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 나는 아이의 모티베이터였다나는 아이의 모티베이터였다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9.23

    나는 24살 딸과 21살 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두 아이를 거저 키웠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공부해라’ ‘노력해라’ ‘꿈을 가져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 스스로 학과를 선택했고, 한 번에 대...

  • 차만 타면 잠을 자는 딸의 비밀차만 타면 잠을 자는 딸의 비밀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8.24

    딸은 차만 타면 유난히 잠을 잔다. 몇 달 전,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부득이 하루 먼저 출발을 하게 되었다. 딸은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50분 동안 잠을 자고, 비행기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으며, 김포...

  • 조수석에서 지켜본 아들의 첫 경험조수석에서 지켜본 아들의 첫 경험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8.17

    용인의 집에서 출발하여 천안에 도착한 후, 다시 1시간 반 만에 안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산에 도착했어. 그런데 조수석에 계속 앉았는데 너무 피곤해” 그러자 아내는 깔깔거리며 “당연하죠. 아들 연수시키느라 그런 ...

  • 옥상 화단의 지존, 메꽃이야기옥상 화단의 지존, 메꽃이야기 [1]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7.27

    옥상에 화단을 만든 후, 두 아이는 1년에 2~3번 정도 놀러온다. 그것도 일부러 놀러오는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와 건물 1층에서 식사를 한 후에 애프터를 옥상에서 하면 오거나 혹은 엄마와 할 이야기가 있는데 옥상에 있으면 올라온다.  지...

  • 물총서바이벌, 감동의 놀이를 만드는 방법물총서바이벌, 감동의 놀이를 만드는 방법 [1]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7.25

    지난 7월 9일, 제27차 물총서바이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02년부터 시작하여 한해에 한 두 번씩 하다보니 15년째의 행사가 되었다. 위기도 있었다. 작년에 몸이 좋지 않아서 이 행사를 그만둔다고 알렸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프로그램을 배...

  • 행복 방정식, 나의 점수는 몇 점?행복 방정식, 나의 점수는 몇 점? [1]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6.17

    나는 그동안 택시 기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택시를 타면 기사가 ‘어서오세요’라는 말을 듣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방에 비해 수도권의 기사들이 형편없었다. 마치 택시비에는 인사를 받는 것이 포함이 되었다는 일종의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 이별, 그리고 찬란한 이별이별, 그리고 찬란한 이별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6.02

    딸이 유명 포털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딸에게 전화가 왔다. 딸은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 지금 사는 집의 세면기가 너무 불편해요. 그래서 2~3달을 집에서 살다가 다시 새집을 구해서 이사하려고 하는데 어때요?”라...

  • 취업한 딸의 성장보고서취업한 딸의 성장보고서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5.20

    따르릉..전화을 받자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아빠, 저 지금 면접봤는데 결과가 일찍 나왔어요"이 말에 교활한 아빠의 한 마디,"그래 애썼다" 라며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면접에 대하여 물어본다.   그러자 답답한 딸은 "아빠, 저 합격했어요...

  • 바둑과 아들, 그리고 홀로서기바둑과 아들, 그리고 홀로서기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4.29

    토요일 밤, 자취를 하는 아들이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먼저 할아버지 방의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엄마를 보더니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슬쩍 들어왔다. 그리고 30분 후, 아들이 불쑥 들어왔다. 그러면서 “아...

  • 육아공동체를 위한 아파트육아공동체를 위한 아파트 [1] | 권오진의 아빠 놀이 학교

    권오진 | 2016.04.25

      60년대는 전쟁의 상혼이 아물어가는 시기이며,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여 보릿고개를 겪었으며,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에 불과했다. 이 때의 가장이란 자식을 굶기지만 않으면 누구나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70년대 들어서며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