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인생 처음 응급실에 가게 된 ‘변비’ 사건, “오랜만에 할 일을 했다”

내 인생 첫 응급실행은 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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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응가를 못하고 있는데 어떡하지?” 퇴근 뒤 아내의 걱정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똥 기저귀를 갈아본 기억이 꽤 오래다. 아이가 먼 곳을 응시하면서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듯 배 아래로 내린 뒤 부르르 떠는 모습까지 보고 출근을 했는데 오늘도 성공하지 못했나보다. 이틀 정도는 괜찮다던데….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많이 먹으면 많이 싸야 한다. 우리 아이가 그렇다.

해가 지자 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아내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똥 때문에 응급실이라니, 병원 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나로선 내키지 않았다.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책, 인터넷 등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다. ‘만 2세 미만인 경우 이유 없이도’ ‘섬유질이 부족하면’ ‘수분이 부족해도’ ‘아이가 아파도’…. 이유는 그야말로 가지가지였다. 그 여러 이유 가운데 내 아이의 변비 원인을 찾기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다.



옆에서 함께 읽던 아내가 유추하는 이유도 변화무쌍했다. “물을 좀 적게 줬나?” “바나나 때문인가?” 우리가 정답 없는 정답찾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아이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힘을 쓰나보다 싶어 기저귀를 열었다. 아뿔싸, 아이의 엉덩이 저 깊은 곳에 까만 응가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엄지와 중지로 까만 덩어리를 집어당겼다. 건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까만 덩어리는 조약돌처럼 단단했고 아이는 자지러졌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아내가 발을 굴렀다.

아이를 들쳐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과속 단속에 걸리면 “똥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각오쯤은 돼 있었다. 병원으로 난입해 응급실로 돌진했다. 소아 병동인데도 응급실에 빈 자리가 별로 없었다. 병원에서는 곧장 엑스레이를 찍으라 했다. 엑스레이 사진 판독 뒤 아이에겐 관장 처방이 내려졌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아이 울음소리의 데시벨은 높아져만 갔다.

커튼 너머 침상에서도 아이와 엄마는 실랑이 중이었다. 들려오는 말로 짐작건대 그쪽 역시 ‘아동 변비’ 때문이었다. 묘한 동질감, 혹은 안도감이 들었다. 변비로 응급실에 오는 게 우리만은 아니구나. 그때 다른 침상의 커튼이 젖혀졌다. 한 아이가 돌고래처럼 펄떡펄떡 몸을 뒤로 젖히고 있었다. ‘쟤는 무슨 일일까’ 하는 찰나 우리도 처치가 시작됐다. 관장을 위한 대형 주사기가 침대 위에 놓였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임무가 부여됐다. 의사는 아이의 항문을 틀어막으라고 했다. 관장약 성분인 글리세린이 몸에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속이 뒤집히면서 변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 번에 다 내보내지 않고 조금씩 내보내면 잔변이 생겨서 같은 과정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아이의 항문을 막은 채 관장약을 집어넣기 시작하자, 아이가 아까 본 돌고래 아이처럼 몸을 뒤로 젖히기 시작했다. ‘아, 아까 그 아이도….” 이 병실에 ‘변비 동지’가 둘이나 더 있었다.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탁구공만 한 두 덩어리의 변을 만났다. 거짓말 같게도 그 두 덩어리가 조개가 품은 진주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항문이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아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잠을 잤다. 집으로 가는 길, 내 오른쪽 발에는 양말이 신겨져 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할 일을 했다. 불침번이나 서는 도통 쓸모없는 이 빠진 수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만하면 됐다고 자위도 해봤다. 뭔가 뜨거운 게 끓어올랐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내 할 일도 찾았다. 아이를 볼 때 가급적 많이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변비를 막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아빠 임무 하나가 추가됐다.


하어영 <한겨레> 기자


(*이 글은 한겨레21 제1086호(2015.11.1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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