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책은 서점에서 사라. 거의 공짜다

권오진 2013. 04. 15
조회수 17982 추천수 3

               

딸은 대학교 3학년이다. 오늘은 광화문 대형서점에서 딸에게 책을 사주는 날이다. 3시에 그 근처에서 약속이 있기에 5시에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5시 10분쯤 문자가 도착했다. “아빠, 지금 너무 힘들어요. 곧 서점에 갈께요”라고 한다. 알고 보니 무거운 노트북을 어께에 메고 다니느라 녹초가 되기 직전이다. 마침 그 근처에서 있기에 즉시 달려가서 노트북을 대신 들어주었다. 정말 어께가 휘청거릴 정도의 무게였다. 그리고 미리 구입한 캔 커피를 주니 너무 반가워한다. 서점에 가서 딸에게 카드를 주며 상한선은 5만원이라고 하며 헤어졌다. 딸이 책을 고르는 동안 여기저기 책을 둘러봤다. 한 시간쯤 지나니 딸에게 호출이 온다. 그리고 구입한 책이 무겁다며 나에게 안긴다. 그리곤 금방 온다며 다시 총총히 사라진다. 그리고 30분쯤 지나니 ‘아빠, 15분안에 갈께요’라고 문자가 도착한다. 순간,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천천히 와도 돼’라고 문자를 보냈다. 20분이 지나자 딸이 51,000원인 영수증을 내밀고, 즉시 1,000원을 준다. 상한선에 대한 약속이다. 시간은 이미 7시가 넘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힘이 든다며 서점에서 먹자고 한다. 그러나 기어코 딸을 끌고 나와서 광화문에서 유명한 스파게티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 곳은 늘 그렇듯이 이미 10여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딸은 당연한 듯 줄을 서며 마중을 나온 주인에게 주문을 한다. 이 골목은 딸에게도 참으로 많은 추억과 감성이 있는 곳이다. 아빠놀이학교 책의 삽화를 그리기 전, 편집장을 만난 곳도 이 곳이며 그동안 아빠와 여러 번 온 곳이기도 하다.

 

130414메인한겨레.jpg » 권규리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딸에게 서점에서 책을 사준 횟수는 올해에 2번이다. 물론 1학년과 2학년 때에도 5번 정도 서점에서 책을 사주었다. 사실, 평소에는 고2 아들과 함께 온다. 하지만 한 달 전에 서점에 가자고 상의를 하라고 했더니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아들은 포기를 했기에 딸과 왔다. 딸은 대형 서점에 오면 마음이 떨린다고 한다. 바로 설레임이 찾아온다. 그만큼 서점에 가기를 좋아한다. 오늘의 스케쥴은 책을 사고 저녁을 먹은 다음, 명동에서 옷을 사주기로 했다. 하지만 저녁을 먹으니 벌써 9시가 넘었다. 딸은 이내 지쳤고, 옷은 다음에 사달라는 말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딸은 피곤한지 곧 잠이 들었고, 그 무거운 머리를 아빠의 어께에 기댄다. 광화문에서 책을 사면 늘 이런 스토리다.

 

그동안 아이들이 원하는 책은 항상 서점에 함께 가서 사주었다. 그 역사를 보니 무려 10년이 훌쩍 넘었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한 달에 한 번식 정기적으로 서점에서 사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단할 뻔 하기도 했다. 대학에 합격한 후,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서점은 그만 가자고 제의를 했더니 순순히 동의한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서점에 가자고 한다. 그래서 다시 서점에 가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하여튼 딸에게 서점은 그동안 훌륭한 인생의 놀이터였으며 책을 사랑하는 숙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13041429한겨레소컷.jpg 10여 년 전, 서점을 가려면 규칙이 있었다. 물론 늘 아이 둘과 함께 갔다. 도착하면 ‘오늘은 몇시까지 있다가 가자’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려 2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서점 의자에 앉아서 그냥 만화책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처음에는 이곳, 저 곳을 다니다가 심심하면 옆에 와서 함께 만화책을 본다. 그리고 눈치를 보다가 30분 전 쯤에는 ‘아빠, 미리 계산하면 안될까요?’라고 은근히 말한다. 지겹다는 메시지다. 그러면 약간 시간을 당겨 계산을 하고 서점을 나선다. 그리고 그 다음은 대부분 저녁을 사주었다. 저녁 메뉴는 둘이 상의해서 결정하라고 한다. 때론 누나가, 때론 동생의 주장이 결정되면 그 것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은 누구나 만화책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하도 만화책을 많이 보니 엄마의 잔소리가 늘어갔다. 하지만 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늘 간섭을 전혀 하지 않았다. 딸도 4학년까지는 만화책만 구입했다. 그래도 아빠는 웃음으로 허락했다. 하지만 5학년이 올라가는 2월 달에 드디어 소설책인 ‘폭풍의 언덕’을 구입했다. 그래서 순간 당황했다. 왜 갑자기 소설책을 구입했는지 궁금했다. 그랬더니 하도 기다리기가 지겨워서 책 날개를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이 책에 꽂혔다고 한다. 그리고 동시에 만화책은 저절로 졸업을 했다. 하지만 아들의 만화책 사랑은 애착에 가까왔다. 주로 30권, 50권짜리 전집 만화책을 수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책은 보통 1권이나 또는 1만원 이하로 사주는데 보너스가 있다. 학교에서 상장을 타오면 추가 1권이나 1만원어치를 더 살 수 있다. 그래서 중, 고등학생이 되어도 상장을 받아오면 늘 아빠에게 먼저 신고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상장을 많이 주는가 보다. 어떤 날은 아들에게 3~4권을 사주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만화책을 산다. 그래도 사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한 만화책 사랑은 중학생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중2가 올라가는 2월 경, 아들은 박스 2개에 만화책을 주섬주섬 담는다. 순간, 만화책을 졸업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슬쩍 왜 박스에 담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촌동생에게 준다며 포장을 한다. 그렇다. 역시 만화책도 책이었다. 가을이 되어 가지에 달린 홍시는 때가 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이치처럼, 아들도 때가 되니 스스로 만화책을 졸업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보너스가 나왔다. 책을 빨린 읽고 이해력이 매우 높았다. 딸은 책을 제법 빨리 읽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 누나가 동생에게 책을 보여주면서 너무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 즉시 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누나가 3일만에 읽는 책을 하룻밤에 읽어버린다. 그래서 혹시 책장만 넘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책 내용을 물어보면 술술술 내용을 말한다. 역시 만화책을 읽으면서 속독과 이해력이 동시에 향상된 것이다. 또한 아들의 언변을 보면 대학생의 언어와 비슷하게 사용한다. 정신연령도 상향 조정되었다. 더구나 국어를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며 성적도 잘 나오니 그동안 서점에 간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 것이다.

 

역시 아이의 책은 서점에서 아이와 함께 구입해야 한다. 그러면 거의 공짜와 다름없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서점이 대세다. 엄마들이 아이의 책을 싸게 사려고 인터넷 서핑을 한다. 그러면 서점에서는 겨우 10% 정도 할인해주는데 비하여 인터넷 서점에서는 30%, 또는 50%까지 할인해준다. 서점에서 책을 사다가 인터넷에서 사면 정말 싸다. 그러나 사실은 인터넷에서 사면 거의 바가지 수준이고, 서점에서 아이와 책을 사면 거의 공짜와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에 대한 비논리적 근거는 ‘보이지 않는 돈의 계산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금의 지출은 서점이 비싼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서점에서 아이가 책을 사는 과정을 보라. 만일 1~2시간 동안 서점에서 함께 있어보자. 그러면 책을 금방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이 곳 저 곳을 다니면서 수많은 책을 구경을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사려고 결정했다가 포기하고, 포기하다가 때론 구입하기도 한다. 또한 한 분야의 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성된다. 또한 동기부여가 된다. 또한 구입하려다 포기한 책은 때론 다음에 구입하기도 한다. 결국 서점에서 1~2시간을 머무르는 것은 책과의 보이지 않는 대화의 시간이기에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 엄마가 아이에게 구입할 책에 대하여 거의 상의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입금하고 받아본다. 오직 엄마에게만 아이가 볼 책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또한 저렴하게 구입했으므로 만족한다. 그러나 그 책이 집에 도착하고 아이에게 주었을 때, 아이는 책과의 처음 만남일 뿐이기에 어색하기에 설레임은 매우 적다. 더구나 본전 생각을 하는 엄마의 책읽기 강요는 오히려 책을 싫어하는 아이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서점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그러나 반대로 서점은 우리 주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굳이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서점은 아날로그의 상징물이며 그동안 지역마다 문화공간의 구실을 했다. 서점의 실종은 단순한 경제논리로 계산하기 어렵다. 그 곳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으며,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진지함이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의 산실이며,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기업경영에서 속도는 고효율과 경제성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삶에서는 속도가 아니라 풍부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필요하다. 작금의 유아스마트폰 양육이나 청소년범죄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바로 후천적 인성의 결핍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그동안 인성교육을 소흘히 한 결과이며 디지털 시대의 역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에는 동네 서점에도 복지개념을 도입하여야 하며 늘려야 한다. 그곳에서 저자 사인회도 하고, 시낭송도 하는 등 문화공간으로 활성화를 하는 발상의 전화이 필요하다. 서점이 늘어나면 일자리는 저절로 창출되며, 아이들의 꿈을 꾸고, 키워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한다. 

13041430한겨레소컷.jpg 아직도, 대학교 3학년 딸에게 서점에 가서 또 책을 사주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그동안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한 시간이 많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동안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매달 한 번 씩 서점에서 책을 사주었다. 그 결과 대학생이 되어서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뇌심리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집단이라고 한다. 이렇게 큰 아이들과도 함께 할 수 있으니 아직도 가족임이 틀림없다. 그동안 서점에서 함께 한 시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바로 책에 대한 감성, 꿈에 대한 감성, 희망에 대한 감성을 키워주어 스스로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을 이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양육 또는 훈육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아이들과 2인 3각으로 함께 걸어간다고 생각한다. 때론 걸어가면서 아이가 실수를 하여 발걸음이 틀릴 수도 있었고, 아빠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늘 아이들과 수시로, 늘, 언제나 곁에서, 꾸준히 함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해주었으며, 또한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무탈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이 있다. 아이들이란 늘, 따라쟁이 이었으며 아빠의 어께너머로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동안 아빠란 존재는 거울과 같았다.

 

그래도 세월은 무심하여 아빠는 어느덧 50대 중반의 가장이 되었으며 딸은 가끔 ‘아빠, 나 일찍 결혼해도 돼?’라고 묻는다. 그러면 ‘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너의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제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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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의 최종목표는 아이와의 이별이다.

하지만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그러므로 이별은 늘 새로운 만남을 예고한다.

또한 아이의 홀로서기다.

그동안 천 번을 쓰러지면서 걸음마를 하였듯이,

이제 스스로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홀로서기란 어린 새에게 이서이며,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비상이다.

역시, 책은 서점에서 사야 한다는 생각이 옳았다.

거의 공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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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진
아빠학교 교장. 행복가정연구소장. sbs ‘우아달’ 자문위원. 아빠가 하루 1분만 놀아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1분 놀이’의 달인이다. 13년간 광고대행사 대표로 재직하다 IMF 때 부도가 난 뒤 그저 아이들이 좋아 함께 놀아주다보니 아빠놀이 전문가가 되었다. 놀이는 아빠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사랑이자,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15가지 인성 발달뿐 아니라 9가지 신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저서로는 <아빠의 놀이혁명>, <아빠의 습관혁명>, <아빠학교>, <아빠가 달라졌어요>, <아빠 놀이학교>,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 등이 있다.
이메일 : bnz999@hanmail.net      
블로그 : http://cafe.naver.com/sw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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