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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직접 아이를 돌보며 육아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체감했고 오롯한 인간으로 성장했다. 지난 14일 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아빠 홍창욱(38)씨와 첫째 해솔(뽀뇨·6), 엄마 노수미(38)씨, 둘째 유현(2). 홍창욱 제공
[토요판] 인터뷰 ; 가족
뽀뇨 엄마 아빠의 ‘공평 육아’
▶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전업육아’를 했습니다.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히고 밥 대신 빵과 우유를 주는 등 실수투성이였지만, 뽀뇨 아빠는 육아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가족’은 독자 여러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 지급과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2008년 결혼을 하고 이듬해 나는 만삭인 아내를 설득하여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제주로 이주했다. 서로 존중하기로 한 약속을 더욱 확실히 지키기 위해 이때부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제주 이주가 소원이었던 나와 달리 제주에서 첫아이를 출산한 아내는 도와줄 사람 한 명 없는 제주보다는 지하철과 버스가 구석구석 가 닿는 서울을 그리워했다. 2년 뒤인 2011년,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아내는 나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커가는 아이와 함께 평생에 없는 시간을 보낼 기회예요. 다른 일 구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아이 보는 데 전념하세요.” 이 말과 함께 2년 동안 아내 말대로 육아와 틈틈이 마을 협동조합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를 위해 아내와 마주앉았다. 그동안 기록을 모아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라는 육아 책도 낸지라 아내와 ‘아빠 육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기대 반 긴장 반이다. ‘뽀뇨’는 첫째 해솔이의 태명이자 지금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결혼 이듬해 제주로 이주
존댓말 쓰고 ‘평등생활’ 시작
아빠는 전업육아 뛰어들었다
지금은 엄마가 육아 담당

“부녀회장님 집에 뽀뇨 맡기고
한겨울에 여름옷 입혔다면서?”
“육아 어려운 건 살림살이 팍팍해서
이러다 사회서 도태되지 않을지…”

뽀뇨 아빠 수미, 처음에 내가 육아를 맡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뽀뇨 엄마 아주 좋았어요. 드디어 나는 해방이다. 첫째 돌 무렵이었는데 너무 지쳐 있었거든요. 제주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교통이 불편해서 여러가지로 힘들었어요. ‘자유부인이 되어 날아다니리라’는 생각을 했었지.

뽀뇨 아빠 자유부인도 좋은데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되는데 부담은 없었어요?

뽀뇨 엄마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데… 수입이 늘어나면서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뽀뇨 아빠 육아 스트레스와 돈 버는 스트레스, 어떤 게 컸어요?

뽀뇨 엄마 당근 육아 스트레스가 컸지. 고등학생 영어 공부시키는 일은 소통이 가능해서 쉬워요.(웃음)

뽀뇨 아빠 나는 육아 스트레스가 그렇게 큰 줄 몰랐어요. 아이 잠재우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자는 척하다가 눈을 살짝 뜨면 눈앞에 와 있고, 또 눈을 살짝 뜨면 이번엔 손가락으로 내 눈을 콱! 어떨 때는 아이 재우려고 없는 쭈쭈까지 물렸다니까. 남편이 육아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없었어요?

뽀뇨 엄마 아이에게 쉽게 짜증을 내지 않는 거 보니까 기특하더군요. 인내를 가지고 잘 돌본다는 느낌이 좋았는데, 살림을 잘 못하는 부분은 아무래도.(웃음)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잠시 왔을 때 그 문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내게 엄청 화를 내더라고요. 전업주부가 꿈이고 살림을 잘할 수 있다고 남편이 약속했는데 청소도 지저분하게 하고 살림도 잘 못한다고 시어머니께 얘길 했더니 시어머니가 방문을 쾅 닫으며 “남자가 살림을 우째 하노. 남자는 살림 못한다” 하셨거든요. 더 웃겼던 건 지난해 남편이 육아 책을 내고 시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윗집 아줌마에게 “우리 아들이 며느리 돈 버는 사이 애들도 다 키우고 살림도 다 했다”며 자랑을 하셨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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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뇨 아빠 지금 생각하면 첫째랑 조금 더 함께하지 못했던 게 아쉽기도 해요. 우리가 둘째 유현이를 4년 만에 가졌는데 내가 다시 전업육아를 하겠다고 하면 다시 직장에 다닐 자신이 있어요?

뽀뇨 엄마 당연하죠. 내가 뭘 해서라도 가족을 못 먹여 살리겠어요.

뽀뇨 아빠 (흐뭇) 와. 대단해요. 예전에 한 케이블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전업육아 아빠들과 일 가진 엄마들의 설전이 있었거든요. 그중에 전업육아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대부분의 시간보다 직장 가진 엄마가 하루 30분 아이와 가지는 교감이 더 크다는 얘길 들었어요. 아빠 육아가 엄마 육아에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있을까요?

뽀뇨 엄마 책임감 아닐까. 아빠들은 아이 돌보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가 없는 시간에 엄마가 만들어놓은 음식으로 아이를 먹이고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놀아주는 정도의 역할? 예를 들어 예방접종을 해야 할 때도 스케줄을 몰랐잖아요. 아내가 다 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이 육아에 대한 주체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또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아이들 어린이집 수첩에 챙겨야 할 것들을 선생님들이 적어두는데 당신은 한번도 수첩 내용을 읽거나 준비물을 챙겨주지 않았거든요.

뽀뇨 아빠 핑계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임신과 출산, 수유로 넘어가다 보면 아빠가 어느 것까지 해야 되는지 혹은 관심을 가져야 되는지 잘 모를 때도 많았어요. 아이 접종 주사 맞힐 때도 병원이나 보건소 문 열 때 가려면 직장 다니는 아빠의 경우에는 함께 못 가는 경우도 많을 거고.

뽀뇨 엄마 아빠가 엄마를 대신해서 육아나 살림을 다 도맡아 하는 건 남자의 뇌 구조상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긴 해요. 남자들은 꼼꼼히 챙기는 걸 잘 못하니까. 결론은 아내의 말을 잘 듣는 남편이 되면 될 거 같아요.(웃음) 요즘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끼는데 우리 아파트만 해도 아빠들이 모두 아이를 어린이집 버스에 태우거든요. 오늘 아침은 5명 모두 아빠들이 등원시켰어요.

뽀뇨 아빠 제주에서는 아빠들 출퇴근 시간이 5분밖에 걸리지 않으니까요.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뽀뇨 엄마 이제 거꾸로 질문을 해볼게요. 아이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게 어떨 거 같아요?

뽀뇨 아빠 사실 첫째를 키우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어요. 가끔 마을 협동조합 일이 있을 때는 제때 먹을 것을 챙기지도 못했고 어떤 때는 빵과 우유로 식사를 대체할 때도 있었거든요. 한번은 수산물 포장하는 곳에 아이를 데리고 일을 갔는데 지게차는 왔다갔다 하고 여사장님은 빨리 일 못한다고 뭐라 그러고… 힘들었죠.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카시트에 묶어두고 일을 마쳤는데 마음속으로 얼마나 울었던지. 나중에 집에 올 때 울다 잠든 아이를 깨워서 먹일 게 없다 보니 과자로 달랬던 기억이 나요. 첫째의 이빨이 많이 썩은 건 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 죽겠어요.

뽀뇨 엄마 기억나는 게 있어요. 아파트 부녀회장님이 가끔 뽀뇨를 잠시나마 돌봐주신 적도 있었잖아요. 당신이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혀서 데려다주고 아침을 못 먹였다면서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보냈던 적이 있었다고요. 퇴근하고 뽀뇨를 데려오는데 부녀회장님이 빵 대신 밥 먹이고 자기 아이의 두꺼운 옷을 입혔다고 하시는데 얼마나 창피하고 뽀뇨에게 미안하던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데 왜 아빠 육아는 많지 않을까요. 언론이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모습이나 캠페인은 현실과 온도차가 있어요.

뽀뇨 아빠 아빠 육아가 어려운 건 살림살이가 팍팍해서가 아닐까?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전업육아 아빠로 돌아선 뒤 대낮에 유모차 끌고 나서는데 만날 사람도 없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더라고요. 나중에 사회에서 도태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 식구 찾아 일찍 퇴근하는 건 승진에서 열외된 사람, 명퇴할 사람으로 회사 내에서 찍힌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 사회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지요.

뽀뇨 엄마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건 맞긴 하지만 한편으론 아빠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과 노는 걸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당신도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본인 할 것을 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엄마들도 아빠들처럼 자유롭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지만 자기가 낳은 아이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엄마들끼리 모이면 아이들 얘기만 하는 걸 보면 엄마들 관심사는 온통 아이뿐인데 아빠들은 함께 모이면 아이 얘기 하는 거 봤어요?

뽀뇨 아빠 아빠들이 이 글을 읽고 지금이라도 육아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요?

뽀뇨 엄마 내 남편이 육아서적까지 냈는데도 이렇게 둘째 보기가 힘든데 보통의 가정 아내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요. 육아란 한 개인이 오롯한 인간으로 서기 위해서 부모가 버텨내는 과정 아닐까. 그때 둘이 같이 버티면 그만큼 힘도 덜 들지 않을까. 그러니 아빠들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해주면 좋겠어요!

지난해 1월 아내는 다시 전업육아에 나섰다. ‘자유부인’이 들어오자 나는 ‘자유남편’이 되었다. 아내와 인터뷰를 하며 그동안 육아에 힘들었던 아내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최근 일을 핑계로 아이 돌보기에 소극적이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며 뽐내는 일이 많은데 사실 그 저녁이 있기까지 얼마나 고단한 아내의 노동이 있었겠나. ‘육아란 버텨내는 과정’이라는 아내의 마지막 말이 마음속에 남는다.

홍창욱/<제주 살아보니 어때?> 저자

(*위 글은 2015년 10월10일자 한겨레신문 토요판 가족면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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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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