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번 아웃’ 직전의 아이들

이정희 2015. 12. 03
조회수 5819 추천수 0

03905922_P_0.JPG » 키즈 카페.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번 부모성장학교에서 젊은 엄마들에게 강조된 내용이 생각나서 확인 차 상담 드립니다. 열심히 일하는 현대 직장인들에게 자주 나타난다는 "번 아웃" 증세가 어린 아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설명에 깜짝 놀랐거든요. 저희 집 외손자도 혹시나 해서요!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결혼한 막내딸이 20개월짜리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옵니다. 남편은 딸의 '육아 휴식'을 온전히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아이를 차에 태우고 키즈 카페로 놀러나갑니다. 집에서 약 40분 정도 걸립니다. 두서너 시간 실컷 놀고 머리가 젖어서 집에 돌아오면, 점심 먹고 길게 낮잠을 잡니다. 지난주는 사위도 일찍 퇴근했고, 미혼인 큰 아들과 둘째 딸까지 일찍 귀가하여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거실에 둘러앉은 어른 여섯 명이 아이하나를 지켜보면서 행복한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진수야, 조심해야지! 거기 문턱에 걸리면 넘어져. 잠깐 기다려! 외삼촌이 잡아줄게. 

- 이것 봐, 진수야! 이모가 산 인형이야. 귀엽지? 여기 누르면 소리 나는 거야. 진수도 해볼까? 우와~ 진수 잘하네. 또 해보자, 여기, 여기 좀 눌러봐! 

- 어제 할머니가 진수 좋아한다고 단감 사오셨대. 엄마가 껍질 벗기는 것 쳐다볼래? 이리 와서, 이것 먹자! 자, 외할아버지께 먼저 드리고, 여기 할머니, 옳지 잘했어요! 삼촌, 이모도 드리고, 또 아빠도! 와~ 잘 했어요, 이제 진수 차례야. 단감이 아삭아삭 맛있지?

- 어이쿠, 힘도 좋네! 할아버지가 비켜 앉으라고? 이 서랍을 만지고 싶구나. 손가락 끼지 않게 조심해! 할아버지가 도와줄까? 여기 양쪽 고리를 두 손으로 잡아야 열리는 거야, 할아버지가 하는 것 볼래?’

저는 할머니 관찰자로서 한참 동안 거실 광경을 지켜보며,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들이 아이만 쳐다보며 말을 걸어주는 것이 과하게 여겨지더군요. 키즈 카페 외출도 마음에 좀 걸리구요."

 

저출산의 나라에 태어난 아이니 만큼, 집집마다 귀염둥이를 위해 온 가족이 최상의 양육을 지향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잘 키우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양가집 조부모님이 극 노인이 아닌 이상 사랑스런 손자 손녀를 위한 육아 조언들을 아끼지 않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어린 아기는 드물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바르고 건강한 성장을 한 마음으로 소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쏟아주는 관심이 아이 입장에서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언뜻 보면 진수는 화목한 가족분위기에서 어른들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의 일방적 시선과 말 건넴으로 아기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0개월짜리 진수가 외갓집에서 받은 '환대' 속에 어른들이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할아버지가 반시간 이상 영아를 차에 태워 멀리 있는 키즈 카페를 방문하는 것 보다, 집 근처를 걸어 나가 바깥 놀이터에서 놀거나, 또는 오붓한 주변 산책을 더 추천합니다. 실내 놀이공간에서 머리가 젖도록 놀 때, 아이는 과도한 자극을 받게 됩니다. 특히 대규모 공간에 설치된 놀이기구를 이것저것 타면서 쉽게 흥분될 수 있습니다.

 

둘째, 모국어 습득은 신생아 시기부터 주변 어른들이 하는 말소리를 듣고, 동시에 비언어적 요소들(입모양, 표정, 손짓)을 관찰하면서 서서히 일어납니다. 소위 말문이 트이기까지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습니다. 언어 발달의 촉진을 염두에 두고 아이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이가 놀고 있거나 어떤 활동에 몰두해 있으면, 어른의 말 붙임이 집중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자주 일어나면, 주변 어른들의 말이 아이에게 소음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이는 몸을 움직여 스스로 활동하는 존재입니다. 어른이 사준 값비싼 완구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상물을 탐색하면서, 뇌 발달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자라납니다. 문지방 넘기를 혼자 실험해 보기 전에 어른이 위험 상황을 말해주며 잡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진수가 갑자기 호기심을 가지고 서랍에 다가서서 열기 직전 어른이 자청하여 그 방법을 보여주면, 아이 스스로 해보는 기회와 성취의 기쁨을 빼앗는 것입니다. 말보다 아이의 행동을 조용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바람직합니다.

 

결론적으로 주 양육자와 주변 어른들이 어린 아이를 평소 어떻게 대하는지 의식적으로 돌아보아야합니다. 디지털 미디어 문화, 저출산 사회, 물질 소비사회로 특징 지워진 현대의 가정에서 적절한 육아방법을 찾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숙제입니다. 특히 초보 맘이나 적극적인 조부모 입장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즉, 아이를 공들여 잘 키우려는 노력이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과도한 정신적 자극은 반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지나친 돌봄을 받아 정신적으로 일찍 깨이게 되면, 어른들은 대부분 좋아합니다. 이렇게 과도한 자극이 아이의 감성과 이성 영역의 발달을 뒤처지게 만들 수 있다고 미국 교육학자, 매튜 멜드(Matthew Melmed) 교수는 경고합니다. 영아는 세상을 스스로 발견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외부에서 끊임없이 자극해 오면, 점점 "소진"해 버릴 수 있습니다.(Medical Tribune, 2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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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귀국, 이때부터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창의력, 상상력, 자질 발현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학자. 사회변화는 교육문화의 개선에서 시작된다는 확신으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서적을 번역하고 강의하다가, 뒤늦게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사범대학에서 슈타이너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학을 전공했다. 2000년부터 (사)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를 이끌며 번역서로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나>,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등이 있다.
이메일 : charirang123@hanmail.net       트위터 : steinercenter      
홈페이지 : http://steiner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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