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개원 기념 바자회를 한다고 했다. 안 쓰는 중고물품을 기증받아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어린이집 연락장을 통해 선생님들은 적극적인 동참을 여러 차례 호소했다. 녀석이 어린이집에서 단체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행사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라도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날짜는 깜빡 잊고 있었다. 나중에야 확인해보니 행사일은 5월3일, 취재원과의 점심 약속이 잡혀 있었다. ‘이번에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이집에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초대장을 펼치니 녀석의 얼굴 사진이 쏙 튀어나왔다. 팝업북 형식으로 첨부된 깜찍한 초대장. 아~ 어느 아빠가 이 초대장을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겠는가.



0918a879422378057c4a6e72f6046303.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가 어린이집에서 바자회를 한다는데, 거기 가봐야겠네요. 약속을 좀 미루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근무처와 녀석의 어린이집까지는 버스로 여섯 정거장,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행사 당일 12시에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아내는 500원짜리 딸기쉐이크와 냉커피를 나르고 있었고, 장모님은 행사장 옆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주먹밥 식사를 하고 계셨다. 소풍 분위기에 기분이 들뜬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행사장으로 이끌었다. 어린이집 앞마당에 꾸며진 행사장에는 판매 예정된 중고물품 뿐만 아니라 사진촬영용으로 비치된 각종 장식의 모자가 있었다. 녀석은 소방관 안전모와 경찰 모자를 쓰고는 연신 경례를 붙였다. 행사장을 떠날 줄 모르는 녀석을 장모님께 맡기고 돗자리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먹는 주먹밥과 떡볶이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으로 가보니, 녀석은 플라스틱 바퀴가 달린 특이한 모습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이제 행사 막바지. 선생님은 확성기로 “물건 떨이로 싸게 팔아요!”라고 선언했다. 견출지에 표기된 자전거 가격은 1만원. 선생님한테 말씀 드렸다.

 “선생님, 이거 사려고 하는데요, 싸게 주세요.”

 “아버님, 호호호, 4천원만 주세요.”

 없어도 되는 장난감이지만 바자회에 참석한 기념으로 멋지게 질렀다.



 

 8a1c89f8959ae4ad7077cb5c146aaa8e.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풍선 날리기였다. 아내가 녀석의 손을 잡고 쪽지에 소원을 같이 적어 넣었다.

   “나의 소원은... 자동차가 되고 싶어요.”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자동차 마니아인 녀석은 엉뚱하게도 저렇게 답했다.



 

 원장 선생님의 바자회 수익금 보고와 결산, 클로징 멘트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풍선을 날려 보내자 녀석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오색 풍선이 하늘로 비상하는 장관이 연출되는 순간에 웬 울음? 풍선을 날려 보낸 아쉬움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 같아 울타리에 장식용으로 묶여있던 풍선을 가져다주니 저리 치우란다.  예전에 풍선을 갖고 놀다가 터져서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풍선이 무서웠거나, '와~' 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에 놀란  모양이었다. 요 겁쟁이 녀석...

 



 그렇게 어린이집 바자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그런데...



 

 으앙~ 으앙~. 이집 아이, 저집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좀 전까지 풍선을 날리며 환하게 웃던 아이들이 갑자기 대성통곡한다. 녀석의 울음 바이러스가 전파된 건가? 이게 웬일인가 싶어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뭔 일이래?”

 “이제 엄마들하고 작별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아이들이 우는 거지.”



 

 안 그래도 아내는 녀석을 조퇴시키기로 결정해둔 터였다. 평소와 다르게 점심 때 일찌감치 엄마를 만난 이상, 떨어지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울고불고 그러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을 바에야 집에서 할머니와 놀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상황을 염려해 아예 반일휴가를 낸 엄마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지 못하는 엄마와 아이들의 ‘생이별’ 순간, 아이들의 울음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것이었다.



 

 29cb20d94bf36a9e78d68fe84e93b675.아이들에겐 그 어떤 즐거움과도 바꿀 수 없는 게 엄마(또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일 것이다. 아침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서 나오는 엄마들의 심정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광경이었다. 갑자기 김광석의 노래가 생각났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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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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