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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행사가 아주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에선 역시 운동회가 제일 큰 행사지요.

1학기에 치루어지는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에 학교도 학부모회도 준비가 제법

많습니다.

지난해엔 장터도 열고, 벼룩시장도 함께 하는 바람에 보통 바쁜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불필요한 행사는 다 빼고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한 운동회로만

진행하자고 의견을 모았기에 준비가 수월했지요.

오전엔 주로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놀이마당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에

학부모 도우미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저학년들은 도우미들이 모둠을 인솔해서 데리고 다녀야 하구요, 병설유치원

부모들은 직접 체험 코너를 맡아 자원봉사를 해야 합니다.

운동회 전에 역할을 나누고 도우미 해주실 부모님을 정하는 일은 반대표가 맡지요.

학부모회에서는 전체 진행상황을 체크하며 교사들과 학부모 사이를 부지런히

연결합니다.

 

운동회 하는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운동장엔 하얀 선들이 그어지고 그늘 마다 천막이 세워집니다.

올해는 단체복까지 멋지게 맞춰입은 '아버지회' 회원들이 일찍 나와 척척

도와 주셨습니다.

50여명의 회원들이 속해있는 '아버지회'는 우리 학교만의 자랑이지요. 

 

어린시절 운동회는 학년별로 큰 공연을 준비해서 며칠씩 땡볕아래 연습을

해야 했지요. 우리 학년 순서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먼지이는 운동장 구석에서

기다렸구요,

아이들 학교 운동회는 그런 기다림이 별로 없습니다.

모두가 같이 놀이마당에 참여하니까요.

물총도 쏘도, 퀴즈도 맞추고, 공도 던지면서 아이들은 신나게 운동장을 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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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놀이 코너를 보니 둘째 윤정이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열심히 달리네요.

달리다가 상대 편 친구를 만나면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기는 사람이 계속 달려서

골인을 하는 경기입니다.

엄마가 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열중해 있는 딸의 모습이 흐믓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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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 막내는 병설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떡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쫄깃쫄깃한 쑥떡을 납작하게 펴서 그 위에 예쁜 떡살을 찍는 겁니다.

다 만든 떡은 엄마 입에도 넣어주고 저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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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이 돌려주는 줄을 폴짝폴짝 뛰어 넘는 학생들은 줄이 걸릴때마다

아쉬운 탄성을 지릅니다.

모처럼 아이들과 어울리는 아빠들 얼굴도 환하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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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전체 달리기 입니다.

유치원 6세부터 시작해서 6학년 언니, 오빠들까지 전교생이 참여하는 달리기 입니다.

가장 많은 학부모들이 카메라를 들고 골인점에서 열광하는 경기이기도 하지만

늘 제일 많은 드라마가 나오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달리다 신발이 벗겨진 아이, 잘 달리다 넘어져서 아쉬운 탄성을 받는 아이,

옆 친구 신경쓰다가 1등을 놓치는 아이나, 중간에 포기하고 넉살좋게 걷는 아이들까지

아이들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골인점으로 들어옵니다.

매년 보는 풍경이지만 달리기 시간에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몸이 불편한

도움반 친구 손을 잡고 함께 달려주는 선생님과 아이의 모습입니다.

같은 조의 모든 아이들이 약속을 하고 도움반 친구와 똑같이 골인하는 모습도

뭉클합니다.

이기려고 경쟁하는 달리기가 아니라 모두가 즐겁게 같이 뛰는 달리기 입니다.

학부모 회장인 나는 학부모 달리기에 2년째 참가해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작년보다 몸이 가벼운걸 보니 아침마다 아이들과 걸어서 등교한 것이 제법

운동이 되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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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프로그램 마친 아이들은 급식을 하러 교실로 들어간 사이 운동장에서는

오늘 운동회의 절정이 펼쳐집니다.

모든 학부모들이 비빔밥으로 하나가 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운동회 준비를 위한 반대표 회의에서 이번 운동회부터 참가한 학부모 모두가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는 것을 둔대만의 전통으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반 마다 텃밭이 있고, 학부모 중에도 주말 농장이나 텃밭 농사를 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학교의 장점과 특성을 잘 살려서 모두가 어우러지는 운동회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 입니다.

 

반대표들은 반마다 연락망을 돌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나누고

함지박이며 참기름이며 고추장같은 것들을 가져올 사람을 정했습니다.

바쁘고 여유가 없는 직장맘들은 주로 간단한 도구나 재료들로 정해주고

솜씨가 좋은 엄마들은 나물을 만들어 가져왔습니다.

어린 아기가 있는 엄마들은 그냥 와도 됩니다. 어짜피 다 모이면 풍성한

비빔밥이 되기 때문에 몇 명 쯤 그냥 와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학년별로, 반 마다 천막아래 모여 준비해 온 밥과 재료들을 넓은 그릇안에

쏟아넣습니다. 시댁과 친정에서 보내온 귀한 참기름과 찹쌀 고추장이 더해집니다.

갖가지 야채와 갖가지 밥들이 고소한 참기름 냄새속에 어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해도 군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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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싸온 통에 비빔밥이 나누어 지고, 애쓴 아빠들과, 손주들 운동회 보러

오신 어르신들까지 넉넉히 담아 드립니다.

그늘에 펴진 천막아래 앉아 모두가 맛있게 먹습니다. 수없이 많은 비빔밥을 만들고

또 먹어왔지만 이렇게 맛있는 비빔밥은 처음이라고 모두들 손을 치켜 세웁니다.

다양한 재료, 다양한 솜씨, 다양한 사연들이 한데 버무려진 특별한 맛이었습니다.

과일도 펼쳐지고, 매실청이며 오미자 쥬스같은 달고 시원한 마실것들도 넉넉합니다.

아이들 얘기, 반 이야기, 사는 이야기들이 비빔밥처럼 풍성하게 나눠집니다.

작년까지는 각자, 혹은 반 별로 따로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먹었는데 이렇게

한 반이 다 모여 같이 비벼 먹으니 정도, 관심도 새록 새록 커집니다.

앞으로 운동회날 비빔밥은 우리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잡아 가자고 모두가

입을 모았습니다. 잊지못할 운동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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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을 끝낸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아버지회에서 준비한

호박엿이 간식으로 나왔습니다.

서툰 엿치기 솜씨로 호박엿을 쳐내느라 젊은 아버지회 회원은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어느해에는 솜사탕을 준비하고, 또 어떤 해에는 뻥튀기도 튀겨낸 아버지회입니다.

더운 날씨에 비빔밥을 마련한 엄마들을 위해 내년에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도

준비한다고 약속합니다.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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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끼리 줄다리기도 하고, 청군, 백군 자존심 걸려있는 릴레이 경기도 하고

6학년들이 오랫동안 연습한 난타 공연도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돈을 주고 외부 공연 업체를 부른 적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이

훨씬 근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만의 운동회를 하자고 마음을 다지게 됩니다.

 

3,4학년들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노래에 맞추어 플레시 몹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엔 학부모들도 같이 어울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오후 2시에 운동회는 끝났습니다.

다같이 도와 운동장을 정리했습니다.

아이들은 신나는 얼굴로 하룻동안의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1등도 꼴등도 없는 운동회, 모두가 다 즐거운 운동회, 아이도 부모도 행복하게

즐기는 운동회, 다같이 돕는 운동회가 잘 끝났습니다.

공굴리기나 박 터뜨리기 처럼 어린날의 그리운 경기들이 더 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소박하고 건강한 운동회였습니다.

아이들끼리, 부모들끼리 더 가까와진 시간이었구요.

 

운동회는 학교를 이루는 공동체원들 모두가 하나되는 행사입니다.

보여주는 행사가 아니라 함께 하는 행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돕고, 의견을 모으고, 마음도 모읍니다.

올 해 부족했던 것들은 내년에 좀 더 잘해보자고 격려하고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바쁘긴 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운동회를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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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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