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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복면 교육

베이비트리 2015. 12. 10
조회수 2054 추천수 0
신문사 여러 부서를 돌며 다양한 기사를 써보고 싶지만 유독 안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정치부다. 적성의 문제인데 일만 아니라면 정치 기사도 안 읽고 싶다. 정치부에서 부르질 않아 못 갔지만, 아무튼 인사 불만이 없으니 서로 잘된 일이다. 십여년간 여의도 쪽으론 눈길 한번 안 돌리고 기자 생활을 했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매력적인 헌법조항에 이끌려 교육 담당이 된 지 2년이 돼 간다.

학교와 대치동을 누비며 독자들이 목말라하는 교육 정보를 소개하려던 교육 기자의 꿈은 첫날부터 불길했다. 2014년 3월28일 나의 첫 교육보고는 이렇게 시작됐다. “공직자 재산공개/ 울산 김복만, 교육감 중 최고 부자…서울 문용린은 선거비용 탓 7억원 감소”. 천지 분간을 못해 깨닫지 못했을 뿐, 교육 기자로서 할 일이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그날 이후 ‘4·16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격렬했던 ‘6·4 교육감 선거’가 있었고, 진보 교육감 14명 당선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었다. 일년 내내 보수 정부와 진보 교육감의 정치 투쟁을 지면으로 중계해야 했다.

연말을 맞아 지난 1년간 쓴 기사들을 돌아보니, 올해는 탈정치를 꿈꿔온 교육 기자한테 더욱 잔인했다. 정치부 기자도 아닌데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정치 기사’뿐이다. 교육 문제로 하도 싸워대니 정부와 여야, 시민사회가 함께 주요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자는 시리즈 기사를 썼다. 이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교육 현장이 죽어난다는 교육과정 개정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 가운데 역사 교과서 개정의 결말이 훗날 역사쿠데타로 기록될 국정화로 귀결됐다는 얘기는 각설하겠다. 지금은 정부와 교육청, 여와 야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또 한바탕 정치 중이다.

상반기에 잠시 ‘순수’ 교육 기사를 쓰게 됐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해방 이후 초·중·고교생을 집요하게 괴롭혀오다 이제 유아들까지 들볶기 시작한 수학 문제를 파보겠다며 ‘수학 고통 줄이자’ 기획에 달려들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견적이 안 나오는 정치적 사안이었다. 현행 수학 교육과정은 사범대 수학교육과 교수와 수학 교사들의 밥그릇이 걸린 사생결단 정치 싸움의 산물이었다. 초·중·고 12년으로 한정된 교육과정 안에서 수학의 어느 분야를 어디까지 다루고, 어떻게 시험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학 방정식보다 더 고차원적인 정치 공학이 필요한 숙제였다.

두 해 동안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다 결국 운명을 받아들였다. 모든 정책 영역이 그러하듯 교육도 정치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교육이란 없었다. 학문이 순수할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지만, 제아무리 순수한 학문이라도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현장에 도입되기 전에 ‘정치’라는 여과기를 거친다. 근 10년간 싸우고 있는 무상급식 논란을 보면 심지어 애들 밥 먹이는 일마저 엄청나게 고난도 정치다. 정치를 등지고 유아독존 교육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음이었던 셈이다.


교육 문제와 아이들의 인생이 수능일보다는 선거일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걸 알게 된 뒤, 나의 관심도 자주 대치동보다 효자동과 여의도 쪽으로 쏠린다. 교육 기자가 싫어도 정치 기사를 들입다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바꿔 말하면 이 땅에서 교육을 현실적인 과제로 떠안고 살아가는 모든 주체들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의 집회 복면 착용 금지로 떠들썩했던 연말, 한해 업무를 정리하다가 문득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이 정부의 ‘복면’처럼 느껴진 이유다.


143263415617_20150527.JPG 전정윤 사회정책팀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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