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그리스 와인·음식 탐방
동서양 식문화가 융합된 그리스, 길거리음식 수블라키부터 고급 타르타르까지 다양

올리브와 포도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태양이 뜨거울수록, 땅이 척박할수록 잘 자란다. 온 나라가 와인산지일 정도로 재배지가 넓은 그리스의 다른 이름은 ‘올리브의 나라’다. 올리브유를 뺀 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맛을 낼 때도, 닭을 튀길 때도 ‘올리브유’를 쓴다. 튀김용 올리브유가 따로 있을 정도다. 조리법이 매우 간단한 ‘스트라파차다’(strapatsada. 얇게 간 토마토를 넣어 만드는 오믈렛)나 돼지고기요리인 ‘치치리스타’(tsitsirista)도 올리브유가 필수다. 심지어 그리스식 마늘소스에는 마늘보다 올리브유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리스인들은 올리브만큼이나 레몬도 사랑한다. 뜨거운 나라에서 음식물 부패를 막기 위해 찾은 지혜다.

수블라키. 사진 박미향 기자
수블라키. 사진 박미향 기자

한국에서는 그리스의 길거리음식인 ‘수블라키’(그리스 꼬치요리), ‘기로스’(그리스식 샌드위치)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그리스 음식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중해와 에게해에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는 농업국가다. 그만큼 음식이 다채롭다.

돌마다키아. 사진 박미향 기자
돌마다키아. 사진 박미향 기자

“이거 쌈밥이네!” 나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낮, 그리스 네메아의 와이너리 세멜리에서 외쳤다. 근사한 그리스 전통식 뷔페에 한껏 취한 뒤였다. 유독 눈에 들어온 ‘돌마다키아’는 우리네 쌈밥이었다. 다진 호박, 호박꽃, 가지, 감자, 각종 허브(딜, 민트, 파슬리 등) 등을 쌀과 함께 포도 잎에 싸서 쪘다. 쌀이 주인공이다. 포도 잎이 300g이면 쌀은 800g이 필요하다고 한다. 찬란한 지중해, 태양의 나라에서 우리 쌈밥을 만나다니! 이를 꽉 박자 포도 잎은 찢어지고 포도처럼 잘 익은 쌀 알갱이들이 채소와 함께 쏟아졌다. 그리스식 쌈밥과의 만남은 거대한 만찬의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스 올리브유는 만능선수
포도잎에 싼 돌마다키아 쌈밥 빼닮아
셰프들 육류·해산물 재료 손질 탁월
타르타르에선 동양적 풍미 물씬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북쪽, 한 농가 맛집에서 만난 ‘스탐나가티’는 우리네 나물요리였다. 푹 삶은 채소에 올리브유와 레몬을 뿌려 무쳤는데, 참기름, 소금이나 간장 등으로 무치는 우리네 나물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30년 넘게 그리스에 거주하는 교민 임의용씨는 “크레타섬 나물을 최고로 친다”고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유래도 떠돈다. 가난한 크레타섬의 할머니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나물을 뜯어 팔았다는 것이다.

호리아티키. 사진 박미향 기자
호리아티키. 사진 박미향 기자
구운 치즈. 사진 박미향 기자
구운 치즈. 사진 박미향 기자

이 식당의 구운 치즈나 납작한 빵 속에 치즈나 나물을 넣어 만든 파이들은 하나같이 소박하고 건강한 맛이었다. 수더분한 그리스인들의 성정을 그대로 닮았다. 고기류와 같이 나오는 감자는 그야말로 찰지다. 굳이 전세계에서 경쟁 상대를 찾자면 수천가지가 넘을 정도로 가짓수가 많은 페루의 감자 정도다. 오이, 호박, 올리브 등의 식재료도 최고다. 신은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로 신화와 함께 신선한 재료를 그리스에 선물했다. 그리스 전통 샐러드인 ‘호리아티키’는 페타치즈가 마치 커다란 두부처럼 각종 채소 위에 턱하니 올라가 있다. 디저트로 제공된 그릭 요거트는 결코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한 발효의 맛이었다. 강한 맛에 길들여진 한국인은 다소 싱겁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각종 와인들이 담담한 수묵화 같은 음식에 곁들여졌다.

스탐낭가티와 채소들. 사진 박미향 기자
스탐낭가티와 채소들. 사진 박미향 기자

콜리아스의 샐러드뷔페. 사진 박미향 기자
콜리아스의 샐러드뷔페. 사진 박미향 기자

그리스인들은 가축을 기르지만 해안에서 거주해 육류뿐 아니라 해산물 식재료도 잘 다룬다. 아테네의 해산물 전문 식당 ‘콜리아스’의 요리사 디미트리스 안드리코스가 그 재주를 확실히 보여줬다. 아테네의 관광객은 모르는 숨겨진 맛집인 이 식당은 28년 역사를 가졌다. 고대 문명을 활짝 꽃피웠던 그리스에서 맛집치고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안드리코스는 주방에서 직접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그는 접시에 소금을 평평하게 깔았다. 소금에는 달걀흰자가 들어간다. 이 소금 위에 냉큼 올라가는 것은 1㎏ 정도의 생선이었다. 그 위에 다시 소금을 부어 마치 석고를 뜨듯이 만들고는 바로 오븐에 넣었다. 그는 “20분 정도 익힌다”고 말했다. 완성된 생선요리는 별난 모양이었다. 노릇하게 그을린 소금 안에 갇혀 있는 생선을 꺼내는 방법도 재밌었다. 술을 부어 ‘불쇼’를 먼저 펼치고 딱딱한 소금덩어리를 망치로 깨서 꺼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선살은 그야말로 에게해를 그대로 모시고 온 듯했다. 바다가 심장에 들어왔다. 이 식당은 불의 나라다. 불을 다루는 기술이 수준급이었다. 숯불에 구운 장어는 식도락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네 풍천장어처럼 그리스도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잡은 장어가 맛있다는 것이다. 10가지가 넘는 샐러드 바에는 올리브유에 버무린 미역, 홍합, 가지, 바다상추 등이 주인을 기다렸다.

로마, 터키 등의 지배와 수백년 걸친 비잔틴 시대 등의 영향으로 그리스는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하나로 합쳐진 보기 드문 나라다. 당연히 다른 유럽처럼 고급 다이닝(정찬) 레스토랑도 많다.

파바. 사진 박미향 기자
파바. 사진 박미향 기자

‘셀레네’의 새우요리. 사진 박미향 기자
‘셀레네’의 새우요리. 사진 박미향 기자

산토리니의 레스토랑 ‘셀레네’는 ‘토마토, 칠리, 생강을 곁들인 생선 타르타르’, ‘숯에 구운 문어’, ‘빈산토(그리스 스위트 와인)에 찐 돼지고기’ 등이 주메뉴로 이탈리아 나폴리 등의 고급 식당과 견줘 손색이 없었다. ‘아로마 아블리스’는 산토리니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하는 곳이다. 산토리니산 염소치즈는 풍미가 그윽하다. 호박도 신선하다. 그리스의 전통 콩요리인 ‘파바’는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었다. 레스토랑 ‘쿠쿠마블로스’도 산토리니 식재료를 활용해 고급 서양식을 차렸다.

동양식을 가미한 ’알레리아’의 음식. 사진 박미향 기자
동양식을 가미한 ’알레리아’의 음식. 사진 박미향 기자

수도 아테네로 오면 현대적인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파르테논신전 인근의 ‘디오니소스’에선 무사카 등이 와인 소스에 익힌 닭고기요리가 메인으로 나오기 전에 애피타이저로 등장했다. 레스토랑 ‘알레리아’는 그리스 전통식을 스시 모양에 담아 내는 등의 창의적인 솜씨도 발휘하는 식당이었다. 주인은 “그리스 전통을 바탕에 둔 현대식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교민 임의용씨가 추천하는 수블라키전문점은 한국 관광객이 주로 가는 ‘타나시스’가 아니었다. 그는 아테네의 모나스티라키광장에 있는 ‘바이락타리스’를 추천했다.

파르테논신전에 밤이 찾아들고 전등불이 켜지면 거리 곳곳의 레스토랑에선 저마다 소박하면서 푸근한 그리스 음식들이 가미된 2016년판 그리스신화의 한 페이지가 시작됐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리스 맛집 주소 및 연락처

아로마 아블리스(Aroma Avlis) Eparchiaki Odos Mesarias-Archeas Thiras/Artemis Karamolegos Winery, Exo Gonia, Fira 84700, Greece/+30 2286 033395

셀레네(Selene) Santorini, Pyrgos Pirgos Kallistis 847 00, Greece/+30 2286 02224

콜리아스(Kollias) Sygrou Avenua 303 & Dimosthenous, Athens, Greece/ +30 2109 408620

알레리아(Aleria) Megalou Alexandrou 57/ Metaxourgeio, Athens 10435, Greece/ +30 21 0522 2633

바이락타리스(Bairaktaris) Pl. Monastirakiou 5, Athina 105 55, Greece/+30 21 0321 3036

그리스 음식 조리법

그리스 음식은 한식과 닮은 구석이 많다. 서민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조리법이 간단하고 건강식이다. 양념을 뚝딱, 조금만 넣으면 맛이 달라진다. 레몬주스, 올리브기름, 소금 등이 양념이다. 그리스인들이 전하는 건강한 그리스 음식 조리법을 준비했다.

그릭샐러드

재료 토마토 1개, 오이 1개, 페타치즈 한 조각, 양파 1/2개, 올리브 적당량, 올리브기름 2~3티스푼, 소금 약간, 오레가노(향신료의 한 종류) 약간

만들기 1 채소를 씻는다. 2 접시에 페타치즈와 올리브를 담고 소금과 올리브기름을 뿌린다. 3 오레가노 등을 뿌린다.

그리스식 마늘소스

재료 마늘 6쪽, 빵가루 한 컵, 소금 약간, 레몬 한 개 짠 것, 식초 2티스푼, 올리브기름 1컵

만들기 1 마늘을 빻는다. 2 소금과 빵가루를 섞은 다음 물 적당량을 뿌린다. 3 2에 올리브기름, 레몬주스, 식초를 섞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힘차게 젓는다.

그리스식 시금치밥

재료 시금치 1㎏, 생쌀 1컵, 양파 1개, 딜(향신료의 일종)과 소금, 후추 조금, 올리브기름 1컵, 레몬 조금

만들기 1 시금치, 양파, 딜을 잘 씻는다. 2 팬에 올리브기름을 뿌리고 자른 양파를 볶는다. 3 2에 시금치와 딜을 넣는다. 4 쌀을 물에 넣어 끓인다. 5 익으면 다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6 레몬을 뿌린다.

와인향이 밴 닭구이

재료 닭 한 마리, 양파 1개, 마늘 2쪽, 잘게 자른 토마토 적당량, 레드와인 한 잔, 소금과 후추 조금, 올리브기름 1컵

만들기 1 닭을 씻고 자른다. 2 양파를 자르고 마늘과 함께 볶는다. 3 몇 분 뒤 토마토와 소금, 후추를 뿌린 와인을 2에 붓는다. 4 물 2컵을 추가한다. 5 1시간 동안 끓인다. 6 감자튀김이나 밥을 곁들인다.

아티초크 요거트무침

재료 아티초크 2㎏, 신선한 요거트 1㎏, 양파 1개, 올리브기름 1컵, 레몬 1개, 밀가루 1티스푼, 소금과 후추 조금

만들기 1 물이 든 볼에 레몬 짠 것과 밀가루를 넣는다. 2 오일 두른 팬에 양파를 볶는다. 3 조심스럽게 잘 씻은 아티초크를 넣는다. 4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5 30분 후에 요거트를 넣는다.

프리카세

재료 소고기나 양고기 1㎏, 양파 2개, 파 6~7줄기, 마늘 3~4쪽, 상추 5~6장, 올리브기름 1/3컵, 레몬 2~3개, 딜 조금, 달걀 2개, 소금과 후추 조금, 물 한두컵

만들기 1 냄비에 올리브기름을 뿌리고 다진 양파와 마늘을 넣고 볶다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고기를 넣고 보기 좋게 굽는다. 2 물을 조금 넣고 반시간 정도 중간불에 끓인다. 3 냄비에 잘라 놓은 상추와 딜, 파를 넣고 30분 정도 더 끓인다. 4 물이 아주 조금 남으면 달걀과 레몬즙을 잘 섞은 다음 넣는다. 주걱으로 저으면서 조금 더 끓인다.

글 박미향 기자, 참고도서 <올리브오일, 웨이 오브 롱 라이프>(Olive Oil: Way of Long Life)

(*위 내용은 2016년 4월20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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