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감기 걸린 날

베이비트리 2012. 10. 22
조회수 8334 추천수 0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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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 날. 

김동수 지음/보림·9500원

김동수의 그림책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아이가 직접 쓴 듯 삐뚤빼뚤한 글씨체의 제목들, 연필로 테두리를 그리고 가볍게 색연필로만 채색한 그림, 꾸밈없이 단출하게 묘사한 글. 곳곳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낙서들. 아이들 자신이 만든 ‘아이들의 책’이라 착각할 정도이다. 어쩌면 그에겐 아이들을 위한다는 말, 아이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말이 어색할지 모르겠다. 그는 그저 딱 아이들이 그릴 만한 그림으로 ‘다른 아이들의 하루는 이래’, ‘얘들은 이렇게 논다고’ 하며 보여주려 한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것은 아이들 몫이다.

눈이 많이 온 겨울날, 엄마가 오리털 파카를 사주신다. 자세히 보니 봉제선에 깃털 하나가 삐져나와 있다.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경험이다. 잠든 아이는 꿈에서 털이 없어 헐벗은 오리들을 만난다. 오리들은 너무 춥다며 옷 속 깃털을 달라고 하고 아이는 깃털을 꺼내 오리들에게 심어준다. 그리고 함께 썰매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며 신나게 논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엄마는 이불을 안 덮어서라고 하지만 아이는 믿고 있다. 내 깃털을 오리들에게 다 주어서 그렇다고.

오리털 파카를 엄마가 사주신 날 그저 예쁘고 따뜻하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그 털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하다. 오리에게서 왔다면 털이 뽑힌 오리는 기분이 어떨까. 나는 따뜻해서 좋은데 오리들은 춥지 않을까? 왠지 미안하고 죄지은 느낌이다. 물론 아이들은 금세 잊어버린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른 놀이에 빠져 신나게 논다. 김동수의 그림책 <감기 걸린 날>은 바로 그 직전, 공감의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 순간의 아이들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미덕은 생략에 있다. 글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사건을 묘사한다. 아이들의 일기를 보는 듯하다. 아이들은 글을 쓸 때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벌어진 일과 자기가 한 행동만 묘사한다. 이런저런 포장으로 자기 행동을 그럴 듯하게 만들거나, 읽는 사람 마음을 흔들려 애쓰지 않는다. 헐벗은 오리가 불쌍했다고 하지 않지만 모두가 안다. 아이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는 것을. 그림 역시 충분한 여백을 보여준다. 배경은 그냥 비웠고 연필로 테두리를 그린 후 꼭 필요한 부분에만 채색했다. 더 많은 공간을 상상에 양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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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아이들은 직관에 의해 움직인다. 부모들은 말로 설명하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난처해한다. 그냥 하고 싶어 한 건데 이유를 생각하라니 머리만 복잡하다. 하지만 아직 언어와 논리적 사고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을 뿐 판단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겨울 하늘의 달처럼 더 선명하다. 좋은 것은 좋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는 핑계일 뿐이다.

말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이다. 하지만 화려한 말로 본질을 가려선 곤란하다. 아이들에겐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돌직구처럼 들어오는 질문에 부모들은 종종 당황해한다. 포장하지 않고 본질적인 것을 물어오면 두렵다.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 말을 애들 생각이라며 애써 무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이 먹을수록 날것의 진실이 두려워진다. 결국 부끄러워할 사람은 많은 경우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보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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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안녕하세요, 베이비트리 운영자입니다. 꾸벅~ 놀이·교육학자 + 소아과 전문의 + 한방소아과 한의사 + 한겨레 기자 + 유쾌발랄 블로거들이 똘똥 뭉친 베이비트리,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꼭꼭 싸놓지 마세요. 괜찮은 육아정보도 좋고, 남편과의 갈등도 좋아요. 베이비트리 가족들에게 풀어놓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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