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30_150758.jpg » 거실 서재 설치후 모습. @양선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육아의 재발견

 *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지난 3~4월 육아 휴직하는 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나는 거실 서재 만들기를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말하겠다. 거실 서재를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왔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중·고등학교때부터 읽은 책  몇 권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책을 잘 버리지 못한다. 심지어 대학교 교양 수업 시간에 본 ‘맨큐의 경제학’도 책꽂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니 얼마나 책을 못 버리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책읽기를 좋아한다기보다 책을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잠깐이라도 보면 기분 전환이 되고, 책이 내 곁에 있으면 그냥 배가 부른 것처럼 좋다. 어렸을 때부터 책은 내게 힘들 때마다 위로와 용기를 주는 친구였고,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였다. 책이 없었다면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싶다. 또 짧은 시간에 다양한 지식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책이 주는 기쁨과 효용성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우리 아이들 역시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림책도 많이 사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한겨레신문 어린이책면에 서평 기사도 자주 쓰는 편이다. 남편 역시 책을 좋아해서 책이 많은 편이다. 한마디로 우리 집의 상당한 공간을 책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이 많으니 우리 집 곳곳에는 항상 책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깔끔과는 거리가 먼 우리 집에 들어서면 나는 ‘언젠가는 이 책을 정리하고 말리라’하는 다짐을 절로 하게 됐다. 지인들도 우리 집에 오면 “책 좀 버려라”“무슨 책이 이렇게 많냐”는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실 서재를 만들어 책을 정리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은 항상 머릿 속에만 존재했다.

 

20150321_162606.jpg » 거실 서재 설치 전 거실 모습. 벽엔 낙서와 액자들이 붙어 있고, 집안 곳곳엔 책이 쌓여 있었다. @양선아

 

 

거실 서재 만들기를 실행에 옮기지 못할 핑계는 많았다. 일단 집이 전셋집이고 거실 서재를 하려면 목돈이 들어간다는 것이 가장 좋은 핑계였다. ‘목돈을 들여 거실 서재를 떡~ 맞춰놨는데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우리집을 사서 그때 해도 늦지 않을거야’‘거실 서재보다는 우선 돈을 쓸 곳이 천지야’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언젠가는 거실 서재를 할거야’라고 말하며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꿈꿔왔던 거실 책장 만들기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었다. 장장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꿈만 열심히 꾼 것이다.
 
그 다음 핑계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였다. 그러나 육아 휴직을 한 동안에는 시간이 없다는 말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거실 서재 해야하는데’라는 말만 하면서 육아 휴직 상당한 시간을 흘려 보냈다. 육아 휴직 기간 막바지에 접어들자, 그런 내가 답답하고 한심했는지 남편이 작정하고 내게 훈수를 뒀다.
 
"당신, 언제까지 그렇게 말로만 하고 싶다고 할래? 돈은 항상 없어. 시간도 항상 없고. 언제 우리가 우리집을 마련할지도 모르겠어. 2년 뒤에 이사를 가더라도 우리 2년 동안만이라도 깔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살아보자. 이제는 봄이도 입학했고, 자기 방을 따로 마련해주지 못해줄거라면 거실을 서재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 2년 뒤에 일어날 일은 그때 생각하자. 더는 늦추지 말고 해. 할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 만날 언젠가는 할거야라고 말만 하지 말고.”
 
남편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언제까지 이렇게 미루기만 할 것인가.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자. 후회하더라도 하고 나서 후회하자.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게 중요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언젠가 하던 말을 멈추고, 남편 말 끝에 바로 거실 서재를 설치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업체를 소개받았다. 거실 서재만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었는데, 이것저것 묻고 가격도 물었다. 또 이사를 갈 경우 재설치 가능 여부도 물었다. 알고보니 재설치 비용을 주면 충분히 재설치도 가능했다. 이사갈 것을 대비한 맞춤 디자인도 있었다. 가격대도 서재 디자인도 정말로 다양했다. 해당 까페에 들어가 나와 남편, 아이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고, 이모(베이비시터)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참여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고, 최대한 빠르게 설치해달라고 했다. 일단 마음을 먹고 나니 일은 속사포로 진행됐다.
 

20150429_155944.jpg » 거실 서재 공사하는 모습. @양선아

 


드디어 거실 서재 설치하는 날, 맞춤 제작하시는 분이 오셔서 거의 반나절 공사로 우리 집에 딱 맞는 서재가 생겼다. 그림 그리고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화이트 보드로 문을 맞추어 넣었고, 우리 집에 있는 책들과 아이들 장난감 크기에 맞게 적절하게 수납 공간도 마련했다. 아이들과 책과 장난감, 각종 용품 정리를 하니 우리 집이 새집 같았다. 아이들이 마구 낙서했던 벽이 가려지니 한결 집이 깔끔해졌다. 여기저기 쌓여있던 책들을 아이들 책, 엄마아빠가 보는 책으로 나눠 잘 정리해놓으니 책 찾기도 편했다. 거실 서재를 설치한 뒤, 싼 소파를 하나 샀다. 소파에 앉아, 소파에 누워 책을 보면 좋을 것 같아서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우리 집에 한동안 집에 너무 빨리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거실 서재를 하니 너무 좋아했다. 책을 좋아하는 봄이는 책을 더 자주 많이 읽게 됐고, 책을 건성건성 보는 여름이는 각종 책을 제 마음대로 빼서 책 쌓기 놀이 등을 한 뒤 다시 책을 꽂는 등 책을 가지고 좀 더 놀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내 서재에서 그날 기분에 따라 책을 쏙 골라 몇 장이라도 읽는 시간이 마치 도서관에서 뒹굴거리는 느낌이라 너무 행복했다. 또 책꽂이에 화이드보드 문을 설치해 텔레비전을 가릴 수 있게 만든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텔레비전이 눈에 보이면 텔레비전을 자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화이트보드로 가려놓으니 텔레비전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다. 또 화이트 보드에 그날 내가 출근하면서 아이들과 이모에게 잊지 말아야 할 사항들을 적고 나올 수 있고, 자석으로 학교에서 온 각종 알림장이나 프린트물을 붙여놓을 수 있어 좋았다. 가족 모두의 메모를 한 곳에 공유할 수 있으니 거실이라는 공간은 소통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놀 수도 있고, 봄이가 여름이에게 글자나 숫자를 가르치면서 선생님 놀이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남편은 항상 지저분한 거실이 깔끔하게 정리되니 만족했다. 나나 남편보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모도 집 청소를 해도 보람이 있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이전에는 이곳저곳에 책이 너저분하게 있고 물건이 정리가 안 돼 아무리 청소를 해도 청소한 티가 나지 않는데, 거실 서재가 생긴 뒤 정리가 되니 너무 기분이 상쾌하다는 것이다.

 

20150430_150651.jpg » 텔레비전이 보일 때의 거실 서재 모습. @양선아

 

 민지_1~1.JPG » 보드에 그림 그리는 딸. @양선아

말로만 꿈꿔왔던 거실 서재 만들기를 실행에 옮기면서 가족 모두가 더 행복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말로만 꿈꿔온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말로만 아이들과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에 많이 갈거야 하고 하지 않았고, 말로만 여행 많이 다닐거야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지 못했다. 말로만 또 한 권의 책을 써야지 하고 아직도 써야할 책을 마무리 못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서’‘돈이 없어서’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등등 각종 핑계를 대며 말로만 꿈꾸는 나를 직시할 수 있게 됐다.
 
거실 서재는 그래서 ‘말로만 꿈꾸던 나’에서 ‘꿈을 실행에 옮긴 나’를 확인하는 그리고 꿈을 꾸더라도 실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거실 서재를 볼 때마다 나는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데 8년이나 걸렸단 말이지…. 미루지 말자. 하고 싶은 일은 그때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의 거실 서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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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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