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1.JPG » <괜찮아, 사랑이야>의 한 장면.

 

“늘 널 숨막히게 했던 엄마는 엄마다워야 한다는 큰 편견 하나가 깨졌네? 누가 그러더라. 세상에서 제일 폭력적인 말이 남자답다, 여자답다, 엄마답다, 의사답다, 학생답다 뭐 이런 말들이라고.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서툰건데…. 그래서 안쓰러운 건데. 그래서 실수 좀 해도 되는건데.”


최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 역시 홀딱 반하고 말았다. 드라마를 가뭄에 콩 나듯 보는 내가 ‘본방 사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번 주는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을 재우고 이 드라마를 봤다. 9회분을 보는데 극중 지해수의 선배 이영진(정신과 의사)이 후배 지해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해수는 어렸을 때 엄마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후 엄마를 죽도록 미워하다 뒤늦게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당시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 이해하게 됐고 그 사실을 영진에게 털어놓았다. 

  
아! 그날 밤 그 대사는 내 가슴에 와서 콕 박히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많은 여자들을 숨막히게 하는 엄마다워야 한다는 편견에 대해서 이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말해줄 수 있는 드라마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더랬다.

 
남녀 평등 사상이 확대되고 여권 신장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다. “세 살까지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포되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무슨 일이 터지면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키웠길래”라는 말들을 한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그저 한 인간이었던 여자와 남자가 아이를 낳는 순간 엄마와 아빠로서 지나친 역할을 요구받는다. 사회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세 살까지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을 안보내주는 회사가 많다. 양육이나 가사는 남녀 모두 분담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여전히 일 중독 사회이고 성과 중심 사회여서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됐고 성인이 된 부모 세대들은 또 여전히 자신의 부모들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과거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잊지 못하고 부모들을 원망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아니라 정해진 틀을 정해놓고 그 틀에 사람을 맞추는 사회다. “엄마라면 어떠해야 한다”라는 틀을 정해놓고 엄마들이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엄마답지 못하다고 매도한다. 그러한 사회적 편견은 또 많은 엄마들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나?’ ‘혹시 내가 아이에게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며 양육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  그런 양육 죄책감을 갖게 되면 양육할 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또는 양육 효능감이 떨어져 줏대있게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와이 관계가 망가질 수 있게 되고,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온 정신과 의사 말처럼 “엄마답다, 아빠답다’라는 말처럼 폭력적인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에서 나를 비롯해 많은 엄마, 아빠들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되었고, 그래서 서툴 수밖에 없다. 실수할 수밖에 없다. 

 

서툴고 실수하는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인정해야 더 좋은 엄마, 아빠가 되고 더 성장하는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에게도 실수했으면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내가 엄마답지 못했다고 자책할 일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나와 아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건설적인 문제해결 방식이다. 또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면 된다. 내가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엄마다워져야 한다고 훈계를 할 것이 아니라, 아내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가사와 육아 분담을 해주면 된다. 내가 아내라면 남편에게 아빠다워져야 한다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빠가 어떻게 아이에게 좋은 아빠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 의견을 나누고 그런 기회를 만드는 노력을 해보면 된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며 나는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서툴 수 있고, 그래서 안쓰럽다는 말이 참 위로가 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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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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