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아침, 딸과 아빠가 나란히 곯아 떨어져 있다.
'음마마마마~ 아빠빠빠~~'
딸의 울음소리가 불꺼진 방을 가득 채웠다. 딸은 방 이곳저곳을 기어다니다, 닫힌 문 앞에서 미어캣처럼 몸을 일으켜 문틈 사이로 삐져나오는 빛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도대체 아빠 엄마는 어딨냐며, 왜 나를 이렇게 울리는 거냐며, 왜 당장 나를 안아주지 않는 거냐며, 딸은 방문을 두드리다가 이불 위에 엎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러길 5분. 방 한구석 책상 밑에 숨어있던 나는 볼 위로 흐르는, 땀인지 눈물인지 알 길 없는 액체를 훔쳐낼 수밖에 없었다. 만 9개월, 수면교육 첫날의 가혹한 현장이다.
이 가혹한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유식 숟가락을 입에 갖다 대면 세차게 고개를 젓고, 분유도 먹는둥 마는둥 하는 딸의 건강이 염려돼 동네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아직도 밤중수유를 못 끊었냐, 수면교육은 왜 안한거냐”며 아내와 나를 심하게 타박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화낼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은 아내와 나를 딸의 건강을 챙기지 않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몰아세웠다. 집으로 돌아와 쌓아뒀던 각종 육아서적을 찬찬히 훑어봤다. 수면교육의 당위, 수면교육을 했을 때 좋은 점 등등을 주입식으로 머리와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책 어딘가에 써있었던 ‘퍼버법’을 해보기로 마음 먹고(수면교육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퍼버법이 있다는걸 이날 처음 알았다), 아내에게 오늘 딱 하루만 해보자고 권했다.
내가 선택한 수면교육 방법은 이랬다(육아서적과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성공기를 참고했다). 저녁 6시 이전에 목욕을 시키고, 컨디션을 봐 가면서 늦어도 7시반 이전에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 준 뒤 최대한 많이 먹였다. 원래 딸은 토끼처럼 뛰어놀다 분유나 모유를 먹으면 잠드는 습관이 있었는데(이전 포스팅 참조), 먹는 동안 잠들지 않게 했다. 눈을 감으려 하면 흔들어 깨웠다. 아이가 기어다니는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안전한 환경을 만든 뒤, 아이를 눕혔다. 아내에게 “우리딸 잘자~ 내일 아침에 봐~”라는 인사를 시킨뒤 방에서 나가게 하고(이미 이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목소리조차 못내게 했다(아내의 목소리만 들려도 엄마에게 가려고 보채기 때문이다). 이어서 혼자 잠들어야 하는 당위에 대해 울고 있는 딸에게 일장연설을 했고, 평소 잠에서 깬 딸에게 써먹었던 다리 마사지를 수면의식으로 써먹었다. 딸이 어느 정도 잠이 들랑말랑 할때,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걸 눈치 챈 딸이 더 세차게 울었다.
퍼버법의 핵심은 운다고 해서 바로 달려가는게 아니라, 얼마간 스스로 잠들기를 기다린 뒤 달래주는 걸 반복하는데 있었다. 처음엔 5분, 그다음엔 10분, 15분 등으로 늘려가면서 기다렸다 달래줬다. 절대로 안아주지 않고 눕혀서만 달래줬다. 그럴수록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가 우는데 아무렇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나. 참으로 살 떨리는 시간들이었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안된다는 굳은 심지로 버텼다. 결국 첫날, 아이는 수면의식을 한뒤 약 30분만에 침·콧물·눈물 범벅을 한 채로 곯아 떨어졌고, 한두번 뒤척인 걸 빼고는 그 다음날 새벽 5시반까지 내리 잤다. 이는 두어달 전 MRI를 찍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다음날까지 잔 날을 빼곤 만 9개월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음날엔 10분 정도 울다 잠들었다. 셋째날·넷째날도 한 10여분 울다가 잠들었고, 다섯째날 즈음부터는 5분정도 토닥여주기만 해도 잠들었다. 중간중간 깬 날도 있었지만, 모든 부모들이 바란다는 '통잠'에 가까웠다. 놀랍지 않은가? 만 석달 넘도록 심한날은 10분에 한번씩 깨면서 밤새 고생했던 시간들이 매우 바보같던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건 딸이 저녁 6시 언저리만 되면 졸려 한다는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재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책에 나온 것처럼, 또 의사가 말했던 것처럼 수면교육의 효과는 밤뿐만 아니라 낮에 여실히 드러났다. 낮에 잘 놀고, 낮잠도 잘 자고, 먹기도 잘 먹는 것. 딸의 이유식 섭취량은 이전보다 약 2~3배까지 늘었고(지금도 늘고 있다. 아내의 이유식이 맛이 없었던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ㅋ), 아기띠에 안겨서만 잤던 딸은 낮에도 누워서 잘 잔다. 이 모든게 수면교육 며칠만에 생겨난 성과다. (다시한번) 놀랍지 않은가?
부모들에게 생긴 자유(책에 나오는 이른바, 타임 포 유)도 놀랄만한 성과다. 잘자는 딸 덕분에 아내와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았다. 3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야근도 아내에게 미안함이 덜해졌다. 이전엔 누군가 한명은 딸 옆에 찰싹 달라붙어 갑자기 깬 딸을 달래며 강제조기취침을 해야 했지만, 이젠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도 보고, 군것질도 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눈다. 덤으로, 낮시간에 아이를 봐주시는 시터 이모님이 가녀린 몸으로 무거운 딸을 안아 재워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고맙다.
다만 수면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몇차례 있었다. 넷째날인가, 딸이 방구석에 숨어 있는 나를 발견해 깰 때마다 나를 찾아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엔 수납 상자를 장벽으로 삼아 눕힌뒤 방 밖으로 나왔는데, 딸이 엄마아빠를 찾아 밖으로 나오려고 수납상자를 기어 오르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날 아내에게 엄청 혼났다. 돌이켜보면 아찔한, 그만큼 기어다니는 아이에겐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걸 깨닫게 한 순간이었다. 또, 한참 자다 깨서 울고 있는 애를 바로 달랬다가, 주변에 엄마 아빠가 사라지는 걸 알아채면 계속 깨는 일도 있었다. 엄마에게 애착이 더 강하다 보니, 엄마가 재운 날엔 특히 더 그랬다. 그만큼 아빠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수면교육 여부를 두고 갈등할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애를 굳이 왜 울려야 하냐, 원래 돌까지는 엄마 젖 먹으면서 자는거다, 애가 우는 만큼 정서에 좋지 않다, 등등의 논리였다. 그러나, 복직을 한달 앞둔 아내가 매일 밤 딸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밖에 없으며, 잠들기 전에 우는 시간이 밤새 깨서 우는 시간의 총량에 비해 결코 길지 않았다. 무엇보다 잘 먹고 잘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비록 늦었지만(책에서는 보통 만 4개월때 수면교육을 시작하라고 권한다) 수면교육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여튼 딸은, 요 며칠 열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어려움 없이 낮잠과 밤잠 모두 잘 자고 있다. 본인도 힘들었을텐데, 밤마다 매몰차게 대한 아빠에게 안겨 재롱떠는 딸에게 고맙기도 하다. 한편으론 아빠가 뭐가 필요한지 잘 알지 못해서, 그동안 꿀잠 한번 제대로 못재우고 낮에도 피곤, 밤에도 피곤하게 만든게 미안하기도 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명제를 스스로 입증한 딸아, 단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아침에 좀만 더 자줬으면 한다. 매일 아침 부스스한 차림으로 아파트 놀이터를 배회하고 싶진 않구나. 딱 (8시면 더 좋겠지만) 7시까지만 자자. 알았지? 사랑한다 우리 딸.
**글을 쓰면서, 정재호 저 <잘자고 잘먹는 아기의 시간표>와 멜린다 블로우·트레이시 호그 공저 <베이비위스퍼 골드>를 참고했습니다.

잠 잘 자고난 어느날 아침, 동네 유모차 산책을 하며 신이난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