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씩 들리게 되는 오소희 작가의 블로그에선
여전히 육아상담 혹은 삶의 고민들을 나누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어제 오랫만에 그곳에 들러 올라온 글들을 읽다가
내 마음을 크게 건드리는 한 마디를 발견했다.
'관계 영재'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 세계에
부모가 어느 선까지 도와주고 개입해야하는 가에 대한
글들 중에 나온 말이었다.
인간관계에도 영재가 있을까?
작년부터 줄곧 아이가 아슬아슬하게 갈등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다.
예상을 뒤엎고 올해도 2년째 같은 반이 되면서
그동안 물 밑에 있던 문제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드러나
골치아픈 일들을 겪고 있는 중이라
충분한 시간에 걸쳐 아이가 겪고 성장해 가야한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깐만이라도 우리 아이가
관계 영재였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바램을 갖게 된다.
블로그 글에 달린 댓글과 조언들은 더할나위 없이 적절했다.
나도 그 댓글들처럼
아이에게 적절하게 조언해주고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하도록 지켜봐주고
때론 아니 자주 모른척 하며
아이가 그때그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아이가 해도해도 안되는 부분이 있나보다..
다 지나고 나면,
그런 일도 있었지 -
아이도 나도 웃을 수 있겠지만
관계의 몸살을 심하게 겪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그 순간에 처해있는 마음과 상황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어제, 드디어 엄마들이 보는 자리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채 헤어져
아이를 재우고 상대편 엄마와 밤 문자메시지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갈등이 있는 아이를 둔 엄마들끼리의
밤 문자는 위험할 것 같아
오늘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가기 두 시간 전.
큰아이 키우면서 14년동안 겪은 게 있으니
그렇게 걱정되진 않는데
어쩐지 '우리 아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의 전부'라 믿는 엄마라는
스멜이 강하게 느껴진다.
내가 봐도 누가 봐도
현명하고 부지런하고 합리적이고 친절하고 매너좋고
온갖 학부모 모임의 리더 역할에 못하는 게 없는 그런 엄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가 모인다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두 아들을 보내고 있는 엄마에게
형들 이상으로 똑똑한 막내 아들의 빈틈을 찾아볼 수 있는
혜안이 부디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엄마로 산다는게 참 그렇다.
책에 실리는 글을 쓰거나 공개적인 온라인 글을 쓰는 것보다
단 한 엄마와 문자메시지로 외줄타듯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고
나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우니.
두 시간 후.
언어로 벌일 신경전을 생각하면 좀 피곤하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이런 일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요즘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작정 도망가지 않는 것' 이다.
문제에서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출구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 외출 준비를 하려 한다.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의 한 대사가 기억난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뭐가 이렇게 어려워??"
결코 '관계 영재'가 될 수 없는
나같은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삼순이가 대신 해 줘서 고마웠다.
부디, 오늘 삼순이같은 씩씩한 용기가 나에게도 찾아오길!
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본 엄마들의 뒷모습.
벗꽃은 저토록 아름다운데..
새학기의 긴장이 그녀들의 뒷모습에서도 잔뜩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