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이의 첫 경험, 그림책을 만나는 순간에 대하여

베이비트리 2016. 02. 12
조회수 3146 추천수 0
아이를 낳고 키우면 그림책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그저 잠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그림책을 잊는다. 그림책은 어린 시절 잠깐,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경우 또 잠깐 흥미를 품는 장르다. 인생에서 잠깐 스쳐가는 책이다. 게다가 그 시간에 꼭 그림책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책을 읽지 않고 자란다고 아이에게 특별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그림책을 한 권도 읽지 못하고 자랐다.

하지만 그림책을 만나는 시간은 특별하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생에 처음 만나는 책은 대개 그림책이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는 친밀하고 따뜻한 경험 역시 그림책을 통해 처음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첫 경험의 힘은 강하다. 그 순간은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그 시간이 이후 이어질 경험들의 색깔과 냄새를 지정했음을. 인간이란 생각하고 판단하기 전에 이미 느끼고 경험하기에 첫 경험은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안타까운 것은 이 부분이다. 지금의 부모들은 그림책을 경험한 경우가 많지 않다. 책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지식의 전달자로 책을 경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은 올바른 말, 쓸모 있는 말, 기억해야 할 말이 담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골라서 읽어줄 때도 의미 있다고 부모가 느끼는 내용, 아이에게 부모로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담은 책에 손이 간다. 책은 그런 것이라 느끼니까.

그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책을 썩 좋아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책을 만날 때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 아이 특유의 호기심이 가득하다. 게다가 책에는 알록달록 멋진 그림이 있고,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고, 부모와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 있다.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부모는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평소에 전달하지 못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것을 가르치고 싶다.

메시지도 좋고 교육도 좋다. 문제는 속도다. 아이들은 아이의 속도로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가 궁금한 이야기를 해주는 책, 자신이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속 이야기를 말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책을 원한다. 부모들은 모든 잡다한 것을 정리해서 아이에게 요점이 무엇인지, 옳은 길이 무엇인지 전달하고 싶어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배울 수 없다. 정답이 정답이라고 깊게 느끼기 위해선 스스로 의문을 품어야 하고, 반복적인 경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시간이 드는 일이고, 그 시간을 누군가 천천히 따라가 줘야 한다. 그때 아이 곁을 책이 지켜준다면 아이는 책과 친구가 된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지난 4년간 이 작은 지면을 통해 그림책 이야기를 나눴다.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이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그림책이 무엇인가였다. 지면을 채웠던 아름다운 책들에 비해 나의 이야기는 보잘것없었다. 그래서 이런 사족을 붙이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아직 약하다. 자기의 말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아이의 편이 되어 말해주는 책이라면 아이들은 좋아한다. 어린 시절 그런 책을 만나는 순간 아이는 책을 삶의 중요한 동반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더 많은 아이들이 책을 사랑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부모가 그런 사랑을 이어줄 수 있다면. 초라한 글로 지면을 채운 필자가 지닌 소망치고는 너무나 커서 부끄럽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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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안녕하세요, 베이비트리 운영자입니다. 꾸벅~ 놀이·교육학자 + 소아과 전문의 + 한방소아과 한의사 + 한겨레 기자 + 유쾌발랄 블로거들이 똘똥 뭉친 베이비트리,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꼭꼭 싸놓지 마세요. 괜찮은 육아정보도 좋고, 남편과의 갈등도 좋아요. 베이비트리 가족들에게 풀어놓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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