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조기 취학, 불쑥 꺼낸 정치쇼

이정희 2015.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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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6209_P_0.JPG » 초등학교 예비 소집일. 한겨레 자료 사진


[조기취학의 문제점]


"불쑥 거론된 이번 학제개편은 지난 2006년과 2009년과 아주 유사해서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근데 장기 검토 후 조기취학을 긍정적으로 결론 지어, 진짜 1년 하향 조절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까요? 그럼 우리나라의 미래는 절망적입니다. 학부모 층의 특별한 의식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영유아의 사교육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지금 보다 훨씬 심각해 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의 교육열풍은 세계적이잖아요. 집집마다 만5세 취학 준비용 선행학습은 분명 지금 보다 더 일찍 시작할 것입니다. 심지어 유아교육현장 및 공공성 높은 보육시설에서도 학부모들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글 떼기와 간단한(?) 수 공부, 조기 영어를 더 빨리 제공할 것이 뻔해요.

조기교육의 피해를 절감하는 교육자들이 모여, 반대하는 이유를 "영유아 인권 보호" 차원에서 외쳐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정치적 힘은 없어도 유아현장 교사들은 구체적으로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합니다!"


저 출산-고령화의 극복을 위해 정부는 제3차 기본 계획안을 발표했고(2015년 10월 19일), 이어서 새누리 당은 취학 연령을 앞당기며 전체 교육기간을 줄이자는 "학제 개편"의 방안을 정부에 제시하였습니다. (10월 21일) 그러나 이것은 마치 관객 없는 정치 쇼처럼 단 시일 내에 묻혀버렸습니다. 이전 정권의 발상들을 베끼기 형식으로 내밀어서 진지한 토론이나 폭 넒은 여론 수렴이 생략된 것인가요? 또는 조기입학과 졸업=조기취업=조기결혼=조기출산의 기계적 등식이 너무 단순하여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까요? 거론된 교육제도의 개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요 원인 분석이라 해도 대부분 사회적 혼란과 비용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사회 문제나 정치경제의 잣대로 재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매 정권마다 출산 문제 또는 복지 차원의 '획기적 대책'으로 한 번씩 등장하는 학제 개편과 더불어 만5세 조기취학은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열이 빚어내는 부작용들을 생각한다면, 경제 효율성의 논리 하나만으로 거론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유아기 성숙과정과 뇌 발달을 고려하여 만6세 취학 전 아동에게 조기교육을 공식적으로 금지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사뭇 다릅니다. 조기교육의 피해로 이미 심리질환에 시달려 조기치료를 받는 아동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유아기의 자녀에게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해마다 증가하는 통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현행 만6세의 취학 준비를 위해 영유아를 위한 사교육비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초중고생에게 투자하는 월평균 비용의 상승폭을 앞질렀습니다. 초등생의 사교육 노출은 88.9%에 달하는데 비하여, 만3세 이상 유아는 가정뿐 아니라 유치원 및 어린이집 현장에서 공식적으로 상업적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예체능 분야의 조기 특기활동과 한글, 영어, 수학 학습을 필수로 제공받고 있습니다. 

 

소아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은 우리나라 조기 선행교육의 폐단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작용에 시달린 아동들이 많을수록, 당연히 사회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신경범죄학자들은 사회범죄의 뿌리가 대부분 영유아기에 있다고 진단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국립유아교육연구소(NIEER) 소장, 스티브 바네트(Steve Barnett)는 유아기 교육은 인지 발달 뿐 아니라 사회 정서적 측면의 교육적 발달이 중요하며, 유아기의 긍정적 경험들이 범죄율 감소 등 사회발전에 기여하므로 국가인적자원 개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합니다.


 Q. 취학연령, 언제가 적절할까요?


요즘 아이들 성장이 빨라 만5세 조기취학을 환영하는 엄마들도 의외로 많고, 학교에 일찍 들어가면 유아기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들도 주변에서 자주 들어요. 이렇게 긍정적 의견을 내는 엄마들의 자녀는 대개 중학교 이상이더군요.

조기취학을 아무리 탁상공론으로 간주해도 자꾸 여러 생각을 몰고 오네요. 현재 만5.5세 둘째 딸을 보면, 전혀 동의할 수 없어요. 물론 아이의 사회성은 어느 정도 발달해 보여도 '아기티'를 벗고 학교생활을 해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더욱이 아이가 문자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 없어요. 취학준비를 위해 또래 아이들처럼 한글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망설여지네요. 언제가 적절한 시기일까요?

 

A.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발달을 모두 고려해야 


학제 개편의 당위성을 순수 경비 차원에서 출발한 정치적 발상을 두고, 1951년부터 시행된 낡은 제도가 디지털 시대에 문제라고 힘을 보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21세기는 아이들 성장 패턴, 영양과 발육상태가 달라졌고, 지식정보의 원천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아동의 성장을 오로지 외적으로 바라보면, 이런 교육적 지지 발언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발달 정도를 단지 외적 신체 성장을 기준으로 가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 포괄적으로, 즉 신체적 성장을 넘어 사회적 능력과 정신적 내면 발달을 고려해야 합니다.


국제적 동향을 살펴보면, 만5세 조기취학은 이미 1960년대 말 미국을 포함해 유럽에서 정치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던 주제입니다. 독일에서는 몇 년간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 1970년대 초반 아동 보호 차원에서 거부되었습니다. 예외로 만5세 취학을 정치적으로 관철시킨 영국은 현재 만6세를 재검토 중입니다. 다른 한편 스웨덴의 취학연령은 만7세이며, PISA 국제학업능력평가 대회에서 늘 최상위를 차지하는 핀란드는 취학 후 바로 지적 교육을 하지 않고, 만8세부터 읽기 교육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만6세 취학연령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의 보편적 발달 단계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약 100년 전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간 발달의 7년 주기론을 역설합니다. 생후 7년이 되어 이갈이 시기가 되어야 비로소 아이의 지적 이해 능력이 만들어 진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취학 통지서를 기준으로 미리 아이에게 입학 준비를 시키는 것 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내적 성숙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억지로 시키는 선행 문자 학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금 앞서가기 위한 학습이 공부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해야하는 호기심을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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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귀국, 이때부터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창의력, 상상력, 자질 발현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학자. 사회변화는 교육문화의 개선에서 시작된다는 확신으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서적을 번역하고 강의하다가, 뒤늦게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사범대학에서 슈타이너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학을 전공했다. 2000년부터 (사)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를 이끌며 번역서로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나>,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등이 있다.
이메일 : charirang123@hanmail.net       트위터 : steinercenter      
홈페이지 : http://steiner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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