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처럼 유치원을 마치고 놀이터에서 놀던 딸아이 서령이.

“아빠, 나 목마 태워줘. 친구들 찾게.”

“그래”

오늘도 어깨가 멀쩡하지는 않겠군. ‘서령이 친구들아 어서어서 나와라.’ 서령이와 나는 그 순간만큼은 한마음이었다.

“애들아 애들아 어디 있니? 애-들-아! 동생들하고 ㅇㅇ이만 만났으면 좋겠어. ㅇㅇ이가 동생들 잘 예쁘게 키우나 볼라고.”

오늘 따라 서령이 친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거야. 점점 어깨가 내려왔다.

“내가 조용히 하고 찾아 봐야지. 친구야 친구야 어디 있니?”

(이틀 후 서령이는 친구들 찾는 노래 “친구들아(아빠가 붙인 제목)”를 내 목마에서 발표했다.

“친구들아 나와라 어서어서 나와라 내 목소리가 들리면 어서어서 나와 주겠니”)

공원을 헤매고 다니다 어떤 남자 아이를 보았다.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유치원 오빠였다.

“저 오빠가 산을 만들었데요. 정리할 시간이 되자 어떤 애들이 “정리하자 어서 망가뜨려” 그래서 저 오빠가 화난 거 봤는데.”

“애써서 만들었는데. 부숴서 그랬구나.”

“꽃들반에 머리 묶은 언니도 있고 이빨 빠진 언니도 있어. 언니 이빨이 치카치카 안해서 빠져버린 거예요. 하나 이빨이요.”

“너도 어제 졸립다고 치카치카 안했잖아. 어쩌면 이빨 빠질 지도 몰라.”

“안빠졌잖아요. 나 밥 먹고 나서 양치질 열심히 해야지. 아빠보다 더-더-더-더.”

요즘 서령이는 유치원 아이들을 말할 때 여자아이는 꼭 머리를 어떻게 묶었는지 알려준다. 아빠가 머리를 잘 묶지 못해서 더 그럴까. 처음에는 머리를 묶어달라고 하다가 어느 날 머리핀으로 바꾸더니 급기야 머리띠를 사달라고 해서 그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요즘은 딸아이도 포기했는지 그냥 가기도 한다. 머리묶기는 나의 숙제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자 계속 공원을 배회.

“오늘 oo이도 안보여. 김oo 김oo. 오늘 감기 걸렸나?”

“서령아 여기서 내릴 까. 친구들도 안 보이는데.”

“안 돼. 친구들 찾아야 돼.”

“잠깐 쉬었다 가자. 아빠 어깨 아프다.”

친구들과 같이 노는 재미를 안 서령이는 친구들을 찾아 다녔다.

가만 저기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아이가 딸아이 친구인 것 같은데. 서령이가 먼저 알아봤다.

“아빠, oo이랑 놀아도 되나요?”

“그럼”

그렇고말고. 으하하하. oo이는 할머니와 함께 놀이터에 왔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한다. 두 아이는 놀이터를 휘젓고 다녔다. 놀이터 경계석에서 떨어지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놀이터 옆에 있는 흙더미를 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뛰어갔다. 마침 그곳에 페트병 두 개가 뒹굴고 거렸다.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를 주워 페트병 안으로 흙을 넣기 시작했다. 한 눈 팔 틈도 없었다. 진지했다.

“아이고 그건 지지잖아. 여기는 방이 아니잖아. 흙이 묻잖아.”

oo이 할머니는 거듭해서 말했지만 흙 놀이에 빠진 oo이 무릎은 흙으로 물들었다. 아이들은 흙을 참 좋아한다. oo이가 서령이 페트병을 빼앗았다. 어떻게 하나 지켜보았다. 실랑이를 벌이던 서령이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 났어.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갖고 노는 거야.”

그러나 oo이는 휙 가버렸다. 서령이는 다른 병을 주워 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 선생님에게 “서령이는 양보를 잘 해요”라는 말을 듣고서는 ‘혹시 더 가지고 놀고 싶은데 빼앗기는 건 아닌지’라는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가져갔다고 해서 감정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고 금방 다른 것을 가지고 잘 노는 모습을 보고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마다 스타일이 다를 뿐 빼앗고 빼앗긴다는 내 시각으로 보지 말자. 서령이는 페트병에 흙을 다 담자 주위에서 주운 빨대를 꽂아 내게 가져왔다.

“아빠, 새콤달콤 음료수입니다.”

“(쭉 빨아먹는 시늉을 하며)아 맛있다.”

이에 질세라 oo이도 빨대를 꽂은 페트병을 들고 왔다.

“토마토 쥬스”

“아 달다.”

잠시 후 음료수 뚜껑을 놓고 아이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내꺼야!”

그것도 잠시 뿐 아이들은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흙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촉감 때문에 그럴까. 어렸을 때 흙으로 두꺼비집을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지었다 무너뜨렸다 다시 짓고 무너뜨렸다. 흙의 느낌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이거 그만하고 운동장에 가서 놀자.”

흙 범벅이 된 oo이 바지를 본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가 흙에서 놀다보면 순식간에 흙범벅이 된다. 나는 그 모습이 좋다. 빨래도 내가 해야 하지만. 더럽다고 계속 신경 쓰면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차라리 좋은 것 하나만 생각하자.

운동장으로 갔다.

“아빠, 신발 벗어도 돼요?”

“응”

서령이를 본 oo이.

“신발 벗어도 돼요?”

“할머니께 여쭤봐야 하는데.”

“할머니, 신발 벗어도 돼요?”

“응”

신발을 벗은 두 아이는 운동장을 뛰어 다녔다. oo이가 두 팔을 벌려 나비처럼 날아가자 서령이는 할머니 앞에서 나비처럼 팔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이 모습을 본 oo이가 달려와 서령이와 똑같이 날갯짓을 했다. 아이들이 나비 같았다. 나비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달리다가 축구골대를 끼워 넣는 구멍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물이 고였다.

“빠지면 다 지저분해져.”

구멍을 보고 얘기를 했다. 늑대를 놀이를 하다 개구리 놀이를 시작했다. 앉았다가 펄쩍 뛰어 앞으로 가는 아이들. 나도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참에 잘 됐다. 있는 힘껏 입을 벌렸다.

“나는 개구리 잡아먹는 악어다!”

“으악”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펄쩍 펄쩍 앞으로 뛰어올랐다. “악어다!”와 “으악” 소리가 교대로 울렸다. 그렇게 펄쩍 뛰던 개구리 한 마리가 옆으로 쓰러졌다. 서령이였다.

“힘들어서 죽었어.”

oo이도 쓰러졌다. 나도 계속 입을 벌리자니 얼얼하긴 했다. 조금 있다가 데굴데굴 구르더니 쭈그리고 앉았다.

“다시 살아났어.”

“아빠, 알에서 깨어나야지. 삐약삐약 해야지.”

“삐약삐약”

병아리 놀이가 시작되었다.

“oo아 집에 가야지.”

아까부터 집에 들어가자는 oo이 할머니. 이제는 진짜 헤어져야 할 시간인가 보다.

“oo아, 안녕.”

oo이와 헤어지자마자 공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을 보자 서령이도, oo이도 그 친구들에게 뛰어갔다. 아무래도 oo이 일찍 집에 들어가기는 틀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저쪽 숲 에서 낯익은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서령이 친구 다섯 이다. 대대적으로 판이 벌어질 모양이다. 그 중에 두 친구는 세 시간 째 바깥놀이 중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리를 이루어 아까 놀던 그 놀이터로 몰려갔다. 남자아이들은 뜀박질하기 바쁘고 여자아이들은 시소를 타다 그네를 타다 미끄럼틀을 탔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은 노는 방식이 달랐다.

바람이 불자 벚꽃이 비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들은 탄성을 질렀다.

“너무 예쁘다.”

벚꽃을 보다 좋은 생각이 났다. 서령이를 번쩍 들었다.

“서령아, 가지 흔들어 봐. 꽃잎이 비처럼 떨어질 거야.”

나뭇가지를 흔들자 꽃잎이 바람에 날렸다. 서령이가 까르르 깔깔 웃어댔다. 아뿔사, 어느 틈에 아이들이 내 앞으로 줄을 섰다. 다음 아이를 번쩍 안았는데 팔이 후들거렸다. 남자아이라 달랐다.

“아빠, 그 친구는 무거워요.”

서령이 말은 진짜였다. 그래도 힘든 내색하지 말아야지. 다시 다음 친구를 안았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았다. 다시 서령이 차례였다.

“서령아, 아까 해봤지. 아빠 팔 아파.”

얼굴이 찌그러지는 서령이. 그래 한 번만 더 해보자. 나는 아빠니까. 이제는 팔이 벌벌 떨렸다.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 나고 재미있기는 한데. 그런데 그 사이 아이들 몸무게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닐 텐데, 더 이상 들 수 없었다. 꾀를 내야만 했다. 나도 살아야 했다.

“애들아, 술래잡기 하자. 내가 술래 할게. 너희들 숨어.”

와! 하면서 화단 쪽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휴 다행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쥐란 놈이 물어도 꼼짝 말고 달싹 마라 찾는다.”

“아니 아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쥐란 놈이 물어도 꼼짝 말고 달싹 마라 찾는다.”

화단 속에 숨은 아이들 머리가 다 보였다. 그래도 못 본 척 해야 한다. 한 녀석은 고개를 빤히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못 본 척 해야 한다.

“어디 갔지. 한 명도 안 보이네. 요기 숨었나. 아니네. 저기 숨었나. 아니네. 여기 검은 게 뭘까. 도대체 뭘까.”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아이들은 몹시 흥분했다. 이 와중에도 두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머리를 박은 꿩 같았다.

“똑똑. 찾았다.”

“다시 술래잡기해요.”

술래잡기는 계속되었고 아이들은 날이 저물도록 뛰어 다녔다.

“이제 파워레인져 놀이 할까?”

마무리 놀이를 제안했다. 내가 괴물이 되고 아이들이 파워레인져가 되어 싸우는 놀이다.

“삐삐삐 서령이 분홍색 파워레인져 나와라.”

이렇게 파워레인져들을 부르고 있을 때 비보가 들렸다.

“애들아, 이제 집에 들어가자.”

엄마들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애들이 왜 울어요?”

“이제 막 파워레인져 놀이 하려는데 들어가자고 해서요.”

울면서 자리를 떠나는 아이들. 놀이터에는 내 품에 안겨 우는 서령이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서령이 단짝 친구만 남았다.

“서령이하고 파워레인져 놀이하고 들어가자.”

서령이 친구 엄마의 말과 동시에 나는 괴물로 변신. 두 아이들은 “얍얍”거리며 괴물을 무찔렀다. 아이들이 몇 번이나 괴물을 물리치는 사이 퇴근한 아내가 놀이터로 왔다. 우리도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안녕”

서령이와 친구는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오자 온 몸이 쑤셨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노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아이들하고 흥이 나게 놀아본 지 얼마만인가.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놀만큼 놀아야 커서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어렸을 때 충분히 놀지 못해 생긴 감정의 찌꺼기는 평생을 따라다닌다고. 요즘은 단지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 든다.

“동네 엄마들하고 번개팅했어. 아홉 시에 공원 벚꽃나무 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했어.”

아내는 자정을 한참 넘어 집에 들어왔다.

“동네에서 먹으니까 마음이 너무 편한 거야. 참, 엄마들이 아까 당신이 아이들하고 잘 놀더라고 하던데.”

“사실 내가 재미있었어.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다 도시로 이사 온 후에 많이 놀지 못했거든. 내 몸 어딘가에 어릴 때 마음껏 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었나봐. 난 지금 놀면서 힐링하고 있어.”

벚꽃 날리는 봄날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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