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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에 아파트에 살다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났더니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새 집은 끼고 있는 텃밭도 넓었고 산에 바로 붙어 있는 데다가 2층까지 있었다.

이사오자마자 개를 기르기 시작했고, 남편은 야심차게 뒷 마당에 닭장까지 지어 닭 열마리를

풀어 놓기까지 했던 것이다.

개와 뛰어 놀고 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깨는 싱싱한 전원의 생활을 즐기자는 건 정말이지

현실을 잘 모르는 순진한 기대였다. 아침이면 개집앞에 수북히 쌓여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개똥 무더기를 치우는 일 부터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갓 낳은 달걀을 꺼내는 일은 또 어떤가.

덤벼드는 힘센 장닭들과 닭똥냄새를 맡으며 알을 꺼내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남편이 출장가면

며칠이고 알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 일도 거저 될 리 없다.

새 집에서 사는 일은 모든 것이 '힘'과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힘든일은 모두 내가 하겠다고 큰 소리 치며 이사를 반대했던 남편을 설득했던 나는

대놓고 남편에게 불평은 하지 못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한창 체력이 좋아지는 아홉살 아들과 다섯 살, 두 살, 세 아이들을 일꾼으로 부려먹을 생각을 한 것이다.

평소에도 '공부해라'라는 소리는 해 본 적이 없는 나지만 아이들이 집안일을 돕는 것은

무지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내가 여기는 만큼 아이들이 잘 도와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줄기차게 아이들을 부려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 던 때와 너무나 다른 새집 환경에서 처음에 아이들은 신기하고

호기심에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밭을 갈고, 처음으로 감자를 심고, 처음으로 오이를 따고, 처음으로 풀을 뽑을 때만 해도

내 계획은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꾀 많은 큰 녀석은 이내 심드렁해지더니 금방 힘들다고

도망쳐 버리곤 했다. 아파트 살 때야 밤 따러 가는 일이 신나는 모험이었지만 밤나무가 잔뜩 있는

집에 살면서 며칠씩 밤을 털다보니 이제 지겨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는 부탁하고, 엄포를 놓고, 때론 당근으로 살살 꾀어 가면서

아이들 부리는 일에 머리를 쓰고 있다. 바쁘고 힘들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것이

시골 생활 인 탓이다.

 

며칠전엔 김장을 하느라 앞 집 밭에서 산 배추를 집까지 날라야 했다.

남편이 허리를 다쳐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30포기 배추를 집 마당까지 나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집은 동네에서 제일 가파른 언덕을 올라와야 마당으로 들어서게 되다보니

무거운 배추를 실은 수레를 밀고 올라오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한 수레에 천원씩 주게다고 아들을 꾀었다. 돈 천원에 넘어 온 아들은 배추를 실은 수레를 끌고

언덕을 낑낑거리며 올라오다가 결국엔 다섯살 동생이 뒤를 밀어야 했다.

딱 두 번 하더니 돈 더 준다고 해도 힘들다며 도망치긴 했지만 그럭 저럭 나를 수 있었다.

아직 오빠만큼 꾀를 낼 줄 모르는 어린 여동생들은 큰 도움이 안되더라도 일단 신이 나서 달려든다.

 

아파트에 살 때야 재활용 쓰레기 치우는 일은 늦게 퇴근한 남편이 척척 알아서 했었다.

새 집에서는 집에서 100미터 쯤 되는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 삼거리에 있는 로타리까지

쓰레기들을 날라야 했다. 늦게 퇴근하거나 출장이 잦은 남편이 신경을 쓰지 못하면

쓰레기들은 금방 수북하게 쌓였고, 집 밖에 내 놓은 쓰레기들은 길냥이들이 헤쳐놓아 지저분하게 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세 아이들과 함께 삼거리까지 쓰레기 나르는 일에 돌입한다.

아들녀석은 툴툴거리면서 제 몫만 하고 쌩하니 달아나버리고 다섯 살, 두 살 여동생들도

제 힘 닿는 만큼 한 몫을 한다.

 

 아이들 3.jpg

 

처음엔 막내까지 일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뭐든지 오빠 언니가 하는 일은 저도 해야 하는 막내는 기어코 둘째가 끄는 장난감 수레를

제가 끌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장난삼아 실어준 비닐 쓰레기들을 너끈히 싣고 삼거리까지

끌고 가는 것이었다. 가는 길에 차가 오면 애를 챙기는 일이 더 힘들었지만 그다음부터 두 살 막내도

꼭 제 수레를 끌고 일을 돕는다. 다섯 살 둘째는 제일 열심히 도와주는 착한 딸이다.

 

새 집에서 살아온 1년 동안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

강낭콩을 따서 꼬투리를 벗기는 일, 개밥을 챙겨주고 놀아 주는 일(이것도 중요한 일이다)

지붕위에 올라가 감을 따고, 닭장 만드는 일을 돕고, 죽은 개를 묻어 주고, 장작을 나르고

냉이를 캐고, 오이와 상추, 고추를 따고, 이웃집으로 심부름을 다니고, 탈곡기로 낱알을

털어 보기도 했다.  때로는 어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가르쳐가며 일 하나 시키는 일이

더 더디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나 하나 배워가며  같이 하는 아이들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는 큰 도움이기도 했다.

 

나는 공부 잘 하는 아이보다 집안일 척척 잘 도와주는 아이들이 더 좋다.

앞으로도 공부 하라는 말보다 일 좀 같이 하자는 말을 더 많이 하며 살 것이다.

수학이나 영어를 잘 하는 아이보다 텃밭을 잘 돌보고 집 짐승들 잘 챙기면서

제 빨래는 제가 개키고, 설걷이도 돕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작은 일이지만 제 몫을 해 내고, 그 일이 주는 기쁨을 알아가면서 집은 가족 모두가

함께 돌보고, 지켜가는 것임을 깨달아 간다면 더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며 세 아이들을 부려먹을 생각에 열심이다.

이제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니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더 늘어나리라.

아홉살 아들이 남편과 함께 척척 장작을 도끼로 패는 날은 언제나 올라나.

조금씩 부려먹다 보면 그런 날도 오겠지?

공기 좋은 곳에서  몸 많이 움직이며 놀고 일하는 덕분에  병원을 모르고 사는 세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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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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