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한글떼기, 문자보다는 이해력이 중요하다

김영훈 2016. 07. 04
조회수 9711 추천수 0
문자보다는 배경지식이 중요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수많은 정보의 핵심을 파악하고, 거기에 다른 생각을 덧붙여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책 읽은 습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아이의 경쟁력은 배경지식에서 결정된다. 초등학교 4학년 슬럼프라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슬럼프란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아이들이 3학년까지는 제 학년에 맞는 독해력을 보이다가 4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남보다 뒤쳐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뒤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3학년까지는 글자를 해독하고 이해가 중요하다면, 4학년에는 누구나 글자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이해력이 중요시된다. 

그런데 배경지식이 이해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풍부한 아이가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어휘력도 있고 배경지식도 풍부할수록 새로운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고 학습할 수 있으므로 취학전에 그림책을 통하여 배경지식을 쌓지 않으면 격차가 벌어지고 스럼프에 빠지는 것이다.

배경지식 활용하는 워킹메모리

쌓아 둔 배경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워킹메모리이다. 말하자면 장기기억에 저장된 사실적 지식을 바탕으로 의미덩어리를 묶을 수 있고 의미덩어리를 묶으면 워킹메모리 공간이 넓어진다. 의미덩어리를 묶는 능력이 많아지면 독해력이 증가한다.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Steve Pinker)에 의하면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은 뇌의 신경회로가 연결된 상태다. 반면에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옵션 액세서리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뇌 안에 독서에 필요한 추가 신경회로를 끼워넣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많은 청각적, 시각적 지각, 많은 단어, 많은 개념에 대해 학습을 해야 한다. 그것이 독서의 주요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미가공 원재료다.이 미가공 원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환경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연구에 의하면 유치원에 들어가는 연령이 될 때까지 언어적으로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풍부한 자극을 받고 자란 아이 사이에는 이미 3,200만개 어휘의 격차가 벌어진다고 한다. 부모가 그림책 읽어주는 양이 몇 년 후 그 아이가 성취할 독서수준을 예언해 주는 좋은 지표이다.


아이 때 받아들인 지식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고, 여기에 잠재된 지식은 나중에 독자적인 사고력의 원동력이 된다. 언어는 아이의 사고 과정을 지배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 따라서 풍부한 언어를 가졌을 때 다양한 사고가 가능하며 아이의 상상력도 발전한다.

 
한글떼기 어떻게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도 가기 전에 적어도 한글은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기가 쉽다. “저 집 아이는 그림책을 줄줄 읽던데 너는 어찌된 게 글씨에 통 관심이 없니?” 한글을 빨리 떼야 책을 더 많이 읽을 것이고, 공부를 잘 할 것이라는 것이 부모의 기대이다. 
05154474_P_0.JPG » 한겨레 자료 사진.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단순한 훈련을 통해 글 읽기를 배우는 것은 5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에게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정 자극을 주고 그 자극에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낮은 수준의 두뇌 발달로도 충분한 일이다. 예를 들어 그림과 글씨가 앞뒤로 적힌 프레시카드를 가지고 아이가 맞는 글씨를 말하도록 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읽기라고 할 수 없다. 글자를 보았을 때 자동으로 인식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면 이와 관련된 신경회로는 문자와 단어에 수백 번 노출된 다음에야 만들어진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들려주기 시작한 엄마의 이야기는 아기의 뇌 속에 그대로 저장이 된다. 이렇게 저장된 단어나 표현 등은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 학교에 들어가서 읽고 쓰기를 배울 때쯤 아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나타난다. 글을 읽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사고력이 발달해야 한다. 우선 글자가 어떤 소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소리와 의미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글 읽기에는 적극적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때 의미 찾기는 상당한 정도의 두뇌 성숙을 필요로 한다. 아이가 그림책을 읽을 때 이루어지는 두뇌활동을 보면 먼저 시각정보가 두뇌로 들어온다. 그것이 머리 뒤에 위치한 후두엽까지 전달이 된다. 후두엽에서 자료에 대한 시각적 분석을 하고 그 다음 측두엽에서는 언어적 분석을 하게 된다. 이후에 변연계는 중요성을 파악하고 전두엽은 맥락을 파악하여 읽기가 가능한 것이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문자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간판을 보고 받침을 떼고 읽거나 “저 글자 뭐예요?”하고 물어본다. 보통 만 4세 쯤에는 한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짧은 시간 안에 재미있게 한글을 배울 수 있다. 한글을 배우면 아이는 스스로 그림책이 있는 글자들을 짚으며 읽어보려고 하기도 한다. 글자를 알거나 모르거나 아이 혼자 책을 보는 시기가 있다. 엄마가 읽어준 내용을 아예 그대로 외워서 인형들에게 읽어주기도 하는데, 목이 잠길 때 헛기침 하는 부분까지 똑같이 따라 한다. 

그럴 때 한글을 가르쳐 주어라. 한글에는 혼란스러운 음소가 없으며, 자음과 모음이 규칙적으로 대응되기 때문에 훨씬 빨리 글을 읽을 수 있다. 아이는 제 이름부터 시작해서 가족 이름, 친구 이름 등을 차례로 익혀나간다.
 
조기 한글떼기의 폐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글을 못 읽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높은 지능의 아이 가운데 많은 수가 글을 일찍 읽어내지 못하기도 한다. 글 읽기는 아이들이 가진 지능의 일부분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읽기 영역에 특별한 재능을 가져 일찍부터 스스로 글씨를 깨우치는 아이도 있지만, 이 아이들이 반드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늦게 글을 읽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이후에는 훨씬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인다. 행동신경학자 노먼 게슈윈드는 4~7세 사이에는 읽기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각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실제로 영국의 연구에 의하면 5세부터 읽기 교육을 시킨 아이들과 7세에 시작한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비교한 결과, 5세에 시작한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훨씬 낮았다. 이 연구를 통해 4세나 5세 이전에 무리한 읽기교육을 시키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고있다. 

문자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나 서둘러 한글을 가르친 아이들이라면 3~4세 아이들도 혼자 그림책을 읽는다. 그런데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 비해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짧다. 그림보다 문자를 먼저 읽어버리기 때문에 그림을 천천히 감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때 이미지를 보고 이야기를 연상하고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은 들어서 알기 때문에 읽어주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들리는 말과 보는 그림 사이를 연결시키느라 듣기와 보기를 모드 집중해서 하게 된다. 글자로 읽은 책과 할머니나 엄마가가 베개머리에서 들려준 옛날이야기가 글자로 읽은 책의 내용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배경지식을 높이기 위한 양육지침>

첫째, 큰 소리로 읽게하자.
그림책이나 전래동화 등은 본래부터 읽고 들려주기 위한 문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음독에 적합하다. 아이들에게 익숙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문장이라면 음독을 즐겁게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 학생들은 책을 읽어도 머릿속으로 읽지 않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읽는다. 시각, 청각, 움직임을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두뇌가 활발하게 작용하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still-life-1037378_960_720.jpg » https://pixabay.com
둘째, 종이책이 더 좋다.
아이들의 뇌는 특정 문자 정보를 찾으려 할 때 원하는 텍스트가 어디에 나왔는지 위치를 추적하는 경향이 있다. 종이책은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가 있고 총 8개의 모서리가 있다. 페이지를 펼치면서 여기가 시작부분인지 끝부분인지 당장 알 수 있고 종잇장을 손으로 만지며 두께와 질감과 때로는 냄새까지도 느낄 수 있으므로 훨씬 효과적인 위치감을 제공한다. 종이책으로 읽은 것은 장기 기억화하기 유리하다. 글을 읽은 후 시일이 꽤 지난 다음 기억 정도를 측정해보면 전자책으로 읽은 것은 의도적으로 떠올려야 하지만 종이책으로 읽은 것은 그냥 안다.

셋째, 만화책도 잘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만화책을 읽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만화책으로 교과와 연계된 내용을 읽는다면 교훈과 재미를 얻는 것은 물론 학습에 대한 이해도까지 높일 수 있다. 만화책을 통해 익힌 지식이나 정보를 학교 교과를 통해 배우면 아이는 자신감이 붙는다. 학습만화를 읽을 때는 아이의 전반적인 이해력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학습만화조차도 직접적인 성적 향상을 목표로 하면 아이는 공부로 여겨 흥미를 잃고 힘들어할 수 있다.

넷째, 인문학은 그림책의 스토리를 통해 전수된다
아이들은 한글을 떼기 전에 이미 인문학을 접한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은 엄마를 통해 아이에게 전수된다. 스토리는 개인의 가족적 관심사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림책은 아이를 더 큰 세계를 연결시켜주고 수 세기를 걸쳐 축적된 인문학의 지혜를 알려준다. 지저분하고 겁나고 고통스러운 것에 결코 위축되지 않는 그림책의 스토리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이다. 그림책의 스토리는 인지기능의 결과물일 뿐 아니라 인간의 정서를 공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림책을 통하여 역할놀이를 하라.
그림책 읽기의 즐거움은,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면서도 책 속에 빠져들어 그대로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전함에서 온다. 그림책을 읽을 때, 아이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동시에 자아의 중심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역할놀이다. 그림책의 주인공과 완전한 동일시를 이루게 되면 아이는 주인공의 고통과 슬픔을 공감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림책이 있기 때문에 다른 때 같으면 의사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도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소통할 수 있다.

여섯째, 독서토론을 하자.
토론만큼 효과적인 기억법은 없다.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는 것을 훨씬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여야 하므로, 배울 때의 자세보다 가르칠 때의 자세가 더욱 능동적이다. 또한 토론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으므로 그것에 대해 대답하고 다시 질문하면서 아이의 지식체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그래서 토론은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데 최고의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은 반드시 상상력과 결합할 때만 제대로 자랄 수 있다. 그림책을 통한 상상력은 다른 관점에서 현실을 더 잘 보게 만든다. 상상력은 다름과 새로움을 전제로 하는 창의성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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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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