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기의 고열은 면역력 투쟁

이정희 2015. 09. 10
조회수 32027 추천수 1

"두 번째 고열의 실험대를 15개월짜리 아이가 해열제 없이 통과했어요! 정민이가 이제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아서 안심입니다. 요즘 평소처럼 잘 먹고, 잘 놀고, 밤에 잠도 잘 자네요.

지난 주초에 이틀간 감기 증상을 보이더니 한밤중에 39.5도까지 열이 오르더군요. 해열제를 여러 번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하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물론 시어머님의 지지가 없었다면, 제가 워킹맘이자 초보맘으로서 그렇게 굳건히 버틸 수 없었겠죠.

돌아보면 첫 번째 경험은 더 심한 생지옥이었어요. 늘 듣던 '3일열 발진'이 소리 없이 찾아온 것이죠. 8개월째 접어든 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어요. 역시 한밤중에 고열이 시작되었어요. 응급실을 가려고 준비하는데, 제가 너무 초초 불안에 떨고 있으니까 남편이 시어머님을 호출했어요. 결국 시어머님께서 손자 간호를 직접 맡아주셨어요. 수시로 열을 재면서, 방안 공기를 환기시키고... 저에게는 '딱 삼일만 참아 보자'고 진정시켜주셨죠. 그런데 시어머님의 예고대로 셋째 날에 정말 큰 변화가 나타났어요. 아침에 피부 발진을 보여서 저는 다시 초조했는데, 저녁 무렵 순식간에 피부도 가라앉고 열감이 사라지더군요.

독일 병원의 소아과 간호사로 20여년 과거 경력을 가진 시어머님은 자신의 전문직에서 터득하신 바를 온 가족의 건강을 위해 생활 속에 실천하고 계십니다. 저희 친정 식구들은 감기기운을 느끼면, ‘예방 차원’에서 약 먹고 일찍 잡니다. 그런데 시댁 식구들은 전혀 달라요. 시어머님의 가정 보건 소신에 따라 감기 몸살이 와도 약은 멀리하고, 쉬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아이들은 취학 전까지 영양 보충제를 포함하여 어떤 약이든 먹이지 말아야 자가 면역력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당신의 '건강 철학' 덕분에 현재 사춘기에 접어든 친손자 둘과 외손녀 둘은 다른 집 아이들 보다 튼실하게 성장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십니다."


 

정민이 할머님께서 고열에 시달리는 손자를 손수 간호하시며 해열제를 안 먹이는 '가정 보건의 소신'을 심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 서양의학의 관점을 확대한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전인적 인지 의학의 측면과 상통하는 부분입니다(참고도서: Annette Bopp/Birgit Krohmer (Hrsg.), Der Baby-Guide fuers erste Jahr, Muenchen 2010).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첫돌 전에 자주 걸리는 감기 증상에서 동반되는 열의 의미 새김입니다. 38도 이상 40도까지의 고열은 아기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로 간주합니다. 다시 말해, 신생아의 자연 면역력은 어머니에게 받은 것이므로 생후 4~5개월까지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특히 모유 수유를 통해 더 효과적!), 생후 1년을 보내면서 서서히 약화됩니다. 그래서 아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첫돌 전 후 간간이 미열이나 고열을 내며 감기 증세를 보이며 아프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통해 비로소 아기는 자신의 면역 체계를 만들기 시작하며, 그 성숙과정은 유치갈이 시기까지 약 7년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03212777_P_0.JPG » 약. 한겨레신문 자료 사진.


예외 없이 생후 8개월의 정민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명 '돌발성 발진'('3일열', Dreitagefieber/exanthemata subitum)의 원인은 헤르페스 부류의 바이러스 감염으로 분류됩니다. 이것은 대략 생후 6~8개월, 또는 두 돌 경에도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전형적인 영아기 질병에 해당합니다. 표현대로 아기 몸이 보통 3일간 고열과 싸웁니다. 이 증상은 거의 부작용 없이 회복되지만, 아기의 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생아 입장에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입니다. 이제부터 미래의 삶을 위해 독립된 면역체계로 탈바꿈하는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며칠간 이런 열병 치레를 하고 나면, 아기는 두드러진 발육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기기 동작이 더 빨라지고, 첫돌이 지난 경우 걷기가 더 자연스럽게 됩니다.

 

요컨대 아기는 지구상의 생명유지와 적응을 위해 주변 환경의 세균들과 싸우느라 몸에서 열을 냅니다. 그 대가로 자가 면역체계를 서서히 쌓아갑니다. 이런 자연의 이치를 알고 아기의 훗날 건강을 생각한다면, 임시적 효과를 위한 해열제 투약은 가능한 절제할수록 좋습니다. 물론 열성 경련으로 악화되는지를 정확하게 주시하면서, 필요시 의사의 전문 치료는 신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Q. 18개월 된 아들입니다. 콧물감기로 벌써 보름째 이비인후과의 처방 약을 먹이고 있는데, 어제부터 열이 39도로 치솟아 있어요. 해열제를 먹여도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또 오르네요. 돌 즈음 딱 한 번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어요. 그것 말고는 열이 난적이 한 번도 없는데 걱정입니다. 다니던 병원을 바꾸어야하는지? 병원 자주 바꾸면 더 안 좋다는 엄마도 있고, 난감합니다. 그냥 응급실로 가는 것이 해결책인지 고민 중입니다!

 

A. 어린 자녀가 질병 치레 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과 달리, 영유아기는 다양한 증상을 겪으면서 성장합니다. '건강한' 아기들이 겪는 일반 증상들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소화기 계통의 배탈 증세와 둘째, 감기 증세와 연결된 이비인후과 (중이염 포함), 기침 등 호흡기 질환이 있습니다. 셋째, 가벼운 태열부터 심각한 아토피 증세 등 다양한 피부 질환이 있습니다.

가벼운 초기 증상에서 체온이 38도 정도 오르면, 양육자는 대부분 열성 경련의 염려 때문에 해열제를 먹이게 됩니다. ‘열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고 38도가 되면 해열제를 꼬박 꼬박 먹이라는 소아과 의사도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는 아파하는 어린 아이에 대한 애처로움, 부모의 불안감, 특히 고열로 인한 위험한 부작용을 우려하여 약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열을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 그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련을 겪고 있는 아이를 당장 편하게 해주기 위해 해열제를 먹여 열을 내리게 해주면, 잠시 후 아기의 기관은 다시 감염 균들과 싸우느라 더 심하게 열을 냅니다. 어려워도 고열을 통과해야 아이 몸은 세균과의 싸움을 빠르게 마칠 수 있습니다. 즉, 이런 기회를 통해 아이 몸은 스스로 열을 올리고 내리는 능력을 훈련하면서 학습이 이루어져 자가 면역력을 단단하게 쌓아가는 것입니다. 해열제는 면역체계의 발달과정에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아이 스스로 열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허용되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독일의 일반 의학계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전인적 치료를 목표로 하는 슈타이너 의학을 포함하여), 영유아기의 잦은 해열제 복용이나 항생제 투약은 더욱 신중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성장기에 나타나는 열을 인위적으로 자주 누르게 되면, 그 부작용으로써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지며, 특히 성인이 되어 암의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참고문헌: Dr. Med. Jan Vagedes / Georg Soldner, Das Kinder Gesundheitsbuch, Muenchen 2015, 68-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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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귀국, 이때부터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창의력, 상상력, 자질 발현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학자. 사회변화는 교육문화의 개선에서 시작된다는 확신으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서적을 번역하고 강의하다가, 뒤늦게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사범대학에서 슈타이너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학을 전공했다. 2000년부터 (사)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를 이끌며 번역서로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나>,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등이 있다.
이메일 : charirang123@hanmail.net       트위터 : steinercenter      
홈페이지 : http://steiner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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