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81419_P_0.JPG » 한겨레 사진 자료 ::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잘할게상 수상작]
사춘기 아들에게 갱년기 엄마가


거뭇거뭇 수염이 나는 사춘기 아들 호연아.

오늘 아침에도 너의 학교 소식지 기사를 엄마가 수정했다고 투덜투덜 화를 내며 학교에 갔고, 엄마는 미안하고 대견한 마음으로 오늘도 역시 베란다에서 네가 학교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착하기만 한 네가 엄마에게 가끔씩 화를 내는 모습도 엄마는 은근 대견하단다. 그렇게 우리 투닥투닥 총천연색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나의 모든 것 호연이...  너를 서른에 낳았어.

결혼을 일찍한 탓에 애 못낳는 여자로 낙인찍혀 감정적인 구박을 견디던 4년. 너를 임신한건 우리에게 정말 기적이었단다. 믿을 수 없을만큼 예쁜 아기였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슬펐던 일, 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던 그 때였어. 지금 혹시 네가 또 쓰러지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아마 좀 더 침착해지겠지. 경련이 멈추기를 몹시 힘들지만 기다릴 것 같아.  하지만 그 때는 그냥 엄마는 울면서 네 몸을 주무르고 1초라도 빨리 깨어나길 바라며 네 이름을 수없이 수없이 불렀단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엄마를 바라봐주길 바라며... 그리고 아빠와 부둥켜안고 정말로 많이... 울었단다... 잊을 수가 없어... 숨을 쉬지 못해 새파래진 너의 굳은 입술......

 

그럴 때마다 넌 너무나 힘든 일을 겪고 있었어.

힘든 수술을 연거푸 세번이나 받았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며 늦은 시간까지 시험공부를 했고, 감기에 걸려서 약을 먹고 엄마에게 야단 맞으며 약기운에 잠이 들었었어. 지금은... 가슴을 친다... 엄마의 잘못된 판단,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한 상태에서 혼자서 열심히 살아 '어른'이 된 독한 엄마의 잣대로만 생각한 상황들......그래도 넌 그 상황들을 짜증스럽고 힘들게만 생각하는 엄마를 원망하기보단 환기시켜주었어. 벌겋게 누더기가 된 너의 손에게 잘 이겨내주어서 고맙다고 하며 씨익 웃고 말지. 때론 처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보는 '손'이야기가 이젠 지겹다고도 해. 엄마가 말은 안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어. 내 손보다 더 커져버린 우리 아들의 손을 엄마는 아직도 밤마다 주무르고 문지르며 흉터가 조금이라도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사라져주기만을 기도한다. 너의 손이 아팠던 것도, 네가 경련을 시작한 것도 모두 엄마의 잘못만 같아서.......

 

언제 또다시 경련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너를 보면 항상 살얼음을 들고 있는 것 같아.

그러면서 핸디캡을 가진 너를 공부시켜 성공하게 만들겠다는 엄마의 욕심이 요즘의 너를 힘들게 하는 걸 잘 알아. 그리고 너의 인생을 그렇게 엄마 생각대로 끌고 나가고 있어. 자꾸만 돌아본다. 이게 맞는지... 


천성이 착해서 지금도 엄마를 잘 따라주는 우리 아들에게 '넌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공부를 잘해야한다.'고 매일 무시하는 듯 각인시키며 등수를 올리라고 강요하는 엄마는 너에게는 지금 '지상 최대의 악당'이 되어 있는 것 같아.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원망스러운 엄마' 말이야. 


얼마전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어. 네시간동안 독서실에 너를 가둬놓고 졸지 말라고 지켜 앉아 있으며 읽은 거야. 거인같아 보이는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소심하고 걱정많은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추하며 원망하는 내용이지. 수학문제 풀고 있는 네 앞에서 누구에겐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했어.


'글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너를 '시인이 되면 굶어 죽는다'며 다른 사람앞에서 조롱섞인 농담을 하는 엄마지. 너의 재능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꿈은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였어... 엄마도 어려서 꿈이 시인이었단다. 결국 은행원이 되었고, 이젠 그저 '아줌마'로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너의 꿈을 지지해줄 수가 없었어. 하지만, 글을 쓸때마다 몰입하고 즐거워하는 너에게 '카프카의 아버지'같은 존재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뜻대로 저 학원가를 돌아다니며 너를 기르면 남는 건 원망뿐이리라는 생각말이다.


엄마는 요즘 또다른 성장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아. 

호연이를 이해해주는 사람으로, 글쟁이가 되겠다는 너의 꿈을 인정해주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너의 멘토로서의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말이야.

 

힘든 일들 항상 긍정적으로 잘 견디어준 아들아 너에게 너무 욕심을 내서 미안하다.

쓰러지지 않고 웃으며 옆에 있어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리라 마음 먹었던 엄마였는데... 엄마는 이제 너를 진심으로 '내 눈물같은 아들'이 아닌, '글 쓰는 호연이'로 자랄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말 한마디 눈길 하나까지도 너의 마음을, 꿈을 존중하는 서포터가 되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할께. 그래도 항상 웃어줘서 고맙고, 변성기때문에 엄마 귀에 피가 난다고 구박해도 엄마 옆에서 구부려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 불러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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