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두뇌계발 이름으로 놀이조차 가르친다?

김영훈 2012. 06. 12
조회수 8995 추천수 0

03616774_P_0.jpg » 블럭 놀이 하는 아이들. 한겨레 자료사진.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든지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싶어 하는 미래학자들조차도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예측이 불가능한 세상에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는 지금까지 갓난아이에게 수유를 하고, 기저귀 갈아주고, 안고 다니면서 키워왔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걷고 뛰고 놀고 공부하기를 기대하면서 서포트를 하고 있다.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놀기도 하며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서서히 성인으로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못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완전하게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이 스스로 하는 놀이조차도 두뇌계발이라는 이름하에 부모에 의하여 주어진다. 그림책의 주인공이 마음에 들면 신나서 부모에게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재잘거리면서 설명을 하고, 혼자 그림도 그리고, 그림책의 장면을 기억하여 블록이나 종이찰흙을 이용하여 표현하기도 하고, 또래 아이들과 역할놀이를 하면서 그림책의 즐거움을 나눌텐데, 부모는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자연스럽게 이루지는 놀이조차도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부모는 교육을 목적으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아이가 열심히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모가 옆에서 그저 즐겁게 같이 놀아주는 것으로 족하다. 아이들은 기존의 틀을 깨는 창의력이나 상상력도 있어야 하지만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도 필요하다. 주어진 문제가 풀릴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혹은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생각하고 몰입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부모들이 그 과정에서 같이 놀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몰입하여야 한다.


과거의 정보사회에서는 ‘정보’를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보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사고는 필요하지 않았다. 지식이면 충분했고 다른 모든 것은 따라올 것이라는 믿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고가 지식만큼이나 중요하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정보 중 불필요하다고 판단된 것은 알아서 거른다. 때로는 정보를 분류해서 쓸데없는 정보는 잊어버린다. 그 정보가 휠씬 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정보일지라도 기존의 사고방식에 따라 버리는 잠제역제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창의적인 아이들은 미리 판단하여 거르는 율이 낮다. 창의적인 아이들은 항상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 있다. 주변 환경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더 민감하게 열려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어서 창의적인 결과를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는 특정한 영역에 뛰어난 잠재력을 보이고, 한꺼번에 많이 생각하고, 과제집착력까지 갖추어졌을 때 개인의 영재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그러한 특성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아이의 생산물이나 행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방해한다면 제대로 영재성을 발휘할 수 없다. 아이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풍부한 놀잇감과 놀이공간이 있어야 하며, 아이의 두뇌유형이나 흥미를 고려하여 칭찬과 격려를 하여야 하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부모와 신뢰관계가 단단해야 한다. 창의적 사고력을 증진시키기에 좋은 부모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자. 

내 아이에게 많은 주도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일수록 아이의 창의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권위적이지도 않고, 아이를 끊임없이 통제하지도 않으며, 아이의 행동을 아주 엄격하게 제한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들은 아이의 어떤 행동에도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들의 모험적인 시도에도 크게 걱정하지도 않으며 아이를 믿고 자유스럽게 행동하도록 아이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경향이 있었다.

부모가 놀이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 아이는 도무지 머리를 사용하여 생각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필요하면 상상도 하고 생각도 해야 할텐데 그럴 짬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에 대한 절실함도 가지지 못하게 한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없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면서, 가끔 격려해주면서, 앞서 나가지 않고 반걸음 늦게 따라가 주고 반응해 주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창의적인 사고도 숙련이 필요하다. 

부모들 중에는 “창의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남다르게 뛰어난 지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을 터득하고 이를 항상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것이 창의력이다. 그런 점에서는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열심히 부수고 만들며 말썽을 피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분해하고 부수면서 그것들은 모두 아이의 창의력 훈련을 위한 교구가 된다.


셋째, 규칙을 너무 만들지 말자. 

아이에게 원을 그려주고 안을 색칠하라고 하면, 색을 칠할 때 경계선 밖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으며, 깨끗하게 칠할수록 점수를 더 받을 것이라고 판단을 한다. 지시 내용에 있지도 않은 기준을 자신이 만들어 원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습관은 그 기준이 아주 분명한 세상에서는 효율적이지만,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부모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거나 방은 항상 깨끗이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는 등의 규칙들은 아이의 창의적 사고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아이의 생활습관을 잘 만들어주기 위한 규칙이 대부분이지만 이러한 규칙이나 제한들이 아이의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규칙을 정하자.


넷째, 영상이나 게임을 이용하자. 

21세기의 아이는 영상매체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교육은 효과를 발휘한다. 요즘 아이들은 글로 읽는 것보다 시각을 통해서 훨씬 더 빨리 내용을 이해한다. 영상으로 학습할 때는 스토리와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억지로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어려운 주제의 학습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인쇄매체도 중요하지만, 영상세대에게는 인쇄매체와 더불어 영상을 활용하는 게 그 효과가 훨씬 더 크다.

또한 아이들의 사고력 증진을 위해서는 게임의 형태를 띠면 좋다. 보드게임이든 컴퓨터게임이든 과학상자든 수도쿠 같은 숫자놀이든 게임을 통해 사고하게 하면 효과가 있다. 또한 보드게임과 같이 동생이나 부모와 같이 할 수 있는 게임들은 다른 학습보다도 판단력이나 문제해결력을 키우는데 더 효과적이다.


다섯째, 역할놀이를 통하여 자발적 동기를 키우자. 

집안에 있는 화장품이나 주방용품을 이용하기도 하고, 블록이나 종이찰흙을 이용하여 만들기도 하면서 자기가 보고 경험했던 역할들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세상에서 처음 보는 장난감을 개발하기도 한다. 그때 아이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길러질 뿐 아니라 사고력도 길러지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온갖 종류의 창의력 사고력 계발 장난감들을 보면 아이 스스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발휘하게 하기 보다는 규격화되고 틀에 맞추어진 창의력과 사고력을 주입하는데 초점이 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역할 놀이는 다양한 상황재현을 통하여 이런 장난감들이 해내지 못하는 자발적 동기를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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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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