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공유지 놀이터, 작고 소박하고 낮게

편해문 2016. 0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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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뒤집어보기.JPG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유서 깊은 곳이다. 인천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새 학년이 되면 필요한 참고서를 사려고 누구나 여러 번 들렀을 곳이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 위쪽에는 오래전부터 개발한다고 했다가 아직 그대로인 땅이 있다. 마을 주민과 지역미술연구모임인 ‘스페이스 빔’은 이 땅에 텃밭을 가꾸고 정자도 만들면서 ‘배다리 공유지’를 생태적으로 가꾸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 노력 끝에 지난 6월에는 이 공유지에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른바 ‘공유지 놀이터 운동’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크기변환_오름틀 놀기3.JPG » 인천 배다리 공유지에 지역 주민들과 아이들이 함께 만든 놀이기구 오름틀의 모습이다. 오름틀은 규모가 너무 커서 민원이 제기됐고, 놀이기구를 만든 지역 주민들은 이 놀이기구를 다시 철거했다. 편해문 제공
 
마을 주민과 스페이스 빔은 지난 7월 배다리 공유지에서 ‘적정 놀이터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당연히 이 자리에는 아이들도 참여했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아이들은 사포로 합판을 다듬고 톱으로 나무를 잘랐다. 어른들은 구조물을 세우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었다. 그렇게 2m 높이의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기구 하나를 어른과 아이, 작가 등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 공유지는 어느새 놀이터로 변신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놀이기구를 너무 좋아했다. 
 
크기변환_배다리.jpg » 인천 배다리 공유지에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 지역미술연구모임 스페이스 빔이 함께 만든 놀이집. 편해문 제공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구청으로부터 지역 주민의 민원이 제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놀이기구가 너무 커서 공유지 근처에 사는 주민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민원이었다.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와 놀이기구 제작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모두 모여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지역 주민에게 방해가 되는 놀이기구는 철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이들과 함께 땀 흘려 만든 것이라 마음이 아팠지만 나도 지역 주민이 공감할 수 없는 놀이터는 안 된다는 생각에 철거 의견에 동의했다. 대신에 좀 더 소박하고 작은 놀이집을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규모가 큰 놀이기구에 반대를 했던 주민과 공무원들도 소박한 놀이터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기존 놀이기구가 있던 자리에 다시 조그만 놀이집을 설치했고, 지금은 공중에 뜬 놀이길을 만드는 중이다.  
 
크기변환_배다리2.JPG » 인천 배다리 공유지에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 지역미술연구모임 스페이스 빔이 함께 만든 놀이기구. 편해문 제공
이 일을 겪으면서 공유지 놀이터 운동은 작고 소박한 기술과 에너지로 낮게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충분한 공감대 형성, 자치단체와 소통이 절실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배다리 공유지 놀이터 만들기는 멈추지 않았다. 배다리는 그렇게 배를 타고 느릿느릿 다리를 건너고 있다. 다시 놀이터 만들기에 나서는 배다리에 갈채를 보낸다. 우리는 얻은 것이 더 많다. 놀이터를 아이들과 만들 수 있다는 꿈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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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해문
놀이터 비평가, 아동문학가, 사진가. 옛 아이들 노래와 놀이를 모으고 나누는 일로 젊은 날을 보냈다. 그 아름답고 설레는 기억을 하나씩 꺼내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오고,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놀 시간과 놀 공간을 주기 위한 놀이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놀이터 비평도 나섰다. 저서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우리 이렇게 놀아요>,<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등이 있다. 현재는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조성 총괄 MP를 맡고 있다.
이메일 : hm1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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