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길동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원장이 바뀌었다.
작년 9월말, 갑작스럽게 이전 원장으로부터의 편지(전체메일)를 받았다. 요는 이러저러한 슬프고, 어렵고(?) 힘든 사유로 다른 분께 원장을 맡긴다는 것.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닥쳐온 변화에 우리 동네 엄마들은 술렁였다. 어린이집 운영에 대해 가졌던 작고 큰 걱정은 한 때 더욱 커지고, 우리 아이에게 직접적인 영향이라도 미칠까 경계의 눈빛은 더욱 예리해졌다.
엄마들의 걱정은 대체 이러 하였다.
첫째, 뉴스에서 상당한 권리금을 받고 어린이집이 사고 팔린다는 공공연한 사실이 우리 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이 원장도 역시 돈벌레었어!!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먹튀”라는 말까지 나왔다. 원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자랑해오던 원장이기에 (비록 뒤에서 뒷담화에 심취해있던 엄마들조차) 그 충격은 좀 컸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상당한 권리금을 치렀을 새로운 원장은 본전 생각(?)에 어린이집 운영을 팍팍하게 할 것 아닌가? 이전의 어린이집은 이 동네에서는 욕심 많고 싹싹하기 그지없는 원장 탓에 나름 걱정 덜 끼치고 학교 전까지 보낼 수 있다는 소문이 났던 터라 엄마들은 더욱 안테나를 세우게 되었다.
셋째, 어린이집 사고나 아동학대 문제로 사회적인 여론이 뒤숭숭한 요즈음 원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 선생들도 불안해질텐데 우리 아이들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려나..?
이런 불안을 감지했던 것인지 새로 온 원장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학부모 면담을 진행했는데, 직접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해보면서 어느 정도 오해가 풀렸고, ‘아 예전 원장과 비교할 게 아니라, 일단 믿고 맡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면담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적었다. 맞벌이 부모를 가진 원아의 비율이 60%가 넘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뒤에서 실컷 욕을 하기 바쁜 엄마들 중에 면담을 직접 했다는 경우는 적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르고 문제가 터졌다. 달갑지 않은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
"현장학습에 원에서 준비해 간 아이들 점심이 은박지에 둘둘 말린 어른들이나 먹는 김밥이었다, 아이들이 탄 차량은 큰 전세버스 였는데 두 자리에 세 명씩 껴 앉았다, 새로 온 원장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현장학습 비용을 남겨먹으려고 한 짓이다”라는 여론이 급 형성되었다.
이전 원장보다 쌀쌀맞은 부원장에 대한 불신.. 이건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앉아서 사건 소식만 듣기에는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마침 옆 아파트 길동이 친구녀석 엄마가 같이 가보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바로 그 날 찾아갔다.
원장님 방에 앉아서 솔직하게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현안에 대해 묻고 생각을 여쭸다.
김밥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현장학습으로 선정했던 장소의 음식이 문제가 많았다는 다른 어린이집 원장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아이디어를 낸 것이 간편한 김밥이었단다. 식중독에 대한 우려는 겨울이기에 괜찮겠지 했던 자신의 탓이라며 쿨하게 실수도 인정하셨다. 김밥의 내용물도 은박지에 둘둘 말린 천원짜리 크디큰 김밥은 아니었고, 도시락 케이스도 직접 준비해서 아이들 먹기에 좋게 노력하셨던 점도 있었다.
사건의 양면을 들여다보니, 소문에 의해 크게 부풀려진 사실도 있었고, 게다가 운영상의 실수도 쿨하게 인정하시니 대화는 쉽게 풀렸다. 다른 운영상의 문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니 마냥 나쁘게 볼만은 아니었던 점들이 많았다. 원장과의 두 번의 면담에서 일단은 믿고 맡겨볼 수 있겠다는 똑 같은 결론을 내리고 돌아왔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전에 원장과는 불만이 있었어도 이렇게 찾아와 면담을 하면서 내 생각을 상의했던 적이 없었다. 변화에 대한 불안이 작용한 면도 없지 않지만, 학부모들의 강짜가 새로 바뀌었기 때문에 텃새처럼 더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불만들에는 살이 붙게 마련이다. 나도 그러하니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부원장과 가슴을 턱턱 치는 원장을 보면서 좀 미안해졌다. 오늘의 대화에서 진심을 전달받았으니 이분들이 대단한 사기꾼들이 아닌 이상, 다른 엄마들의 이러쿵 저러쿵 하는 소문들은 들어두었다가 원에 직접 묻고 사안의 중요성을 따져 해결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 동안은 블랙컨슈머였던 게 아닐까?
다른 엄마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가서 직접 대화하고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해보라고.. 우리의 면담내용을 다른 엄마들에게 전달했더니, 여전히 그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불신이 증폭되고 있었다. 나는 일단 지켜보고 싶다. 사람의 진심은 쉽게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대화 속에서 느꼈던 믿음을 당분간 지속시켜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