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책을 읽으라고만 말고 골라주고 함께 읽어야 해요”

베이비트리 2015. 10. 01
조회수 2803 추천수 0
flysg2@hani.co.kr" alt="어린이도서연구회 정혜숙 사무총장. 사진 김성광 기자
[짬] 창립 35돌 어린이도서연구회 정혜숙 사무총장
서울 마포구 서교동 주택가, 마주선 감나무 두 그루에 감이 치렁치렁 열린 웅숭깊은 마당에 들어서니, 올해로 서른다섯 돌을 맞은 유서깊은 단체의 이름이 유리창에 대롱대롱 붙어 있다. ‘겨레의 희망,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이란 캐치프레이즈로 한결같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온 ‘어린이도서연구회’(어도연)다. 책 안 읽는 아이들에 대한 출판계와 일부 어른들의 걱정이 사뭇 깊은데, 어도연은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사무총장 정혜숙(42·사진)씨는 “문제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시간이며, 설령 시간이 있어도 어떤 책을 읽을지 권해주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왜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당연히 스마트폰을 꼽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방과후에도 학원 가느라 더 바쁩니다. 스마트폰은 짬을 내서 하지만, 책은 짬짬이 짧은 시간으로는 안 돼요. 몰입해야 하고 그 시간을 깊이 누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책과 멀어지는 겁니다.”

1980년 양서협동조합 어린이 부문 ‘싹’
97년 10월 법인 독립해 ‘책읽기’ 운동
초기 교사·작가에서 학부모 중심으로

전국 12개 지부 91개 지회 3500명
동화읽는어른·동화동무씨동무 ‘핵심’
‘도서목록’ 인기높아 10만부 무료 배포

어도연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조사해 보니 “바빠서”, “책이 없어서”라는 응답에 이어 “어떤 책을 읽을지 몰라서, 책을 권해주는 사람이 없어서”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정씨는 “책을 읽으라고만 하지, 정작 이 책이 이렇게 저렇게 재미있으니 읽어보라고 권하는 어른들이 사실은 드물다”고 했다.

어도연은 창립 이래 줄기차게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권해왔다. 전국 12개 지부 91개 지회 3500명의 회원과 1800명의 후원회원이 그 밑심이다. 회원들은 지역단위로 동화읽는어른 모임을 꾸려 매주 모여 어린이 책을 읽고, 또한 매주 1회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정씨 자신도 과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2007년부터 8년 동안 주1회 20~30분씩 그림책과 동화를 읽었다. 이 학교에서는 1교시 시작 전에 전 학년을 대상으로 어도연 회원들이 한반씩 들어가 함께 책을 읽는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책은 옛날 얘기예요. 햇님달님, 여우누이, 도깨비 이야기, 어리석은 호랑이까지. 메시지가 있는 책보다는 즐거운 책, 아이들 모습을 잘 그려준 책을 재밌어합니다. 말을 비트는 말놀이 책도 좋아하는데, 말놀이의 리듬이 아이들한테 흥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언어가 소리가 되어 들리면 아이들이 민감해지고, 몇번 반복되면 따라하고, 몇번 따라하고 나면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요. 가령 ‘소금장수 똥구멍은 짭짤짭짤, 참기름장수 똥구멍은 미끌미끌’ 하면 아이들이 금방 지어내죠. ‘과일장수 똥구멍은 새콤달콤’ 식으로.”

3녀1남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2006년 어도연 활동을 시작해 올해 2년 임기의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어린이책을 읽고 함께 토론한다는 데 관심이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같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 키우는 고민 나누고 생각 나누니까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고 했다.

그는 책읽기란 “온몸으로 책을 경험하고 즐기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어른이나 아이나 같은데, 아이들이 좀더 책을 몸으로 느낀다”고 했다. “책이 재밌으면 들썩들썩 뛰고, 흥분하고 반응이 격렬해요.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면 각자 자리에 앉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책 읽는 저한테 바짝 다가와 책을 뚫어지게 보고 있죠. 책을 가운데에 두고 동그랗게, 아이들 머리가 제 머리 주위에 붙어 있어요.”

어도연은 1980년 양서협동조합의 어린이 부문으로 싹을 틔운 이래 97년 10월 사단법인으로 독립해 오늘에 이르렀다. 어도연은 지역도서관과 학교도서관, 지역공부방, 아동센터 등지에서 어린이들과 책읽기를 하는 외에도, 매달 추천도서목록을 정선해 월간 <동화읽는어른>과 누리집에 책 리뷰와 함께 싣는다. 초창기 교사·평론가·작가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90년대 이후는 학부모들이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어도연의 추천도서 목록은 80~90년대 이후 학교도서관을 비롯한 공공도서관 필독서로 추천돼 전국의 학부모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힘이 2010년대 들어 다양해진 매체 환경 속에서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도연은 현장에서 아이들과 책을 나누는 91개 지회 풀뿌리 조직의 힘으로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어도연이 직접 운영하는 도서관도 광주 책돌이도서관을 비롯해 세곳이다.

어도연은 최근 지역단위 책읽어주기 활동을 전국 차원으로 끌어올려 어린이 독서 저변 확대에 나서고 있다. ‘동화동무 씨동무’ 책읽기 사업이 그 핵심인데, 이 프로그램은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해주기보다는 ‘책을 읽어준다’는 목적 자체에 집중한다. 학교(학급 단위)와 도서관, 지역아동센터 185곳에서 독서모임이 만들어져 2012년부터 지금까지 2100여명의 어린이가 함께했다.

정씨는 “학교도서관에서 동화동무 씨동무 프로그램을 해보니, 도서관에 책을 가득 꽂아두는 그 자체보다는, 소주제별 목록을 만들어 한데 모아주면 아이들이 더 흥미를 느끼더라”고 조언했다. 이를테면 똥 이야기, 모험 이야기, 요리가 즐거워지는 책, 고학년이 읽는 탐정 이야기 식으로 아이들이 책 내용을 예상할 수 있는 소주제로 묶어 놓으면 아이들이 더 쉽게 책으로 다가간다고 했다.

어도연은 매년 3만부가량씩 발행하던 ‘올해의 추천도서목록’을 올해부터 10만부로 늘려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더 많은 부모와 어린이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책읽기를 알리겠다는 뜻에서다.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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