐겁고 신나는 모험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할인 카드를 챙기지 못해서 입장권을 제 값 다 내고 샀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아이들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뒤늦은 후회.
이런 마음들을 비우고, 아이들에게 꼭 타고 싶은 것을 정하게 하고, 줄 서는 것이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결정을 미루고나니 그나마 일이 순조로웠다.
엄마, 다리 아파.
고모,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요?
좁은 공간에 구불구불 돌고 돌아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으니 아이들의 불평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 그럴 때 '불평하고 짜증내면서 이걸 꼭 탈 필요는 없다, 줄 서기 힘든데 그만 놀고 집에 가자.'고 쐐기를 박으면 한동안은 잠잠해졌다.
솔직히 나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무시무시한 인파, 참을 수 없는 소음과 사람들의 무례함, 거기에 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줄을 서는 지루함, 아이들을 보아주기 전에 내가 이 상황을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일부러 느릿느릿 걸었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놀이공원이 그렇지 뭐, 사람구경하는 거야.' 조카에게 했던 말을 계속 되뇌었다.
내 주위에 줄을 서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부모들 자신도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든데 거기에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받아주랴, 가족이 흩어져서 눈치빠르게 다른 놀이기구에 줄을 서는 작전을 수행하랴, 서로 먼저 왔다고 입씨름, 몸싸움까지 하다보면 회전목마에 올라 드라마처럼, 광고처럼,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던 소박한 기대는 땀에 절은 티셔츠처럼 얼룩이 진다.
모처럼 기획한 이벤트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정신적 피로가 극에 달하고 표정 관리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너덜너덜 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이동산과 같은 이벤트가 과연 즐거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톰 호지킨슨은 '즐거운 양육혁명(원제 The Idle Parent)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테마파크에 가서 즐겁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곳은 재미란 것을 무력화시키는 곳이다.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 이따금 스릴로 양념을 쳐주는 장기간의 권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는 것 말고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돈을 많이 지불하는 가족 나들이를 상품의 희생양, 노예들의 휴일이라고 비판하면서 '재미란 게 정말이지 돈을 지불하고 얻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주말이나 연휴가 다가오면 인터넷을 뒤져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찾는다. 그래야만 바쁘고 피곤한 일상을 보상 받고 좋은 부모 노릇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광고 속 이미지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도 알고 있지 않은가.
굳이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일상에서 충분히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실내온도가 36도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 주말, 더위를 피해 어디라도 가 볼까, 하다가 롯데월드의 무시무시한 인파가 떠올라 그냥 집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강동풀빌라의 피서...
사실은 피서,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속에서 지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좌린과 나는 옥상에서 낮술을 마시며 신문과 책을 읽고 사진 편집을 하면서 지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옥상과 집을 오르내리며 잘 놀았다. 구체적으로 무슨 놀이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둘이 재미나게 잘 놀고 엄마 아빠를 별로 찾지 않으니 솔직히, 참 편안했다.
점심에는 아이들에게는 집에서 만든 빵과 떡, 감자 등을 알아서 챙겨 먹게 하고 우리는 비빔면을 끓여 열무 김치를 잔뜩 넣고 비벼 먹었다.
저녁에는 간만에 숯불을 피워 고기와 새우를 구워 먹고...
천국이 따로없네.
대전에서 올라온 날, 옥상에 물을 받아주었더니 일곱살짜리 조카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