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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제일 힘든 날이 설과 추석......이었다.

이었다... 이었다... 줄곧 그랬다.

형님과 동서가 힘든일은 더 많이 하는데도, 그랬다. 설과 추석만 다가오면

몸이 먼저 아팠다. 소화도 안되고, 머리도 아프고, 변비가 왔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지 결혼하고 명절을 지내면서

절절하게 깨닫곤 했다.

환경이 달라지고, 생활리듬이 달라지고,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을 해내고

다양한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내 역할과 자리를 찾는 일은 몸과 마음, 다 힘든 일이었다.

형님처럼 오래 해서 내것이 된것도 아니고, 동서처럼 시댁이 내 집처럼 편안한 것도 아닌

나는 오래도록 손님같은 기분이었다.

 

4년전에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명절을 지내는 것이 고스란히 세 며느리들의

책임이 되었을 때 막막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어머님께 차근차근 배워온 세월이 긴

형님이 계셔 큰 힘이 되었다.

일머리가 뛰어나고 몸이 빠른 동서는 뭐든 어설프게 하는 내 빈자리를 든든하게 채웠다.

세 며느리들은 마음을 모아 꼭 필요한 만큼만 음식 준비를 하고, 각자 잘 하는 일들로

역할을 나누어 도우니 이젠 설과 추석이 와도 크게 힘들지 않다.'

여기엔 어머님 빈 자리를 열심히 채워주는 세 남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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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주버님은 수북한 설거지를 도맡아 해주었고, 서방님은 아예 부엌에

상주하며 잔 심부름과 소소한 도움을 쉼없이 주었다.

밤을 까고, 만두 반족을 이기고, 상을 차리고 치우고, 빨래며 청소같은 집안일을

나서서 도우니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이 없었다.

어머님 계실때에도 일을 잘 돕던 아들들이었는데 돌아가신 후에는 더 세심하게

살펴가며 몸과 마음을 내어준다.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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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스므살 큰 형아부터 고3이 되는 큰 조카 딸이 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딸 두명과 중학교에 입학하는 동서딸, 그리고 우리 아들, 열살, 일곱살이 된

우리 딸들은 서로를 좋아하는 사촌들이다.

공부와 학교때문에 자주 못 보지만 설과 추석에 3,4일씩 진하게 얽혀 지내는

세월동안 만나면 너무나 반갑고 좋은 사이가 되었다.

역시 명절엔 집안에 사람이 바글거려야 명절답다.

친정식구 모두 모이면 스므명이 넘고, 시댁 식구 모이면 열다섯명이니

아이들의 명절은 어딜가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흥성스럽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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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고 부족해도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도 있어서 올 설엔

제사상 차리고, 손님상 차려내는데 한결 수월했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많은 친지들이 모여 드시는 모습을 보는 일도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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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여 있는 산소에 가는 일을 전같으면 툴툴거렸을 것이다.

눈까지 왔는데 꼭 모두가 다 같이 가야 하나... 철없이 불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안다.

남편에게는 엄마가 묻혀있는 곳이다. 눈이와도 비가 와도 마음이 달려가는 곳일

터이다. 그리운 마음, 보고 싶은 마음으로 올라가는 눈산이다. 어린 손주들도

불평없이 할머니 만나러 눈길 꼭꼭 밟아 올라갔다.

일곱살 이룸이도 사촌언니들 사이에 의젓하게 앉아 할머니께 절을 올렸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도 어느새 이렇게 자라서 할머니께 제대로 된

인사를 올릴 줄 아는 손녀가 되었다.

어머님이 하늘에서 지켜보시면 흐믓하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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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날 바닷가에 들렀다.

쑥쑥 크는 필규는 이제 어깨동무를 하는 것도 불편해졌다.

손자를 끔찍히 아끼셨던 어머님을 생각하면 잘 커주는 아들도 고맙다.

 

"엄마는 아빠 고향이 강릉이라서 정말 좋아. 산도 있고, 바다고 있고, 오고 가는

길도 멋있고... 엄마는 강릉에 오는게 정말 좋아"

"저도요.. 철 없을땐 할아버지 집에 오는걸 싫어했지만 이젠 좋아요.

아빠가 강릉사람이라서 정말 다행이예요."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을 늘 반기지 않았던 아들도 이젠 철이 들었다.

오고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과 강릉의 산과 바다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늙어가는 할아버지에 대한 염려와 애정도 천천히 차 올라 간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모두가 다 가족이라는 것을 이젠 필규도 깨닫고 있다.

 

가는 길은 눈길이었고, 올 때는 길이 한없이 밀렸다.

운전하는 남편이 애를 많이 썼다.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주인을 기다려준 세 마리 개들도 애 썼고, 엄마가 부엌에서

바쁜 대부분의 시간동안 거실에서 텔레비젼만 봐야했던 아이들도 고생했다.

두통때문에 힘들었던 나도 애썼다.

모두가 다 애쓰고 모두가 다 고마왔던 설이 지나갔다.

14년동안 더디게 발전했지만 며느리로서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일것이다.

 

이만큰 지내고 보니 설도 만만하게 느껴진다.

체력이 달려서 헉헉대긴 하지만 막막하지도 한숨이 내 쉴 일도 없다.

서로 도와서 해내면 어떤 일이든 다 되더라.

다만 하나 혼자 지내시는 아버님만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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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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