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내 인생의 삼겹살
가수 김창기의 삼겹살 사랑…고 김광석과의 마지막 식사도, 아들과의 대화도 삼겹살
‘내 인생의 삼겹살’이란 원고를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아내에게 우리가 먹었던 ‘최고의 삼겹살’이 언제 어디서 먹었던 것이었느냐고 물어본다. 아내는 우리 집은 평생 삼겹살을 끼고 살았기에 비교평가란 불가하며, 또한 우리 집은 대한한돈협회로부터 당연히 수여받았었어야 할 공로상을 어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는 집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맞는 말 같다. 그런데 협회는 어떻게 내가 가끔 수입 삼겹살을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베이비붐 세대의 꼬리를 잡고 태어난 나는 우리 세대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고기와는 친할 기회가 없이 성장하였다. 고기는 명절 때 조금 맛을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우리들의 주된 단백질 공급원은 두부와, 동태나 꽁치 같은 생선들이었다. 물론 평상시에도 가끔 고기와 만나게 될 때가 있었지만, 그들은 국이나 찌개 위에 몇 조각 둥둥 떠다니는, 어른들의 몫인 ‘고체’였다.

삼겹살과 친해지게 된 것은 ‘부르스타’가 밥상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였다. 처음에는 자신을 돼지고기 로스구이라고 소개했던 이 유쾌하고 친화력이 좋은 친구 삼겹살은 곧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대학생 시절 나에겐 알리지도 않고 은근슬쩍 돼지고기 로스구이에서 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서 삐치기도 했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의 또다른 절친인 소주와 함께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고기와 먼 베이비붐 세대
노래로 삼겹살 처음 접해
아내 몰래 한밤중 단합
아들 삼겹살 교육 시작

대학을 다닐 때에는 선배들이 사줘야 먹을 수 있었지만, 가수를 하며 돈을 만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회식은 거의 늘 삼겹살집에서 했다. 죽은 광석이와의 마지막 식사도 삼겹살집에서였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삼겹살을 매우 좋아하는 아내와 결혼을 하였기에, 우리 부부는 동네 정육점 사장님과 친해졌고, 덕분에 아이들도 대를 이어 삼겹살과 절친들이 되었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었던 삼겹살은 아내에게는 비밀이다. 아들과 내가 아내 몰래 야식을 먹을 때 구워 먹던 삼겹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내는 아이가 살이 찐다며, 또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며 삼겹살 굽기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삼겹살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다. 아내가 잠들면 우린 몰래 빠져나와 키득거리며 숨겨두었던 삼겹살을 구웠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아내가 금지한 콜라 한잔을 따라주고, 내 잔엔 소주를 따른 후 소리 나지 않게 건배를 했었다.

삼겹살을 한입 물면 저절로 반달이 되는 웃음 가득한 아이의 눈과 오물오물하는 아이의 입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사는 맛이구나. 사는 맛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정말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구나!

공룡 이야기로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이의 이야기는, 아이가 커감에 따라 로봇 이야기, 디지몬 카드 이야기, 원피스 이야기, 축구 이야기, 아이돌 이야기, 친구들과의 관계와 싸움 이야기, 학급 내의 정치적 역동 이야기와 뉴스에서 본 나쁜 어른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공부 이야기, 공부 이야기, 또 공부 이야기…. 그렇게 우리의 야밤의 밀회는 시들어갔다.

이제 아들과의 밀회는 더 이상 없다. 내가 가끔 한밤중에 고기를 굽고 소주잔을 기울이면, 아이는 가끔 자기 방에서 나와 고기를 한두 점 집어먹고 별말 없이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가수 겸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가수 겸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만 아이는 삼겹살과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대학생이 된 녀석은 얼마 전 자기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삼겹살 불판에 화상을 입었다. 쌤통이다, 이놈아. 아빠를 빼놓고 너희들끼리만 논 죄에 대한 벌이다! 다음에 아들이 내 삼겹살을 뺏어 먹을 때에는 슬그머니 소주 한잔 건네야 하겠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가수 겸 신경정신과 전문의


(*위 내용은 2015년 8월 12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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