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쁘게 한 달을 보냈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경비원 최저임금 문제가 대두되어
입주자 대표회의에 처음 참석해 보았다.
몇몇 이웃, 그리고 다엘과 함께 추운 밤에 손을 불며
주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려고 아파트 우편함에 넣은 소식지가
관리소장에 의해 절취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서 신문에 투고를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사는 마을이 어떻게 운영되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됐다.

 


아파트소식지1.png » 우리 아파트 880세대의 우편함에 주민들이 넣은 소식지  

 

1월 중순에는 국회의 입양법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이라기보다 입양가정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입양특례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는 국회의원 측의 홍보 자리였다.
토론회 참석 후,
아동학대의 본질적인 원인은 파헤치지 않고
입양가족이라는 소수자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에 대해 원고를 써서 잡지에 보냈다.

 

 

1남인순의원토론회.jpg » 국회에서 있었던 입양 관련 토론회

 

 

입양특례법 개정에 있어 가장 큰 논란은
헤이그 국제아동 입양협약 비준을 위해
입양 전반의 절차를 정부가 관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다.
60년 넘게 민간기관에 입양을 맡기고 방관하던 정부가
세부적인 준비, 즉 예산과 인력확보도 안 된 상태에서
모든 일을 도맡았을 때 오는 혼란은
입양되지 못하고 시설에 남게 될 아이들이 온전히 짊어지게 된다.
헤이그 협약에는 정부뿐 아니라 인가 단체나 개인에게도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민관 협동의 현실적 대책 없이
협약의 일부 글귀만 내세우며 고집 부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입양을 반대하는 일부 단체들에 의해 선언적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입양부모들은 아이들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국회 토론회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린다.
‘친생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 있냐’는
미혼모 단체장의 분노에 찬 외침과
패널로 나온 해외입양인의 어두운 얼굴을 기억한다.
그들의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타인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소외된 곳에서 자신의 발언권조차 갖지 못한 이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느 시설 퇴소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육원에서 퇴소한 후 조직에 몸담았다가 교도소로, 외국으로 떠돌았던 그.
몇 번의 자살시도와 외로움에 얼룩진 삶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때는
해외에서 막노동을 했던 짧은 시기였지만,
그마저도 과거의 범죄기록으로 비자가 거부되어 강제 귀국해야 했다.
왜 그는 해외에 있을 때 행복했을까?
해외의 인종차별보다 더한 차별이 국내에 있었을까?
그의 글 말미를 옮겨본다.

 

“가끔은 이전처럼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다달이 내야 하는 월세 부담에 떠돌아야 하는 주거지 때문에
아픈 몸과는 상관없이 쉼 없이 일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새로 일할 때마다 제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것 때문에… (가족.학력 등등..)
가끔은 부모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을 볼 때 너무 부럽습니다.
저 아이들은 원 없이 공부할 수 있겠구나,
나처럼 일을 계속 하지 않아도
잠시 투정 부릴 수 있는 부모도 있고
밥 먹으라며 타박할 엄마도 있고
잠시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무엇보다 저처럼 부모가 있다고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제가 배가 부른 걸까요?”

 

시설에서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몇 백만원의 자립급만 손에 쥐고 만 18세가 되면 독립해야 하는
허허로움은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홀로 던져진 두려움의 실체는 일부나마 느낄 수 있다.
누가 더 불행한가를 증명하라는 게 아니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가장 위기에 처한 이를 먼저 구하라는 기본 원칙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해외입양인, 미혼모, 입양가족 모두 자기 이름의 단체가 있다.
그러나 결코 사회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최후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시설아동, 시설 퇴소인의 존재는 쉽게 잊혀진다.

 

어른들이 황량한 벌판에서 싸움을 하는 동안
안온한 오두막에 깃든 작은 새처럼
오늘 밤 평온한 잠에 빠진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본다.
사무치게 소중한 내 아이가
부모 없이 시설에서 성장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면
벼랑 끝에 선 듯한 아득함을 느낀다.

 

입양은 많은 사람들의 시각 차가 존재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기원한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서 발언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을 먼저 기억하기를,
시설에서 간절히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우선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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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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