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벚꽃처럼 지는 삶의 절정

베이비트리 2014. 05. 19
조회수 6964 추천수 0

 00504122201_20140519.JPG » 그림 보림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마레에게 일어난 일
티너 모르티어르 글, 카쳐 퍼메이르 그림, 신석순 옮김
보림(2011)

삶을 벚꽃에 비유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벚꽃만큼 화려하지도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인데 벚꽃처럼 빨리 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다. 티너 모르티어르의 글에 카쳐 퍼메이르가 그림을 그린 <마레에게 일어난 일>은 짧은 그림책이지만 그 안에 탄생과 성장, 질병과 죽음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이 그림책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책은 한 장의 그림도 쉽게 넘길 수 없다. 오래된 물건을 직접 붙이거나 물감으로 찍어 무늬를 내고, 목판과 에칭, 회화가 공존하는 카쳐 퍼메이르의 그림은 시간을 아우르는 힘이 있다. 환상과 사실,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기에 평면에 그린 한 장의 그림인데도 긴 역사를 담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조금의 감정과잉도 없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독자를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한다.

마레와 할머니는 가장 좋은 친구다. 둘은 설탕으로 손이 끈적거릴 때까지 과자를 실컷 먹고는 정원을 맘껏 뛰어다닌다. 활짝 핀 벚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함께 타며 봄의 잔치를 즐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진다. 마레는 이해할 수 없다. 표정도 없고, 대답도 없는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잊은 듯하다. 그럼에도 마레는 할머니를 떠나지 않는다. 할머니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작은 물건을 만들어 할머니의 기억을 살리려 한다. 할머니는 마레의 도움 덕분인지 조금, 아주 조금 나아지지만 그래봐야 한 음절의 말을 뱉어낼 뿐이다. 아무도 할머니의 말을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마레만이 할머니의 말뜻을 이해한다. 눈빛을 보고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할머니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마레는 느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구나. 병원의 의료진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마레는 무엇이 할머니를 위하는 것인지 안다. 마레는 자기 힘으로 할머니를 끌고 할아버지에게 향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고서 울음을 멈춘다. 빙그레 웃으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며 이제야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안녕’ 그리고 ‘과자.’ 할머니의 얼굴엔 다시 붉은 기운이 돌아온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그림책일까? 그렇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삶에 대한 그림책이다. 더 정확히는 삶과 죽음이 반대말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죽음은 결코 끝도 아니고 마냥 두려운 대상도 아니다. 삶이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듯 죽음도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다. 그 속에 필요한 것은 매 순간 서로를 이해하고 깊이 다가가려는 마음이다.

질병과 죽음은 우리가 두려워할 때, 도망가려 할 때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우리를 맞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질병과 죽음이 덮칠 때 우린 뒤로 물러나 나와 그의 자리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그저 슬퍼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용기를 내어 그 순간 상대와 함께하려 해야 한다. 더 깊게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함께해야 한다. 함께하는 순간이 삶의 본질이다. 벚꽃같이 아름다운 삶의 절정이 그 순간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보림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5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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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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