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죽느냐, 탈출하느냐 - 무인도에서 탈출하기

권오진 2012.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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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에 사람이 찾지 않는 섬, 무인도...

인간에게 무인도란 무엇인가...

문명인의 삶에서 무인도란 어떤 의미로 느껴지는가... 

왜, 우리는 무인도를 꿈꾸는 것일까...

무인도가 좋아서 무인도를 찾았고,

무인도에 가다보니 무인도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무인도행사를 10년 동안 26번이나 했으며,

무인도를 통하여 무인도 정신을 갖춘 아이를 키우기도 했다.

무인도는 곧 최고의 자녀양육 서식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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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인천 연안부두. 무인도에 참가하는 10가족들이 속속 도착하며 인사를 한다. 선생님은 인원체크와 준비물 점검을 하며 곧 배에 탈 준비를 한다. 그 때, 한 어머니가 다가와서 단장임을 확인하고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저희 아이는 중2인데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아요. 그래서 서로 말도 거의 하지 않아요. 그러니 잘 좀 부탁합니다”라며 고개를 깊숙이 숙인다. 그래서 걱정마시라고 덕담을 건내고 헤어졌다. 그리고 2박 3일이 지난 후, 인천연안부두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집 아빠와 아이가 손을 잡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보였고, 아들을 보자 달려가서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필자에게 다가와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가족은 무언인가 호탕한 웃음을 웃으며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0527009.jpg 한 번은 무인도 체험에서 편식이 심한 아이와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가 참가했다. 나이는 고작 7,8세인데 엄마, 아빠가 말하기를 편식이 너무 심하다고 하며, 또 다른 아이는 김치는 절대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반나절이면 개선이 되니 걱정마시라고 했다. 우선 무인도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완전 무인도이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으며 따라서 전기도 없다. 그러므로 냉장고, 에어컨, TV도 없다. 편의점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개인 짐의 검사이다. 일일이 가방과 배낭을 열어본다. 물론 게임기는 당연히 압수를 하고, 핸드폰도 모두 반납한다. 그리고 먹을 것을 숨겨두면 모두 몰수다. 이를 사전에 눈치채고 아이들은 과자나 빵 등을 가장 깊은 곳에 넣는다. 그러나 이미 그런 사실을 알기에 선생님들은 쉽게 찾아낸다. 그러면 아이들은 한숨소리는 땅이 꺼지듯이 깊어진다. 사전에 무인도에서의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말 몰래 먹으려던 과자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 곳에 도착하면 단장으로서 필자의 일성은 “너희들은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왔다. 너희가 여기서 살아서 나가려는 방법은 딱 2가지다. 첫째는 선생님의 지시에 절대 따라야 한다. 둘째, 아빠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서 집에 갈 수 있다”

 

이 말에 아이들은 비로소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왔음을 절감하고 잔뜩 긴장하며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그곳에서의 첫 식사는 감자다. 1인당 달랑 계란보다 작은 감자 두 개를 지급한다. 이 것을 받는 순간, 아이들은 게걸스럽게 후다닥 먹는다. 그리고 “선생님, 밥은 언제 줘요?”라고 묻는 아이도 있다. 그러면 ‘이것이 저녁식사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해준다. 그러면 아이는 감자가 저녁식사라는 것은 알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이며,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나갈수 있을까라는 한숨어린 표정이 생생하게 포착된다. 바로 여기가 터닝포인트이다. 이러한 첫 경험은 아이에게 문화적, 심리적인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다음부터 주는 것이라면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그 다음날 아침에 김치가 배식에 포함된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은 그냥 김치를 먹는다. 그러면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한 마디를 한다. “너, 김치먹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잘 먹네” 그러면 아이는 “선생님, 무인도에서는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한데요. 그래야 에너지가 생겨서 탈출할수 있거든요” 

0527004.jpg  무인도에서의 첫 날은 그야말로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초전박살, 기선제압 한다. 아이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관념과 나쁜 습관들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한다. 자신을 고집한다는 것은 곧 죽을 수 있다는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당한 헐리우드 액션이 숨어있다. 사실, 감자 두 개라고 함은 반끼 식사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에너지 소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그러므로 감자를 먹자마자 배꼽시계는 밥을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내며 아우성이다. 감자의 경우, 아빠와 아이에게 각각 2개를 지급했지만 오히려 아이가 평균 2개 반 정도를 먹는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 앞에서 아빠가 2개를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아빠가 자신보다 감자를 덜 드셨기에 당연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 말에 아빠는 혹시 먹을 것이 있나 본부에 갔다온다고 말한다. 아빠가 본부에 도착하면 이미 충분한 양의 삶은 감자가 있다. 여기서 아빠는 아이가 모르게 2~3개를 드시며 아이의 상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아빠는 감자 한 개를 주머니에 넣고 아이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텐트로 돌아와서 그것을 아이에게 주며 “선생님에게 사정사정해서 얻어온 것이란다”라는 한 마디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가 자신을 위해서 자존심을 접고 갔다가 왔음을 알고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이는 감자 한 개를 더 먹었지만 배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계속 울린다.

 

그러나 반전은 밤11시에 바닷가에서 달랑개 잡이다. 그 게의 크기란 등딱지가 500원 동전만하지만 말랑말랑하여 통째로 익혀서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게는 낮에 결코 잡을 수가 없다. 5미터까지 접근하면 그만 굴에 쏙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에는 야행성이라 굴에서 나와서 활발한 먹이활동을 한다. 그런데 캄캄한 곳에서 갑자기 렌턴을 비추면 게가 순간 방향감각을 잃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 순간 이리저리 도망을 간다. 그 때 잡는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하여 먼저 사전교육을 시킨다. 게 한 마리를 잡아와서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여 잡는 법을 실습을 한다. 그러면 대부분 쉽게 잡을 수 있다. 규칙도 있다. 모래를 던지거나, 도구를 사용하여 잡을 수 없다. 또한 알이 있는 게는 즉시 방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늘 아이들이 잘 잡지는 못한다. 게를 잡으러 갈 때의 멘트는 ‘게 섯거라’이며 여기저기서 게를 잡았다는 함성이 들린다. 그러다가 가끔 우는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게를 잡다가 게의 발에 손을 물린 것이다. 더구나 게에게 물린 상태로 게를 바라보면서 엉엉 울기도 한다. 물론 약간의 피는 난다. 거기에서 놀라운 경험도 있었다. 


한 번은 게를 잡기 시작해서 바위쪽으로 갔는데 참가자 모두 순간, 함성을 질렀다. 수 천마리의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순간 그것이 게라는 사실을 즉시 알았다. 마치 인디아나존스에서 수많은 벌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순간, 모두 넋이 빠졌지만 꿈을 꾸듯이 손으로 주워담았다. 하지만 늘 자연에 대한 경외로움은 가지고 있다. 잡은 게 중에서 작은 게는 모두 방생하고, 잡은 게의 절반 정도의 작은 게는 다시 방생을 한다. 그럼 보통 2~300마리 정도가 남는다. 이것은 밤찬 겸 간식으로 먹는다. 주로 장작불 위에 석쇠를 놓고 구워먹는다. 최근에는 밀가루 반죽에 넣어서 튀김을 해서 먹는다. 그러면 아빠와 아이는 원을 그리면서 앉아서 턱을 괴고 침을 꿀꺽 삼킨다. 게가 익으면 한 마리씩 로테이션으로 지급하는데 게눈 감추 듯이 없어진다. 이제 아이들에게 게가 두렵다는 생각은 없다. 오직 무인도를 탈출하기 위하여 필요한 에너지원으로서의 게다. 때론 5살 아이가 30마리를 먹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밤은 깊어가지만 아이들은 잠을 자기 않고 그들끼리 묵찌빠를 하면서 왕놀이를 하거나 장작불 곁에서 아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0527005.jpg 무인도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가장 필수품 1호는 물이다. 물은 보통 하루에 2리터 이상을 마셔야 정상인데 무인도에서는 그 소모가 훨씬 빠르다. 그러나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갈밭과 산을 넘어서 30분을 걸어야 한다. 또한 개인이 물을 들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무인도에서 목욕은 언감생심이며, 주로 고양이 세수를 한다. 그러나 누구도 투덜거리지 않는다. 오직 생존해서 탈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가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러면 준비한 비닐을 이용하여 빗물을 받을 수 있으며 또한 실컷 비를 맞으면서 목욕을 할 수가 있다. 물을 만드는 법도 배운다. 먼저 오염된 물은 먼저 속옷에 넣어 부유물을 제거한다. 그리고 빈 페트병을 이용하여 오염된 물을 정화하여 마신다. 우선 펫트병 밑에서부터 모래-숮-모래-숮-모래-작은 자갈-나뭇잎을 넣는다. 그 물을 펫트병에 넣으면 이제 마실만 하다. 그런데 좀더 완벽한 소독을 하려면 그 물을 페트병에 넣고, 60도 이상으로 불에 쬐어서 1시간 이상을 살균해야 한다. 소금을 만드는 법도 배운다. 그저 비닐을 모래위에 바가지 모양으로 만든 후에 바닷물을 넣으면 뜨거운 햇볕으로 증발하면서 소금 알갱이가 만들어준다.

 

필수품 2호는 불이다. 불은 음식을 익혀먹을 때 유용하며 또한 비가 올 때 저체온증을 예방한다. 여름이면 밤이라도 보통 27~8도에 이른다. 이 정도의 온도라면 이불이 없어도 시원하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사정이 다르다. 기온이 20도 정도까지 내려간다. 더구나 옷도 대부분 젖는다. 그러면 당장 급한 것은 저체온증을 걱정해야 한다. 이럴 때 급한 것은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서 먹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예방이 된다. 불을 만드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카메라 렌즈를 이용할 수 있다. 바람이 불지 않은 곳에서 잘 마른 나뭇잎에 렌즈를 비추어서 초점을 맞추면 5분만에 불을 붙일 수가 있다. 또는 대나무를 문질러서 불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방법은 월남전에서 패전한 미군들이 깊은 산속의 태국 원주민에게 가게 되었고 이 방법을 배워 생존했다고 한다. 또는 아프리카의 원주민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뭇가지를 비벼서 물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을 알려주어도 성공할 확률은 10~20%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성공한 아빠도 손이 시뻘게 진다.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다. 그렇게 어렵사리 불을 만들어서 밥을 해먹으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빠란 존재가 거인처럼 크게 보일 수 밖에 없다. 

0527006.jpg 무인도에서의 두려움은 물과 불만이 아니다. 동굴탐험이 기다리고 있다. 동굴의 깊이는 대략 500미터. 그중에서 200미터를 걸어갔다가 와야 한다. 우선 동굴을 들어갈 때, 안정성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동굴의 종류는 천연동굴도 있고 인공동굴도 있다. 그리고 그 지질에 따라서 석회암 동굴도 있고, 화강암 동굴 등도 있다. 이 동굴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비교적 안전하다. 그런데 모든 동굴이 그렇듯이 여기도 들어가면 암흑 자체이다. 이 동굴을 처음 답사한 6년 전의 일이다. 아들과 선생님과 셋이서 렌턴 3개를 들고 들어갔다. 그야말로 소름이 오싹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끝까지 답사를 한 후에 나오는데 렌턴 1개가 꺼졌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나오는데 중간에 또 1개가 꺼졌다. 겨우 마지막 렌턴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낀다. 이 동굴을 들어가는 이유는 동굴탐험의 의미가 있지만 사실, 타임캡슐을 가지고 가서 두고 오는 미션이다. 바로 전날 흰 차돌에 아빠와 아이가 10년 후의 꿈을 유성사인펜으로 적었고, 들어가기 전 모두 손에 그 돌을 들고 있다. 이곳에서 6년정도를 진행했으니 동굴의 끝에 가면 수백개의 타임캡슐 돌이 선명하게 쌓여있음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동굴에 들어가기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곳에 나름 신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동굴 끝에 가면 아직도 활화산의 활동을 하여 유황이 가끔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토록 했다. 또 하나는 물뱀이 많다는 소문을 냈다. 그곳의 바닥에는 물이 고여있다. 그 깊이는 대략 20센치 정도다. 이런 사정을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기에 초등학생은 물론 중학생도 긴장한다. 그리고 첫 번째 가족이 들어가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긴장하다가 나오면 뱀은 봤느냐, 유황은 나오느냐고 질문을 쏟아붙는다. 또한 탐험을 성공한 아이는 목에 힘이 들어가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하지만 모두 성공하였다는 사실에 다소 시시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코 쌍방간에 그 도전정신을 훼손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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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탐험의 하이라이트는 뗏목을 만들어서 탈출하기다. 이 프로그램은 10년 전, 처음부터 시작을 했다. 우선 5월 경에 답사를 할 때, 6미터 대나무 50개 정도를 섬으로 가지고 가서 보관을 한다. 이것으로 뗏목을 만든다. 하지만 그 양은 가지는 부력이란 사실 50키로 그램 정도에 불과하다. 보통 3명이 탄다고 하면 150키로그램인데 턱도 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주위에 버려진 원통형 스티로폼을 구하여 보통 6개를 밑에 고정을 시킨다. 그러면 200키로그램 이상의 부력을 가진다. 이것을 만들 때면 모두 모이게 한 후에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10여명의 아빠들이 공동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끈으로 묶는 것만 해도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 때가 유일하게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는 시간이다. 뗏목을 만든 후에 아이를 태우고 테스트를 한다. 그러다 너무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도 발견하고, 또는 부실하여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아빠들은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재빨리 수리하여 완성한다. 


‘무인도에서 탈출하기’ 이 제목은 무인도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바로 뗏목을 타고 무인도에서 탈출한다는 시나리오다. 보통 탈출하기 전날 뗏목은 만들어지고, 각 가정에 뗏목을 타고 탈출 할 수 있음을 공지한다. 이 말의 의미는 농담이지만 실제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뗏목을 타고 탈출하는 법은 간단하다. 보통 10가정이 뗏목을 차례대로 탄 다음 바다로 뗏목을 밀어서 내보낸다. 이 때, 뗏목에는 줄이 묶여 있으며 육지에는 그 이어진 줄을 잡고 있다. 돌아오는 방법이란 그 줄을 당기면 저절로 올 수 가 있다. 하지만 뗏목을 타고 탈출하는 것은 바다로 밀면서 줄을 잘라버리면 간단하게 바다로 나가게 된다. 이 말은 농담이지만 실제로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면 중학생이라면 자신은 줄을 끊어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그 괴리가 생기기 마련이가보다. 아이의 그 말에 현장에서 줄을 끊겠다고 가위를 갖다대면 그야말로 꼬리를 내리면서, 항복을 하면서 끊지 말라고 사정사정을 한다. 일종의 치킨게임처럼 보이지만 오직 뗏목을 타고 바닷가로 나가는 것은 장난이 아님을 직감한다. 1미터의 파도가 뗏목에 부딪히는 것을 보면 가로 2미터*세로 3미터의 뗏목은 그야말로 성냥갑을 강물에 띄운 듯 위태위태하다. 이런 상황을 목도한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을 고집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으며 결국, 우리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 하는 것이 현실적임을 알게 된다. 

0527008.jpg  그동안 무인도 행사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26회의 행사를 했다. 작년 행사가 마지막 행사가 되었다. 2002년에 첫 행사를 하고 해마다 2번, 또는 3번의 행사를 하였다. 40대 초반이었던 필자는 어는 덧 50대 초반이 되었고, 6살에 처음 무인도를 함께 갔던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그럼 왜 무인도 행사를 하게 되었을까? 이건 순전히 필자의 고집과 독선(?)과 아집(?)과 상상의 산물이다. 처음 무인도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0년이다. 그 어떤 계기가 되어 무인도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그리고 생각을 하면 몸을 늘 움직였던 필자는 서해안의 섬을 살피기 시작했으며 섬 한 곳을 다녀왔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리고 2001년에 3개의 섬을 답사를 한 후에 드디어 무인도 행사를 할 만한 섬을 찾았다. 무인도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무인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행사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섬에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번째 무인도에서는 물이 없음을 알고 2리터 물을 무려 200병이나 가지고 갔다. 무려 400리터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섬에서 샘물을 발견하는 횡재를 해서 그 물의 효용이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첫 번째 행사에서 더욱 두려운 것은 무인도에 해적들이 가끔 나타났다는 주위의 섬 동네 어른들의 말씀이다. 그러다 보니 첫 행사에는 밤에 보초를 차례로 서며 밤을 지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 든다.

 

 무인도 행사를 그저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필자에게는 아빠와추억만들기 단장을 고착화시킨 역할을 했다. 그저 즐거움으로 행사를 시작했지만 참여한 가족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전국에서 10~20가족이 참가를 한다. 인원은 작게는 25명에서 50명 정도였다. 최고로 많을 때는 85명이 참가를 했다. 신문, 방송, 잡지 등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때론 5개팀, 16명의 취재진이 한꺼번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동안 화재집중에 3번이나 방송을 탔으며 방송에만 20여 차례 나왔다. 그러면서 무인도의 인기는 점점 높아갔지만 사실, 거꾸로 인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인원이 많으면 통제가 힘들고 각 가정의 아이들을 살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참으로 많았다.

 

때론 2박 3일의 행사가 3박 4일 행사가 되기도 했다. 무인도에서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인천으로 가는 날 새벽부터 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잠을 설치며 텐트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사투를 벌렸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비바람이 멈쳤다. 그런데 문제는 파도에 있었다. 너울성 파도가 심하게 치고 있었다. 부랴부랴 배의 선장과 통화를 해서 오기로 했다. 그러나 섬을 불과 100미터를 앞두고 배가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돌아간다. 그 순간 정박을 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돌아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이들은 집에 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배가 돌아가고 없으니 중학생 조차도 여기저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초등학생은 아예 쪼그려서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다는 속담처럼 밤이 되자 다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강풍까지 몰아쳤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곳에서 발생했다. 비를 맞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춥다고 난리다. 이제 저체온증을 걱정할 때이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식량이 부족하단 사실이다. 집에 간다는 말에 식량을 사용하고 남은 반찬재료는 산에다 던진 가족들이 많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아빠의 얼굴을 빼꿈히 쳐다 본다. 그래서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비상용 라면 1박스를 모래속에서 꺼냈다. 그리고 각 텐트에서 모든 식량을 모았다. 그래서 그것으로 해가 지기 전 짬봉밥을 만들었다. 아빠,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아무런 군소리 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비쳤다. 아이들은 그 의미를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엔도르핀이 마구 쏟아졌다. 그래도 아침식사는 라면을 끊여서 함께 먹었다. 모두들 왜 그렇게 라면이 맛있는지 새삼 알것 같았다. 이윽고 배는 도착했고, 깃털같은 몸으로 점프를 하여 모두 승선했다.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했더니 대부분의 엄마들이 마중을 나왔으며 깊은 포옹을 하였다. 말로 만 듣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무사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왔다.

 

또 한 번은 안개가 문제가 되었다. 인천에서 승봉도까지는 무사히 도착을 했다. 그런데 심한 안개와 너울성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승봉도에서 일단 점심을 먹고 기상상태를 살폈으며 선장과도 상의를 했다. 그랬더니 힘들겠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모든 가족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고 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토의를 했다. 물론 아이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가자고 한다. 아빠들의 절반은 찬성과 반대로 나눠었다. 그래서 결국 최종결정은 단장의 몫이었다. 출발하기로 했다. 물론 도착할 때의 위험성과 고생이 기다리고 있음을 충분히 알려주었고, 모두들 죽기를 각오하고 출발했다. 심한 안개와 파도위에 배는 춤을 추듯이 전진을 하였고 섬에서 가장 파도의 영향이 적은 곳에 정박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곳도 파도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파도로 인해 배의 고저가 거의 50센치 이상이었다. 선장도 그 위험성을 경계했고, 아빠들에게도 다시 그 위험성을 고지했다. 겨우, 겨우 한명씩 배에서 내렸고, 짐도 내렸다. 이제는 무인도 행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난은 지금부터였다. 섬의 반대편에서 내렸기에 그 많은 짐을 가지고 그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길이 없는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하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맨 처음 출발하는 곳은 경사가 60도나 되었으며 30미터를 올라가는 일이다. 아빠들은 자신의 안전보다 아이들의 안전에 대하여 안절부절이다. 다시 아빠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으며 서두르지 않고, 늦더라도 천천히 가기로 결정했다. 평상시의 무인도 행사란 도착해서 200미터만 가면 된다. 그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곳은 전혀 다른 곳이다. 30미터를 넘었더니 이제는 갯바위지대이며 옆은 낭떠러지기다.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바로 30미터 밑으로 떨어진다. 아빠와 아이 모두 초주검 상태로 긴장을 유지하며 그곳도 통과했다. 이제는 자갈밭이다. 도데체 물건을 들고 제대로 걷기가 힘들다. 더욱이 슬리퍼를 갖고 온 아빠들은 그 고통이 배가 되었다. 그런 역경을 딛고 2킬로 미터를 5시간에 걸쳐서 왔다.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긴장이 풀리면서 초두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을 이긴 가족들답게 아빠와 아이와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0527007.jpg 무인도에 갔다오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참석을 했다. 그리고 집에와서 하는 말 “엄마, 화장실이 궁전같아요?“ 라고 했다. 아들은 10년 동안 23번이나 참석한 베테랑답게 이제 사막에 혼자 떨어트려놔도 혼자 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 무인도 효과의 구체적인 효과를 알아보자.

 

1. 사회성

무인도행사에는 전국에서 참석한다. 그러므로 모두 전에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무인도에 도착하기 전, 배에서 이미 절반은 친해지고, 도착하면 금방 형, 동생, 언니, 누나, 오빠가 된다. 마치 내 동생이 아니어도 내 동생 이상으로 돌봐준다. 프로그램 사이에 잠깐 시간이 있으면 저희들끼리 모여서 놀이를 만들면서 놀고 있다. 밤에도 쉽게 잠을 자지 않는다. 밤이 새도록 나름대로 놀이를 한다. 왜 이런 형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무인도에는 우리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모든 환경이 놀이의 입장에서 친놀이적이다. 축구공이 없으면 둥근 어구를 이용하여 축구를 하고, 모래에서 그림그리기, 대나무로 창던지기 등을 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얼음이 둥둥 떠있는 팥빙수 내기 철인 7종경기’를 한다. 이 경기의 특징은 승자가 팥빙수를 독점한다는 점에 있다. 이 사실을 공지하면 우선 얼음이 있다는 말에 반신반의 하지만 헬기로 수송했다는 말에 의구심을 더 커진다. 사실, 얼음은 사전에 미리 준비한 것이고 그늘에 두기에 천천히 녹는다. 얼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었으면 소원이라고 외치다가, 이번에야말로 팥빙수를 먹겠다는 임전무퇴와 결사항쟁의 정신을 갖고 경기에 임한다. 그러나 어쩌랴! 절반은 팥빙수를 먹을 수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아이들은 승패가 갈릴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이어지고 승리를 굳히느냐, 아니면 뒤집기를 하느냐에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마지막 즈음에 가면 주로 3:3 동점이 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게임은 가위바위보 게임을 한다. 이기면 계속하지만 지면 탈락이다. 각 팀마다 15여명이 출전선수다. 한번 할 때마다 아이들의 애간장은 녹아만 간다. 때론 덩치 큰 아빠가 7살짜리에게 지기도 하고, 초등학교 저학년이 5명을 물리치기도 한다. 그러나 확률법칙 상 종반에 접어들면 늘 초접전이다. 그리고 이때 쯤이면 얼음이 둥둥 뜬 팥빙수가 도착해서 승자를 기다린다. 이윽고 마지막 가위바위보가 던져지고 승자와 패자는 갈린다. 승자 팀은 힘찬 환호성이 들리고 패자는 고개를 떨구고 뒤돌아서며 애꿏은 모래를 발로 찬다. 잠시 정적이 흐르면서 진 팀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때론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그 때쯤 승자팀에서는 미리 교육을 받은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우리가 이겼지만 우리가 다 먹으면 진팀들도 열심히 했는데 미안하지 않느냐,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아이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그러며 이구동성으로 나누어 먹자고 하고, 아빠들은 그런 아이들이 대견스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등을 두르려 준다. 이윽고 승자팀에서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야, 이리와. 같이 먹자~. 이 말에 체면은 온데간데 없고, 아이들은 아빠를 힐긋 쳐다보고 팥빙수를 향해서 달려간다. ”형, 고마워“ ”뭘 그래. 많이 먹어“ 오고가는 덕담속에 아이들은 속정은 깊어가고 눈물을 흘리던 아이는 금방 눈물이 웃음으로 뒤범벅이 된다. 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아빠들은 감동의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2. 자신감과 도전정신

무인도 참가 신청을 하면 2개월전부터 준비할 프로그램이 있다. 각 가정마다 아이가 대장이고 아빠는 대원이다. 이 말은 아이가 모든 준비를 총괄해서 한다. 이 말은 곧 자기주도적으로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아빠에게 사전에 무인도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고, 부족하면 책을 사서 읽기도 한다. 첫 날, 무인도에 도착하면 산 정상에 올라간다. 산에는 살모사가 많기에 펫트병을 잘라서 각반으로 발목에 차서 뱀의 공격을 차단한다. 물론 선두는 아이들이다. 때론 7살짜리가 선두에 서기도 한다. 그러면 뒤에 쳐져있던 중학생이 어느틈엔가 선두에 나선다. 물을 구하기도 도전정신의 극치다. 500미터의 자갈밭을 물을 구한 후에 가지고 와야 한다. 자갈밭이라함은 평지보다 에너지의 소모가 서너배는 된다. 그래서 물을 구하고 난 후에 심리적공황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빠가 혼자가 물 두통을 들고 오기는 무리다. 결국 아이도 1/3을 들고 오며 땀이 비가 오듯이 쏟아진다. 뗏목타기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두들 성공했다. 자신에게 닥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로 곁에는 늘 아빠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3. 자존감

자존감은 내가 주위의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것의 형성이란 바로 신체접촉에서 일어난다. 우선 아이들끼리의 놀이에서 누구를 왕따를 시키지 않는다. 꼬맹이부터 중학생까지 함께 한다. 어린 아이가 떼를 쓴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형으로서 조금 양보를 하면서 함께 놀이를 한다. 이곳에서의 목욕은 어불성설이다. 간신히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샘물근처이다. 아이는 웃통을 벗고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아빠가 물통을 머리에 부어서 샤워를 한다. 그래도 감지덕지다. 아빠는 등목을 한다. 엎드린 상태에서 아이가 물을 등에 붇는다. 이러면서 아빠와 아이는 저절로 신체접촉의 횟수가 늘어나고 서로의 소중함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잠을 잘 때도 아빠 곁에 누우니 저절로 팔이 맞닿게 된다. 자존감이 형성되지 말라고 해도 자동으로 형성되고 있다.

 

4. 질서의식

이곳의 샘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밀물과 썰물을 이해해야 한다. 썰물이 된 후에 4시간 후에 들어갈 수 있으며 다시 4시간 후에 마치고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밀물이 올라와서 돌아올 수 없는 구조다. 옷이 젖으면 모았다가 빨래를 해야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해먹고, 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해야하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어살을 함께 만들어야 하고, 또한 탈출을 하려고 뗏목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억지로 하는 것이 없다. 반드시 필요한 것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아침에는 파도소리에 저절로 잠이 깨고 밤이 되면 캄캄해서 잠을 자야 한다. 모기가 좀 극성스럽지만 쑥을 잘라서 태우며 쫒아야 한다. 잠을 자려고 하면 하룻동안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에 아빠와 저절로 대화가 없을 수 없다. 또한 내일은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또한 무인도에서 관연 탈출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5. 자유정신과 몰입

에디슨이 어린 시절, 닭장에서 계란을 품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거기에는 몰입이란 상태가 존재했으며 그럴 수 있는 것은 바로 에디슨의 자유정신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유정신이란 바로 창의성의 어머니이다. 그렇다고 별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고 싶은 곳이 곧 자유정신이 있는 곳이라도 무방하다. 산에 가거나 바다에 가고 싶다는 말은 곳 자유롭고 싶다는 자유정신의 갈구이다. 그런데 산이나 바다에 가면 무엇을 가장 많이 보고 오는 것일까? 정답은 빈 허공이다. 나무나 바닷물이나 하늘이 아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이 순화되고, 정화되고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진다. 그러면서 뭉친 마음은 아침햇살에 비치는 이슬처럼 순간적으로 없어진다. 바로 자유정신이 주는 보너스는 새로운 호기심이 무럭무럭 새싹처럼 솟아 오른 다는 점이다. 무인도에서는 그 자체로 자유정신이다. 확 트인 바다,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행복한 자유정신을 주고 있다.

 

무인도 행사는 2박 3일 행사다. 그런데 가정에서 그 준비기간은 보통 2~3개월이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인도 효과’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사실 부모의 영향보다 자연이 더 많다. 더 위대했단 말로 대신한다. 무인도에 갔다오면 편식이나 김치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 아빠와 아이가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금방 사이가 좋아진다. 그렇다고 억지로 화해를 시키지는 않는다. 그저 어드밴쳐를 기본베이스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무인도에 그 자체를 이용하여 희로애락을 유도한다. 특히,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사람들을 서게 한다. 여기서 인간의 희로애락은 하나로 통합되고 오로지 죽음을 어떻게 피하느냐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에 하던 미움이나 질투 등은 정말 사치라는 사실을 뼈져지게 느낄 수 있다.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은데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은 들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따라서 2박 3일이 지나고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아빠와 아이는 서로 손을 잡고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 지 참새 방앗간으로 돌변한다.

 

무인도 10년 행사를 하면서 정말 고마운 것은 자연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여러번의 위기일발이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만일 그 당시에 큰 사고라도 났으면 이 칼럼은 쓸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2박 3일 동안 무인도를 무단점령하여 많은 새들과 곤충과 기타 생물들에게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하여 심심한 사과를 드리고 싶다. 우리는 2박 3일 동안 머무르다 가는 나그네였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전에도 집이 었고, 지금도, 미래도 집이었기에 늘 나그네의 심정으로 행사를 진행하지만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무인도 행사를 하면서 필자를 자녀양육 전문가로 만들었다. 물론 다른 행사도 수백번을 진행했지만 무인도행사란 그 자체로 10배의 준비기간이 필요했으며 안전에 안전을 기해도 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년을 끝으로 무인도 행사를 접는다고 하니 가장 기뻐한 사람은 아내다. 더 이상 남편에 대한 조바심을 그만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필자가 준비를 했고, 해마다 업그레이드를 했다. 그래서 해가 갈수록 만족도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역지사지라고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이들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더욱 대오각성하게 되었으며 아빠와 아이와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고찰과 숙고를 하게 되었기에 그들의 심리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고, 그 해결책도 하나하나 알아갔다. 그 결과 2년 전부터는 부모특강이나 부모코칭을 할 때, 거의 즉문즉잡을 한다. 질문을 하면 바로 대답을 한다. 물론 이러한 내공이 나오기까지 무인도 행사만은 아니었다. 2005년부터 작년까지 7년 동안 7권의 책도 저술했다. 한마디로 지나온 세월에 대하여 하나씩 이정표를 세웠다. 또한 최근 4년동안 1,000번 이상의 놀이강의와 강연을 했으니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가족을 접촉하고 또한 함께 했다. 결정적인 것은 4년 전에 아빠학교 카페를 오픈했다. 알다시피 카페는 무료이며 교장이 봉사를 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많은 아빠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 결과 4,000명이 넘는 아빠들이 좋은아빠가 되는 길을 선택했으며 수 백명이 좋은 아빠로 변해가고 있다. 그 증거로 수 십명의 아내들이 남편을 칭찬하는 칭찬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무인도에 대하여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 아직도 후계자를 만들지 못함에서 오는 후회와 회한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무인도 행사를 그만둠으로서 이 행사는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10년 동안의 행사를 하면서 유사한 무인도 행사를 본 적이 없다. 그 말은 무인도 행사를 진행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만일, 돈을 벌려고 한다면 이런 행사를 하면 안된다. 그러나 눈이 보이는 돈은 적음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은 정말 크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아이들은 무인도 행사를 통하여 어엿한 아이들로 키웠으니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이제, 이렇게 무인도 행사에 대하여 기록을 남기면 후세에 또 다른 초인이 나타나서 다시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수정단장.jpg

 

10년 동안 무인도에서 탈출하기를 진행한 아빠와추억만들기의 단장으로서 그동안 너무 행복했고, 아이들도 행복했으며, 많은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제2의 무인도에서 탈출하기 단장의 출현을 기대합니다.

 

 * 그림 권규리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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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진
아빠학교 교장. 행복가정연구소장. sbs ‘우아달’ 자문위원. 아빠가 하루 1분만 놀아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1분 놀이’의 달인이다. 13년간 광고대행사 대표로 재직하다 IMF 때 부도가 난 뒤 그저 아이들이 좋아 함께 놀아주다보니 아빠놀이 전문가가 되었다. 놀이는 아빠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사랑이자,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15가지 인성 발달뿐 아니라 9가지 신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저서로는 <아빠의 놀이혁명>, <아빠의 습관혁명>, <아빠학교>, <아빠가 달라졌어요>, <아빠 놀이학교>,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 등이 있다.
이메일 : bnz999@hanmail.net      
블로그 : http://cafe.naver.com/sw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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