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첫눈

베이비트리 2012. 12. 18
조회수 5705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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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박보미 지음/한솔수북·1만원

바야흐로 눈의 계절인 겨울이 왔다. 아이들에게 겨울에 생각나는 것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눈을 이야기한다. 눈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을까? 심지어는 눈을 처음 보는 아이들도, 눈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눈이 오면 금방 흥분한다. 이유도 설명도 필요 없다. 아이들은 그냥 눈이 좋고, 만지고 싶고, 눈밭을 내달리길 원한다.

박보미의 첫 그림책인 <첫눈>은 눈에 대한 아이의 환상을 아름답게 옮겨낸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아이는 눈을 맞는다. 사실 눈처럼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아이들이 눈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발 딛고 있는 현실, 펄쩍 뛰어 봤자 1초도 안 돼 땅에 발이 닿아야 하는 현실이 눈 오는 순간만큼은 잠시 중력을 잃고 가벼워진다. 더러운 것도 가려져 보이지 않고, 복잡한 것도 하얀 눈 아래서는 단순해 보인다. 잠시지만 현실이 만만해지고 뭐라도 그려낼 수 있을 듯한 설렘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그림책에서 아이는 아마도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고 아이는 옷을 입고 집 밖으로 혼자 나간다. 눈 위에 발자국을 찍어보고 돌돌 뭉쳐도 보고, 이내 굴려서 점점 큰 눈덩이를 만든다. 현실에선 한 뼘 자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눈은 뭉치고 굴리면 쉽게 커진다. 눈사람은 더 커지고 싶고, 더 자라고 싶은 아이의 소망을 반영한다. 아울러 나도 뭔가 그럴듯하고 큰 걸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뻐기고 싶은 바람도 보여준다. 엄마 아빠가 날 만들어냈다면 나도 이렇게 큰 걸 만들어낼 수 있다고 아이는 말하고 싶다. 엄마 아빠처럼 나도 능력이 있으니 무시하지 말라는 불안과 자존심의 표현이 눈사람이다.

아이는 골목을 지나, 논밭을 지나고, 밤기차가 지나는 어두운 길을 눈덩이를 굴리며 하염없이 걸어간다. 아무도 오지 않는 숲속으로 자기 키만큼이나 커진 눈덩이를 굴려가며 씩씩하게 나간다. 토끼와 사슴, 하얀 곰들은 말없이 지켜보고 강아지는 아이를 따른다. 그리고 도착한 너른 공터. 그곳엔 이미 많은 아이들이 자기보다 큰 눈덩이와 함께 모여 있다. 이제 아이들은 서로 도와가며 눈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눈과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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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이 그림책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하늘에서 눈과 눈사람,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내려오는 장면이다. 어쩌면 아이와 눈은 땅에서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누르는 자기도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냈다는 자신감으로 부푼 아이들의 마음, 불안을 덜어낸 아이들의 마음은 더없이 가볍다.

아이들이 눈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이들은 가벼워지고 싶고 날아오르고 싶다. 왜 그것도 못하냐는 말, 넌 아직 안 된다는 말에 눌리지 않고 싶다. 한번쯤은 뭐든 할 수 있고, 어느 곳에든 갈 수 있고, 어느 것으로도 변할 수 있는 눈처럼 되고 싶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는 혀로 눈을 받아먹는다. 어린 시절 누구나 그랬을 장면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에게 눈은 먹고 싶을 만큼, 그래서 하나가 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다. 그 사랑의 결과는 부모에게 적지 않은 수고를 들게 하지만 그것조차 막는다면 아이는 또 어디서 그만큼 마음을 키울 수 있겠는가?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한솔수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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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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