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오빠가 생겼다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여보세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그 목소리를 듣고 “오빤데, 오늘 저녁에 밥사주려고 하는데 시간 돼?” 그러자 “어디서요?”라며 ‘호호호’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이따 오세요”라고 한다. 바로 아내와의 전화 통화내용이다. 아내에게 오빠가 생겼다. 또한 필자에게 여동생이 생겼다. 바로 지난해부터 아내와 ‘오빠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난관이 많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빤데..’라고 하면 “당신 왜 그래요” 또는 “무슨 오빠예요”라며 신경질적인 반항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이에 굽히지 않고 서너 달 쯤 끈질기게 지속을 하니 이내 아내도 오빠라는 명칭에 익숙해지고, 남편이 그렇게 부르면 적당히 대답을 하곤 한다.
아내에겐 오빠가 없다. 더구나 딸만 다섯 명인 집에서 맏이다. 도대체 오빠란 단어의 속뜻은 가족관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 그 속에는 비밀코드가 숨어 있었다. 여동생에게 오빠란 관계를 생각해보자. 우선 여동생에게 오빠의 의미는 항상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보디가드의 역할이며,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답해줄 수 있는 인생의 선배이며, 무엇을 사달라고 편하게 조를 수 있는 대상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아내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던 오빠라는 단어에 호감을 가졌으며 수용을 한 것이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가 대뜸 전화를 걸어서 “오빤데...”하고 말을 건내본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딸과는 여행놀이를 했다. 6월 초에 대뜸 제주도에 간다며 보조를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기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딸은 며칠 전 아내의 카드를 빌려서 제주도 항공권을 예약했다. 선 조치, 후 수습을 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다. 그러나 기획서는 보여주지 않고 얼굴을 마주치면 보조를 많이 해달라고 애걸한다. 그래서 기획서를 보고 결정하겠노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빠보다 더 바쁜 딸은 기획서를 기대하라는 말을 남기고 일주일만 기다리라고 한다. 드디어 3장짜리 기획서를 건내받았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기획서였다. 겉보기엔 단순한 내용 같지만 함께 갈 친구의 프로필부터 세부적인 여행 일정, 그리고 자금 스케줄까지 꼼꼼히, 그리고 촘촘히 적혀있었다. 이것을 받는 순간 도저히 돈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결국 명분과 실리를 계산하여 50% 보조금을 지불했다. 딸은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환한 얼굴로 답했다. 그리고 다시 딸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아빠가 멀리서도 보호를 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시시각각 이동을 한다면 바로 사진을 찍어서 전송하라고 했고, 딸도 흔쾌히 응했으며 엄마에게도 동시에 전송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3박 4일동안 수십 장의 사진이 전송되어서 스마트폰에 도착했다. 먼저 출발하기 전 사진부터 친구와의 사진, 공항에서, 그리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그리고 바닷가에서 파도가 철석거리는 파도는 동영상으로 보내왔으며 마지막으로 성산일출봉에서 사진도 보내왔다. 사실, 이번 제주도 여행을 딸이 기획하면서 최소의 비용으로 다녀왔다. 우선 비수기라 항공권이 저렴했으며 또한 저가항공으로 또한 가격이 더욱 낮아졌고 더구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에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벌써 경제성에 대한 개념이 몸에 밴 것을 알 수 있으니 참으로 대견했다. 이제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아들과는 원격인증놀이를 했다. 지난 4월 그룹 넬의 공연이 서울에서 열렸다. 아들은 안방에 들어오더니 친구와 공연장에 간다고 하며 얼마를 보조 할 것이지를 대뜸 물어본다. 여기서 잠깐, 왜 아이들이 보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설명하자. 보조시스템은 우리 집의 양육시스템의 일부이다.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를 간다면 일정 금액을 보조해준다. 보통은 50% 보조를 해주는데 딸의 영화관람은 지난해까지 100%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90%로 하향조정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기에 어떤 주는 일주일에 5번을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질문에 50%를 보조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무려 8만원이란다. 순간 부담감이 확 밀려온다. 그리고 이어서 어떻게 하면 100% 보조를 받을 수 있냐고 묻는다. 그 짧은 순간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우선 아들이 이런 공연에 가는 것도 처음이며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과 몸으로 듣는 음악의 차이를 알려주고 싶었으며, 라이브의 생생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인증샷을 5장 이상 보내달라고 했으며 그 사진은 카페에 올린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은 ‘알았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간다.
거절한다는 의미 보다 생각을 해본다는 의사표시다. 거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하도 신문과 방송출연이 많아서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에 대하여 알러지 반응이 있다. 더구나 지금은 사춘기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면서 방송출연을 하려면 꼭 아들의 동의를 받았으며 결국, 중학생 이후로 신문과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과거가 있기에 카페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꼭 아들의 동의를 받고 올렸으며 이번 공연 역시 가고는 싶지만 자신의 사진이 카페에 올려지는 것이 마뜩찮은 듯 하다. 아마 아들의 입장에서 돈이 충분히 있었다면 4만원을 자신의 돈으로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더니 하루가 지나서 안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빠 100% 보조해주세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서 주겠다고 한다. 넬 공연 당일, 아들은 친구와 같이 출발을 했고, 입구에서부터 공연사진, 친구와의 사진 100여장을 찍었고 메일로 보내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들은 환한 얼굴로 “아빠, 음악을 귀로 듣는 것과 몸으로 듣는 차이를 확실히 알았어요”라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한다.
위의 놀이 사례를 보면 아내, 아들, 딸과의 놀이를 볼 수 있다. 바로 놀이란 곧 우리의 삶속에 모두 섞여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삶은 곧 놀이란 사실이다. 놀이에 관하여 기존의 관념과 놀이의 속성에 대하여 알아보자.
1.놀이는 어른들 사이에도 가능하다.
놀이에 대한 관념은 부모가 아이와 하는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이와 할 놀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 때는 마치 공부만 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놀이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다. 놀이는 삶에서 약방의 감초와 같다.
2.놀이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가능하다.
놀이에 대한 또 다른 관념은 아이와 얼굴을 봐야 놀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신체놀이, 도구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이는 얼굴을 보지 않고도 가능하다. 그것의 원조가 바로 원격놀이다. 놀이가 형성되려면 두 사람 사이에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발생하면 된다. 그것이 곧 교감이다. 딸이 제주도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내오고, 답글을 달아주는 것이 바로 원격놀이다.
3.놀이는 규칙을 배울 수 있다.
세상에는 규칙이 있다. 큰 의미의 규칙은 달이 지구를 돌거나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태양을 공전하는 일이다. 이런 것이 질서다. 양육의 기본은 아이에게 ‘된다’와 ‘안된다’를 가르치는 일이다. 바로 규칙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인간관계에서 규칙을 하나씩 알아간다. 이 것이 곧 질서의식으로 연결되며 인간의 본분에 대하여 인성으로 형성된다. 또한 규칙을 통하여 기다림과 사색을 알게 되며 물러남과 나아감을 알 수 있다. 보조를 50% 해준다는 것은 곧 아이들과의 규칙이다.
4.놀이는 즐거움이다.
아내와는 그냥 전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사준다’라는 팁을 슬쩍 말한다. 물론 자신이 사서 먹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서 찾아와서 밥을 사준다면 색다른 기쁨이 있다. 딸의 경우, 제주도에서 사진을 보내면 아빠는 다시 답장을 하며 격려도 해준다. 누군가 나의 일정에 박수를 쳐준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다. 이렇듯, 놀이속에는 소소한 즐거움이 숨어있다.
5.놀이는 소통이다.
소통의 반대는 불통이다. 가장 나쁜 소통 방식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얼굴을 마주하는 중, 고등학생 아들에게 갑자기 “아들아, 아빠랑 얘기좀 하자”라는 멘트이다. 이런 경우, 아빠는 대화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이는 전혀 무방비상태이다. 그러므로 많은 부담감이 작용하여 오히려 일방적인 대화가 되기 쉽고 거절당하기 쉽다. 그러나 대화란 곧 사랑하는 사이에 쉽게 할 수 있다. 바로 평소에 사소한 놀이를 지속하게 되면 늘, 깃털처럼 가볍게 대화를 할 수 있다.
아내에게 하는 필자의 놀이행위가 얼핏, 닭살이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또한 아이들에게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이들도 늘 당연하게 생각을 한다. 바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했으면 또한 그렇게 놀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로 아이들에게 아빠란 늘 친구와 같이 곁에 있어주었다. 바로 그 중심에 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놀이를 정의하라고 하면
놀이는 곧 소통이다.
놀이는 곧 사랑이다.
놀이는 곧 행복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삶 자체가 놀이이며, 놀이는 곧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이제,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