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자와 갈등, 각자의 문제 먼저 돌아보세요
허찬희의 정신건강
얼마 전 50대 초반의 부부가 심하게 다툰 뒤 함께 찾아왔다. 서로 배우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인은 남편이 자녀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화를 낸다고 했다. 남편은 부인이 신혼 초에 시집살이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하고, 별일 아닌데도 화를 내거나 너무 심하게 흥분을 해 가족들이 불안해한다고 호소했다.서로 다투기는 하지만 치료가 필요하다고 함께 방문한 것을 보니, 정신치료를 할 경우 치료 예후가 좋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갈등은 있지만 서로 해결을 모색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은 이미 반은 치료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로 상대방의 문제를 지적했으니 다음 단계로 각자 상대방에 대한 불만과 자기 자신의 문제점을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부부 모두 단기 개인정신치료를 받아보기로 합의했다. 정신치료를 하던 중에 처음에는 주로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하소연했는데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 부부 모두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내면의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통찰이 깊어져 갔다.일반적으로 부부가 서로 잡아먹을 듯이 격한 감정 상태로 찾아오는 경우에도, 실상 오랫동안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그렇지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의 문제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때 치료자는 각자의 정서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이를 해결하려는 치료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부인의 경우 최근에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화낼 일이 아닌데 느닷없이 엄청난 화가 올라오고 흥분을 하게 된다고 했다. 어릴 때 오빠와 여동생이 특별히 공부를 잘해 자기는 어머니에게 늘 비교를 당했다고 했다.어머니가 종종 ‘쟤는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라고 하면서 마치 자신을 두고 한심스럽다는 듯이 비하하는 태도에 감정이 몹시 상했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어머니에게 종아리를 맞은 흔적 때문에 체육시간에 창피했다는 사실도 회상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자기 자신의 동기라기보다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보이기 위한 인생을 산 꼴이 되니, 나이가 먹어가면서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억울하기까지 해 몹시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남편은 여러 남매 사이에서 치이면서 자란 어머니가 시집와서 친정 부모의 사랑을 자기 남편이 대신 채워주기를 원했으나 충족이 되지 않았다. 대신 외동아들인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해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관계로 자랐다고 했다. 어머니의 대리인으로 아버지를 비난하고 맞서 싸웠으며, 어머니와 과도한 밀착관계 때문에 원래 소외감으로 예민한 부인을 더욱 자극하고 상처를 일으키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인간관계의 개선과 정신장애의 극복을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의 문제를 분리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심한 갈등이라도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하려 노력하면 생각보다 갈등이 쉽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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