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주택 임대차 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 전세금 받아봤자 ‘굴릴 데’도 없고, 집값이 오를 가능성도 옛날 같지 않으니 집주인으로서는 월세 전환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정부 역시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태도다.
‘어쩔 수 없는’ 경제 변화를 한꺼풀 벗겨보면 이익을 보는 사람(또는 손해를 덜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갑’인 집주인은 월세 전환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지만, 세입자는 주거비용의 가파른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월세 수준에서는 전세에 반전세로, 반전세에서 완전월세로 바뀔수록 주거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득 대비 월세 비중이 높아 부담이 더 크다. 중산층 세입자라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고소득층이 아니고서는 버거운 수준이다.
20~30대 젊은층의 좌절감은 더 클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훌쩍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부모 도움 없이 집 사기가 힘들어진 현실에서, 내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을 모으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들린다. “그러니까 집을 사세요. 요즘 금리도 싸고 대출도 많이 해주잖아요.” 아무리 대출금리가 싸다고 해도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를 사려면 매달 100만~200만원의 원리금을 20년 이상 갚아야 한다. 비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앞으로 20년 넘게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에 하나 집값이 내려간다면? 내 돈 30%에 은행 대출 70%를 받아 집을 산 뒤, 집값이 30% 내리면, 내 순자산은 0원이 된다. 은행 빚만 고스란히 남는다. 현재의 주택담보대출은 집값 하락의 위험을 모두 대출자가 감당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렌트푸어’와 ‘하우스푸어’, 모두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월세시대 도래는 전체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입자들의 가처분소득이 크게 감소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부진한 내수경기가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각종 지표를 보면 가계소득 부족으로 인한 소비 침체를 빚으로 가까스로 메우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가 전세제도를 억지로 유지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경제의 변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과 부담을 경제주체들이 되도록 공평하게 나눠 지도록 도울 수는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는 한편, 세입자를 보호하고 월세 수준을 낮출 수 있도록 민간임대시장의 각종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은행 중심적 대출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교수가 <빚으로 지은 집>에서 제안한, 집값이 떨어질 경우 은행과 대출자가 집값 하락분을 나눠서 부담하는 ‘책임분담 모기지’(shared-responsibility mortgage) 같은 것 말이다. 무엇보다 집값이 더 오르도록 부추기는 정책은 그만둬야 한다. 무조건 “빚내서 집 사라”는 식의, 다주택자와 건설업체, 은행(금융자본)의 입장에서 벗어나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shan@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