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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결혼·출산…왜 포기하냐고 물으신다면

베이비트리 2016. 04. 05
조회수 3530 추천수 0
연극 '섹스 인 더 시티'는 간호사들의 ‘임신순번제’와 유통기간이 긴 ‘정크푸드’ 등을 바탕으로 “나의 섹스와 국가는 서로 어떤 영향을 끼칠까”를 묻는다. 낭만유랑단 제공
연극 '섹스 인 더 시티'는 간호사들의 ‘임신순번제’와 유통기간이 긴 ‘정크푸드’ 등을 바탕으로 “나의 섹스와 국가는 서로 어떤 영향을 끼칠까”를 묻는다. 낭만유랑단 제공
임신순번제 다룬 연극 ‘섹스 인 더 시티’

실제 부부 ‘리얼토크’와 결합
개인의 성생활·출산 가로막는 
국가와 사회구조로 고민 넓혀 
‘혜화동1번지 봄축제’ 개막작으로 

“언니, 나 임신했어.” /“뭐? 야, 너 미쳤어?” /“박간(박 간호사)이 순서 바꿔줄까?” /“바꿔달랠 걸 바꿔달래라.” / “그럼 최간은?” /“걔는 벌써 7주래.” /“나 어쩌지?” /“어쩌긴, 중절하든지 사표 쓰든지!”

후배 간호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한다. 선배는 별 위로의 말 대신, 그런 게 현실이라는 듯 매몰차게 말을 자른다.

사회문제로 떠오른 ‘임신순번제’ 얘기다. 무슨 은행 대기 번호표도 아니고, 가임기에 있는 여성이 임신하려고 차례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순번제를 거부하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사표를 써야 한다. 2014년 보건의료노조의 조합원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7.4%가 임신순번제가 있다며 주로 부서장의 지시로 이뤄진다고 답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신여대입구역 부근 낭만유랑단의 연극 <섹스 인 더 시티> 연습실. 한 간호사가 “그녀는 각서를 썼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밤샘근무를 한다, 애한테 무슨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철저히 나 개인의 문제다, 병원의 책임이 아니다.” 임신한 뒤 각서를 쓰고라도 일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다.

세 살 아이를 둔 엄마인 송경화 연출이 이 대본을 쓴 이유도 다르지 않다. “임신순번제는 기사로 봤어요. 그리고 저도 둘째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도 낳고 싶고 시부모님도 강권하지만, 국가도 저출산고령화가 문제라며 낳으라고 하지만, 일을 하는 저로서는 낳기 힘들잖아요. 개인적인 성생활과 출산마저 침해받는 사회, 연애·결혼·출산 등을 포기한 세대 등을 담고 싶었어요.” 말하자면 ‘나의 섹스·피임과 국가는 서로 어떤 영향을 끼칠까’이다.

작품은 임신순번제를 매개로 개인의 성생활과 출산을 가로막는 국가와 사회구조로 영역을 확장한다. ‘유통기간이 긴 정크푸드’를 먹는 저임금의 현실을 동물의 사체를 먹는 ‘하이에나’로 은유하는가 하면, 진짜 부부가 등장해 성생활, 출산, 보육, 주거 문제 등을 얘기한다. 송 연출은 “결국 최저임금의 문제이고 임금이 올라야 모두 아이를 마음 놓고 낳을 수 있다고 봐요. 인간 최초의 집이 바로 아기집입니다. 가장 건강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유일하고 최초의 주거공간이 아닌가요”라고 했다. 진짜 부부 출연은 80분의 공연 중 15분 분량으로, 연극과 리얼토크를 결합해 다큐멘터리 성격을 띤다. 콘돔, 조루에서부터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등 동시대 여러 문제도 적절히 녹였다.

자기 주도적인 성생활을 위한 깨알 같은 ‘표준계약서’도 제시한다. “합의할 때만 섹스한다, 콘돔을 착용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임신해) 중절을 결심할 땐 병원에 함께 가 죽을 끓여 준다, 위 사항을 지키지 않을 때는 헤어진다.”

<섹스 인 더 시티>는 ‘2016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봄페스티벌’의 개막작이다. 도시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시티’를 주제로 오는 7일부터 6월26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진행된다. 부제는 ‘도시 삶의 비용’으로, 도시에서 건강하게 생존하는 법을 연극적으로 탐구한다. <섹스 인 더 시티>(7~17일), 김수정 각색·연출의 <멋진 신세계>(21일~5월1일), 백석현 작·연출의 <문제 없는 인생>(5월5~15일), 전윤환 연출의 공동창작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5월19~29일), 신재훈 작·연출의 <머리를 내놓아라>(6월2~12일), 구자혜·이리 공동작, 구자혜 연출의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6월16~26일) 차례다. (070)8276-0917.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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