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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올 사람만 알아서 따라오라는 무책임한 학교 수학

베이비트리 2015.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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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고통 줄이자 ⑦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수학 시간. 한 자릿수 덧셈 뺄셈 정도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실에서 아이들 사이에 ‘수학 점수’가 크게 벌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수 감각’을 비교하면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도 뛰어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확연히 갈린다. 대각선을 하나 그려놓고 양 끝에 0과 10을 적는다. 아이들한테 대각선 위에 5가 어디쯤 있는지 점을 찍어보라고 한다. 숫자 감각이 좋은 아이는 대번에 한가운데에 점을 딱 찍는다. 수 감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7이나 8, 더러 9가 있어야 할 곳에 점을 찍기도 한다. 경기도 인천 운서초등학교 1학년 김중훈 교사(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는 23일 “대각선 위에 점찍기, 거꾸로 숫자 세기, 1초 안에 점의 개수 세기 등을 활용해 아이들의 수 감각을 어림해 볼 수 있는데, 사실 수 감각은 영유아 때부터 큰 차이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수 감각 영유아 때부터 차이 큰데
교육과정에서 ‘개인차’ 배려 안해
앞 내용 모르면 진도 어려운 특성 탓
학년 올라갈수록 ‘수포자’ 많지만
학습 부진 보완 시스템 거의 없어

현행 수준별 수업·나머지 공부
평가·서열화가 목적…도움 안돼
교육계, 협력교사제 대안 제시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이런 ‘개인차’를 배려하지 않는다. 수학 과목도 수 감각과 수학 재능, 심지어 수학 장애 같은 차이마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초·중·고 수학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분량이 많고 어렵다. 수 감각이 떨어지는 아이들, 발달 단계를 고려할 때 수학을 공부할 ‘때’가 되지 않은 아이들, 부모가 세심하게 공부를 돌봐주지 않는 아이들은 저학년 때부터 수학에서 놓치는 부분이 차곡차곡 누적된다. 문제는 수학이 유독 ‘위계’가 강한 과목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배운 개념을 모르면 뒤에 나오는 내용을 배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번 뒤처지면 고학년이 돼서 수학을 따라가 보려고 해도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 동작구의 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군은 1학기 기말고사 수학 과목에서 100점 만점에 17점을 받았다. 김군네 반 정원이 34명인데, 그 중 70점을 넘은 친구는 10명 남짓이다. 김군은 “초등학교 수학 중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마친 부분이 있고 수학 시간에 잘 모르는 내용도 있는데, 학교에서 더 보충해주는 건 없다”고 말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17점이면 심각한 건데 학교에선 성적표만 달랑 보내주고 끝이다. 학생·학부모 상담이라든가 보완 방법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교육부에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를 보면 뭘 하느냐,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은 여전히 방치 상태”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공교육 체제 안에는 시범학교 정도를 제외하면 ‘학습부진’을 보완하는 시스템이 거의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수학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는 “아이들은 각자 새로운 내용을 배울 준비 상태가 매우 다른데도, 한국에선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학년으로 분류하고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수준으로 공부를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해당 학년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내용을 배우지 못했어도 가르쳐주지 않고, 출석일수만 채우면 상급 학년으로 올려 보내는 무책임한 교육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학습부진 보완 시스템 연구가 활발한 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반응 중심 개입적 접근’(RTI)으로 불리는 교육 모델을 보면, 교사가 발달, 정서, 학업적 측면에서 아이들을 관찰해 각자 특성에 맞게 분류한다. 학생들은 ‘주교사가 이끌어갈 수 있는 아이’ ‘보조 교사가 필요한 아이’ ‘특수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로 나뉜다. 이를 통해 학생들한테 개인차를 존중하는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교사들은 학생의 기초적인 학습 기술이 정상화되도록 최대한 돕는다.

한국에서는 수학과 영어 등 성적 차이가 큰 과목을 ‘수준별 수업’이나 ‘나머지 공부’로 보완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둘 다 경험해 본 현장 교사들은 부정적인 견해가 훨씬 우세하다.

경기도 고양시 신능중에서 2학년 수학을 가르치는 김성수 교사는 “수준별 수업은 우반이나 열반 모두한테 최악”이라고 짚었다. 사실상 평가와 서열화가 목적인 한국 교육에선 아무리 우수한 아이들도 시험에 나오는 수준에서 똑같이 가르칠 수밖에 없다. 우반이라고 해서 시험에 내지 못할 심화된 내용을 가르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우반 아이들은 경쟁의식을 더 느끼면서도 수업 자체는 지루해 한다.

반면 열반 아이들은 열패감을 느끼고, 노력하면 나아지는 부분마저 그냥 포기해 버린다. 나머지 수업도 한국적인 상황에선 별 효과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김성수 교사는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을 다니는 게 일종의 ‘문화’라 나머지 수업을 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따로 남아서 공부를 하는 데 수치심을 느낀다”며 한계를 짚었다.

교육계에서는 협력 교사제를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으로 본다. 김해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참교육실장은 “협력 교사제는 수학처럼 수준차가 큰 과목은 한 교실에 교사 두 명이 들어가고, 협력 교사가 학습부진 학생들을 도와주는 제도다. 아이들이 실패한 이후에 뒤늦게 보충하는 대신 학습부진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다만 교사 수를 크게 늘려야 하는 인력과 예산 문제, 교사를 주교사와 보조교사로 나누는 어려움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천보선 전교조 전 참교육실장은 “바람직한 발달의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수학 등 학습 포기자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천 전 실장은 “중·고교에서 학습부진 아이들을 보완해주는 건 어쩌면 대증요법”이라며 “학습부진의 원인은 유·초등 시기에 발생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 대한 조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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