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 4.jpg

 

아이를 키우다보면 너무 이뻐서 꼭 붙잡아 놓고 싶은 시절들이 있다.

첫 돌 지나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때, '엄~마'라고 처음 불러 줄때 아이는 너무 이쁘다.

처음으로 저 혼자 미끄럼틀에서 내려올 때나 글도 못 읽으면서 맘대로 그림책을 읽는

모습도 그렇고,  인형 아기를 보자기로 업고 돌아다니며 노는 모습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세 아이를 키우다보니 둘째 부터는 첫 아이때 감동하고 벅찼던 순간들을 미리 예상하고

기대할 수 있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훨씬 더 잘 보였다.

그리고 그 이쁘고 눈물나는 시절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알기 때문에 더 알뜰하고

소중하게 그 시절들을 누리고 음미할 줄 알게 되었다.

 

벌써 열 한살이 되어 발 크기가 나와 엇비슷해진 큰 아들에게서 서너살 무렵의 깜찍한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일곱살이 되면서 부쩍  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저 혼자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진 큰 딸아이도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막내가 있다.

올 1월에 세 돌을 맞은, 매 순간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쁜 네 살 딸아이다.

 

큰 애를 학교 보내고 비로소 늦은 아침을 먹은 후 머리를 감고 나왔더니

이룸이가 내 머리를 빗어 주겠다며 사진과 같은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내가 미용사니까, 엄마는 손님이예요' 하며 제 앞에 앉으란다.

이쁜  걸 좋아하는 막내는 그 사이 머리끈통을 뒤져서 머리끈 두어개를 귀걸이처럼

귀에 걸어 늘어뜨리고, 커다란 분홍 빗을 허리춤에 꽂았다.

엄마와 같이 미용실에 갈때마다 보았던 미용사들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부랴부랴 카매라를 꺼내 담으면서도 마음이 구름을 탄 것처럼

둥실 둥실 부풀어 올랐다.

급하게 써내야 할 원고도 있었고, 밀린 집안일도 넘치게 많았지만

나는 다 잊고 딸 아이 앞에 앉았다.

 

어린 딸은 허리춤에서 빗을 빼내어 내 머리를 정성껏 빗기기 시작한다.

 

창 너머로 봄 기운 가득한 하늘과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라이오에서는 '버스커 버스커'의 '꽃송이가' 어쩌고 하는 노래 소리가 흘러 나온다.

딸 아이의 작은 손이 내 머리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열심히 하느라 조금 가쁘게  내쉬는 숨 소리가 내 귓가에 스며들었다. 가슴이 터질것 처럼 행복했다.

 

이런 순간은 그 자체로 너무 완벽해서 1분 1초가 벅차고 아쉽다.

시간을 잘라서 간직할 수 있다면 통째로 챙겨두고 싶은 순간이다.

이젠 흰머리칼이 눈에 띄게 많아진 중년에 접어든 엄마의 머리칼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이렇게 온 맘을 다해서 빗겨주는 어린 딸이라니..

 

크는 모습이 이쁘면서도 가끔은 어 이상 자라지 않으면 좋겠어.. 라는 못된 마음도 품게  된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네 살 막내는 남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중요하지 않다. 저에게 스스로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만

열중해서 산다. 그래서 커다란 빗을 허리에 꽂을 수도 있고, 커다란 가짜 꽃을 머리에 꽂고

자랑스럽게 마을버스에 오르기도 한다. 보자기를 치마처럼 두르고도 여왕처럼 우아하게 집안을

돌아다니고, 언니 머리끈을 수없이 손목에 감고서 '나, 팔찌 찼다요' 하며

기쁨에 찬 표정으로 산책길에 나설수도 있다.

 

내겐 도무지 엉망진창 낙서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와서

'최이룸 엄마, 최이룸 엄마, 최이룸 엄마'라고 쓴 거예요' 하며 진지하게 내미는 예쁜 모습이나

변기에 앉아 똥을 싸면서도 입술을 쭉 내밀어 내 얼굴에 온통 뽀뽀 세레를 퍼 붓는 모습도

한없이 누리고 싶은 이쁜 순간이다.

 

'미운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란 말이 있지만 내겐 통하지 않는다.

열한 살된, 슬슬 사춘기로 접어 들고 싶어 안달하는 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일곱 살 둘째나 네 살 막내는 그저 이쁜 어린 아이들이다. 딸들이라 감당 못할

말썽을 부리지도 않지만 큰 아이때는 놀라고 벅찼을 말썽도 세 아이 키우는 내공이

쌓이다 보니 어지간한 것들은 빙글 빙글 웃으며 즐길 줄 알게 되었기 때문 일것이다.

오히려 말썽이 힘든 것 보다도 이런 말썽을 부리는 시간도 너무 짧다는 사실이

늘 맘에 있어서 어린 아이의 나날들을 함께 보내는 것이 그저 고맙고

소중할 뿐이다.

 

막내를 보면서 나랑 다툼이 잦은 큰 아이도 세탁물 통을 투구처럼 머리에 뒤집어 쓰고

기사 놀이를 하던 어린 날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동생앞에서 다 큰 것처럼 구는

일곱 살 둘째도 잠자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내 얼굴에 '눈 뽀뽀, 이마 뽀뽀, 눈썹 뽀뽀'하며

정성껏 입을 맞추어 주던 사랑스런 서너살 무렵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막내가 있어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더 자주 생각하게 되고, 그 어린날 내게 주었던

꿈 같은 선물들을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너무 이뻐서, 너무 소중해서 그냥 이 모습 그대로도 충분하고 완전했던 시절들이

두 아이에게도 분명 있었는데, 어느새 욕심이 많아진 나는 내 기대대로 해 낼것을

두 아이에게 요구하고 있었나보다. 막내가 있어서 내 어리석음도 더 잘 보이고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아아아... 이쁘다.

 

하루 종일 내 곁에서 종달새처럼 조잘거리고, 아무때나 매달려 안기고 뽀뽀하고

떼를 쓰고, 언니랑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를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하고 엄마의 손길을 과자인양, 선물인양 반기고 환영하는 이 열렬한

어린 펜 앞에서 나는  매 순간 속절없이 매혹당한다.

 

'엄마, 엄마 내가 옛날 얘기 해 드리께요.

옛날 옛날에 할머니랑 호랑이가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할머니가 농사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어흥 하고 나타났어요. 호랑이는 내가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하고

할머니를 잡아먹어 버렸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다시 살아난거예요. 너무 재미있지요?'

 

아아아.. 재미있다.

행복하다.

반짝 반짝 빛나는 막내의 날들을 함께 누리는 동안은 나도 네 살 아이가 된다.

내가 제일 소중하고, 엄마가 제일 좋고, 하루 하루가 신나고 즐거운

네 살을 세 번째로 살고 있으니...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구나. 

늘 가슴을 벅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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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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