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빠 육아'의 함정

이정희 2016. 01. 06
조회수 10313 추천수 0
03779575_P_0.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쌍둥이 외손자의 첫돌이 지나자마자 큰 딸이 복직을 선언했어요! 경제 때문에 맞벌이를 결정한 것이 안쓰러워 저희 부부는 황혼육아를 자청하고, 아예 딸 집 근처로 이사했습니다. 약 1년간은 그런대로 탈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로 되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이들이 부쩍 자라서 활동량도 많아져 짓궂게 놀다가 넘어지고 다치면, 가슴이 쿵합니다. ‘새 본 공은 있어도 애 본 공은 없다'는 옛말이 생각납니다. 
주말에 사위는 이른바 “아빠 육아”를 성실하게 실천합니다. 백화점 문화센터의 토요 프로그램을 다니고, 일요일은 신나게 놀아주는 덕분에 저희는 해방입니다. 그런데 그 여파로 인해 월요일부터 할아버지는 더욱 시달려야합니다. 주말에 아빠랑 실컷 했던 신체 체육과 몸 놀이를 계속 해달라고 떼씁니다. 수요일 정도 되어야 아이들이 차분해 집니다. 이렇게 들떠 있는 후유증 때문에 문화센터를 중단시켜야하나 생각 중입니다." 



최근 몇 해 전부터 대한민국 신세대 아빠들이 육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자녀 양육에 적극적인 참여를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남성 육아휴직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 몇 년 사이 그 증가 폭이 두드러집니다(고용노동부 자료: 2005년-208명, 2011년-1470명, 2012년-1790명, 2015년-3069명). 반면에 맞벌이 가정에서 엄마의 육아가사 노동시간은 매일 2시간 23분이지만, 아빠는 겨우 17분에 불과합니다(2015년, 통계청 자료). 이런 상황에서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초보 아빠들은 마음만은 예능프로그램의 '슈퍼맨'이 되고 싶고, 주말에는 "아빠! 어디가?" 냐는 질문에 무언가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또 다른 한편 아빠 육아 전문가들은 영유아기 자녀 발달에 아빠의 자극이 두뇌를 바꾼다고 강조합니다. 놀이를 통한 아빠와의 유대감 뿐 아니라 아이의 자신감부터 창의성, 사회성, 자존감, 리더십 등 긍정적 영향을 나열합니다. 생후 3년간 “아빠 육아가 아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표현 때문에 초보 아빠들은 자신만의 육아법을 찾으며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평소 직장 일로 시달리는 바쁜 아빠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자신의 ‘밀린’ 역할을 집중적으로, 강도 높게 채우고자 합니다. 이런 아빠들에게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키즈 카페 나들이가 될 수 있고, 또는 이미 ‘잘’ 짜여 진 문화센터의 소위 ‘아빠 주말 프로그램’이라도 참석합니다. 아빠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아주며, 엄마와 달리 남성의 강점을 발휘한 신체 놀이를 제공하면, 아이의 균형감각과 자기 공격성 조절을 연습할 수 있다는 홍보용 문구들에 젊은 아빠 층은 쉽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상업적으로 맞물려 등장한 이런 풍속도가 영유아기의 발달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영유아기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 과연 ‘아빠 표’ 몸 놀이가 꼭 필요한 것인가요?  
엄마 육아와 아빠 육아가 자녀의 성장과정에서 따로 나뉘어 작용하는 것일까요? 

엄마 아빠를 막론하고 양육자의 입장에서 생후 3년간 건강한 신체 발달에 초점을 둡니다. 따라서 아이의 신체적 움직임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움직임의 질과 동작의 특성에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최초로 영아 보육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헝가리 소아과 의사 에미 피클러(Emi Pikler 1902~1984) 여사는 생후 3년 동안 양육자의 주요 과제를 간단명료하게 강조합니다. 즉, 어린 아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의 보장을 넘어서 어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문합니다. “어른들이 인위적으로 구조화시키고, 기발한 생각으로 짜난 방법으로 체육과 체조를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이 잘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어린 아이는 몸의 움직임을 자신 스스로 조절하며 배워가기 때문입니다. 이때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배우면서 기쁨과 자기 만족감을 알게 됩니다. 이런 과정 자체가 아이에게 성공을 의미하며, 또한 끈기 있게 혼자 힘으로 이뤄낸 인내의 결과를 의미하므로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에미 피클러, 평화로운 아이 - 만족스런 엄마, Freiburg 2001.).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아빠 육아의 함정들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어른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몸 놀이와 체육 교실 같은 것은 아이 스스로 자발적이며,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양육자의 한사람으로서 아빠가 '플레이 대디'의 역할자로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진정한 아빠 육아는 트렌드와 무관하게 양육을 포함한 일상의 가사에 현실적이고,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주변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여 놀이과정에서 재창조하며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즐깁니다. 예컨대 아빠가 집안일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때, 아이는 그 공간에서 아빠의 존재를 느끼며 편안하게 혼자 놀이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주말, 연휴, 휴가를 이용하여 아빠들은 하나의 육아 숙제를 몰아서 처리하듯 당위감에서 아이들과 몸으로 흥미롭게 놀아주기보다, 집안에 실제 밀려있는 이런 저런 가사 일을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아빠 육아입니다!  

Q. 지난 토요일 미세먼지가 나쁨으로 나와서 바깥 놀이터와 주말 산책을 포기했어요. 남편은 주말이라도 아빠 육아를 실천한다는 각오로 아이 둘을 데리고 온가족이 뛰놀 수 있는 방방이로 외출했어요. 오후 내내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정말 방방방 뛰다가 왔습니다. 새로 오픈하여 시설이 깨끗하고 널찍하여 꼬마들의 에너지 발산에 딱 좋더군요. 만5살 아들 보다 2.5살 딸이 더 힘차게 놀았어요. 이것저것 놀이기구도 실컷 타보고, 소리 지르며 신나게 뛰고, 넘어지고, 음악에 맞춰 춤도 추며 좋아했어요. 두 아이가 머리 감은 것 마냥 땀을 흠뻑 흘리고 왔건만, 귀가 후에도 여전히 아이들은 헛헛해 한참 들떠있더군요. 아이들 쫒아 다니느라 저희 부부는 노동 아닌 노동을 장시간 하고 왔어요. 남편은 눈 밑에 다크 서클까지 생겼더라구요. 그런데 그 날 저녁부터 딸아이 아토피 증상이 조금 더 올라 왔어요! 며칠 더 지켜봐야겠지만, 은근 걱정이네요. 혹시 소리 지르며 방방 뛴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A. 특히 유아기의 아토피 증상은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세심한 배려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의학적 소견은 아니지만, 방방이 시설에는 아토피 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들이 다분합니다. 새로 개장한 실내놀이터 시설이 아무리 친환경 자재로 사용한다 해도 신축 건물은 얼마간 독소 배출이 일어납니다. 볼풀이나 트렘폴린과 같은 플라스틱 소재의 놀이기구들은 영유아의 부피 호흡에 예민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아이들이 몇 시간을 실내에서 뛰고 노는 것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무리입니다. 어른이 다크 서클이 생길 정도로 피곤하면, 아이들 역시 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신나게 뛰며 잘 노는 것 같지만, 아이들이 쉼을 위한 쾌적한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안정감 없는 오후를 집밖에서 보낸 셈입니다. 특히 다양한 놀이기구의 사용 뿐 아니라 실내공간의 음향, 화려한 조명이나 색채가 감각기관들을 강하게 자극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강렬한 분위기에서 회복 시간 없이 장시간 뛰어 논 것이 아이의 신경을 지나치게 자극하여 결국 과민 반응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의 자극으로 홀란드의 여의사 이타 베크만(Ita Wegman)이 체계를 세운 인지학 의학 (Anthroposophycal Medicine)에서 피부의 주요기능은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영유아기의 발달 과정에서 아기 피부는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여 경계 짓기를 배우며, 동시에 외부의 위험요소들을 방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린 아기들의 피부 질환들은 세상 적응을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반응으로 봅니다. 따라서 피부증상을 연고 등 약물로 달래는 방법은 최소화하고, 무엇보다 아기에게 민감 반응을 일으키는 다양한 요소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양육자의 급선무입니다. 또한 피부반응이 예민한 아기는 성장기 동안 자극 환경을 일단 피해주는 것이 증상 완화를 위한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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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귀국, 이때부터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창의력, 상상력, 자질 발현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학자. 사회변화는 교육문화의 개선에서 시작된다는 확신으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서적을 번역하고 강의하다가, 뒤늦게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사범대학에서 슈타이너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학을 전공했다. 2000년부터 (사)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를 이끌며 번역서로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나>,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등이 있다.
이메일 : charirang123@hanmail.net       트위터 : steinercenter      
홈페이지 : http://steiner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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