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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유치원 들어가던 날…나비처럼 전철역 날았네

베이비트리 2015. 06. 22
조회수 2105 추천수 0
00533831701_20150620.JPG 엄마야말로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으로서도 필요하고 그 충만함은 아이들에게도 흘러간다. 2013년 6월, 결혼 11주년 기념으로 집 앞마당에서 가족이 모였다. 왼쪽부터 윤정(9), 이룸(6), 필규(13) 그리고 남편인 최돈거(49). 올해도 같은 장소에서 가족사진을 찍으련다. 신순화 제공
[토요판] 인터뷰 ; 가족
혼자 있고 싶은 엄마
▶ 육아 블로거 신순화(46)씨가 마음속에 적어온 할 일 목록은 이랬습니다. 중간에 깨지 않고 길게 자기, 읽고 싶은 책 끝까지 보기, 좋아하던 거리를 천천히 걷기, 새 옷이 걸린 가게에 들어가 맘 놓고 구경하기, 밥해 먹기 싫을 때 안 하기… ‘인터뷰; 가족’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 지급과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지난 3월, 여섯살 셋째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여섯시간의 자유가 나에게 주어졌다. 하루 반나절을 내 맘대로, 나 혼자 보내게 된 건 꼬박 결혼 13년 만이었다.

서른둘에 결혼해 이듬해 첫째를 낳고, 4년 뒤 둘째를, 그리고 다시 3년 뒤인 마흔살에 셋째를 낳아 기르는 동안 아이는 샴쌍둥이처럼 늘 나와 한몸이었다. 부엌에서도, 목욕탕에서도 하다못해 볼일을 볼 때에도 아이들은 나를 혼자 놔두지 않았다. 아이들은 너무나 예뻤지만 아이들이 내게 바라는 관심과 원하는 돌봄은 자주 나를 숨막히게 했다. 미칠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웠다.

큰애가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면, 둘째가 입학만 하면, 하고 기다리던 나는 마침내 막내가 유치원에 들어간 올 3월 그렇게 바랐던 자유의 시간을 누리게 된 것이다. 언니가 다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막내를 두고 나 혼자 걸어오던 날의 감격과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남편이 닷새간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날, 아이들을 먼저 재우고 모처럼 남편과 수다를 떨었다.


유모차 없이 계단 오르내린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고작 하루 여섯시간이지만
이제 ‘나’와 함께 지낼 수 있어

남편
직장생활 쫓겨서 집에 와도
당신의 ‘도끼눈’ 눈치채면
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
이제 맘대로 나가, 내가 볼게

남편 애들 다 학교 보내고 혼자 집에 있으니까 좋냐?

 그럼, 좋지. 완전 좋지.

남편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하고 싶은 일 많다더니, 다 하고 있는 거야?

 하긴 뭘해. 아직 영화 한 편도 못 봤어. 그게 참, 애들 다 보내고 혼자 남게 되면 우아하게 브런치나 먹으러 다니려고 했는데 브런치는커녕 애들 아니어도 할 일 엄청 많아. 그래도 뭘 하든 애들 신경쓸 일 없으니까 수월하지. 애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종일 끝내지 못하던 일들을 지금은 한두 시간 안에 다 해낼 수 있으니까. 가끔은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서 멍하니 가만히 있는데… 이게 정말 좋은 거야. 애 키우는 동안 정말 소원이었거든.

남편 별게 다 소원이다.

 당신이 애랑 24시간을 있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 세 아이하고 한번 하루종일 같이 있어봐.

남편 애들이 나랑 있을 때는 저희들끼리 잘 놀더만. 아빠 잘 찾지도 않더라.

 지금이야 어지간히 컸으니까 그렇지. 막내 태어나서 한 일년간은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어. 큰애는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챙겨야 할 것이 많았지, 네살 둘째도 늘 나랑 붙어 있으려고 했지. 당신은 출장도 자주 갔잖아. 남편 없이 혼자서 살림하면서 애 셋 돌봐 봐. 한꺼번에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아, 그 시절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애들 셋을 띄엄띄엄 낳는 바람에 결혼 생활 내내 육아였다. 마흔에 셋째까지 낳고 젖 먹일 때가 제일 힘들었다. 종일 살림하고 애들 돌보고 밤새 수유하고 나면 새로 늘어난 집안일이 나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도미노 같았다. 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면 바로 옆에서 또다른 아이가 새로운 문제로 도미노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늘 정신없이 넘어지는 도미노를 세우는 일이 내 일상이었다.

내 몸은 영혼이 훅 빠져나간 껍데기 같았다. 내 감정, 욕구, 의지, 생각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늘 누구의 엄마로 쫓기다 보니 마음이 허기졌다. 좋아하는 글 한줄 못 읽고 하루가 가거나, 단 한가지라도 진득하게 생각하지 못한 날에는 이게 정말 내가 사는 건가, 누가 나를 살아주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땐 엄마고 뭐고 다 말고, 그냥 ‘나’인 채로 나만 돌보고 싶었다. ‘나’와 있고 싶었다.

 재작년인가? 막내가 젖 끊었을 때 주말에 강의 요청이 들어와서 당신한테 애들 셋 맡기고 반나절 동안 집을 비운 적 있었잖아. 주말에 나 혼자 나가본 게 결혼하고 처음이었어. 전철역 계단을 뛰어오르는데 날아갈 것처럼 행복하더라. 늘 애들 손을 잡고, 애들 속도에 맞추어 유모차를 옮길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다가, 나 혼자 훌쩍 계단을 뛰어오른 거야. 그 시절 내게 간절했던 것은 그런 것들이었어. 나 혼자 내 속도로 걸어보는 것, 걷다가 아무 곳이든 멈출 수 있는 것,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입을 다물어보는 것. 그 시절엔 당신이 정말 부럽더라.

남편 뭐가?

 당신은 주말도 있고, 휴가도 있고, 퇴근도 있고, 하다못해 출장도 다니고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짬짬이 담배 피우는 시간이라도 있으니까. 게다가 당신은 집에 있을 때도 수시로 담배 피운다고 슬며시 사라지지. 차라리 나도 담배를 피울 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다 했었다고.

남편 피우지 그랬냐?

 말을 꼭 이렇게 밉게 해. 담배 한대 피울 단 10분, 5분이라도 나 혼자 있어 보고 싶었다는 뜻인 걸 알면서.

남편 그래도 당신은 어쨌든 자식이잖아. 힘들어도 애들이니까 견딜 수 있지만 직장생활은 안 그래. 다 상하관계고 일로 엮인 사람들하고 지내는 거,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주말이든, 휴가든, 퇴근을 하든 나 혼자 있냐?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출장 가면 내내 운전하거나 현장에서 일하다가 집에 와봐라. 얼마나 피곤한가. 주말에 낮잠이라도 자야 다시 기운차리는데, 당신이 도끼눈 뜨고 바라봤잖아. 낮잠만 자면 바가지 긁고… 당신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힘들었네.

남편은 내 불평에 늘 억울해한다. 사실 남편은 무던하고 좋은 사람이다. 짜증 많고 신경질 많은 마누라를 잘 참아준다. 남편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 애쓰고 있는데, 마누라는 좀처럼 만족을 하지 않으니 속상하기도 했겠지.

 당신하고 연애도 짧게 하고, 결혼하자마자 셋째까지 낳아 기르는 동안 생각해보니까 당신하고 친해질 시간이 없었더라.

남편 그래서 지금 안 친한 거 같아?

 아니지, 전보다 많이 친해졌지. 요즘 우리, 제법 좋잖아? 육아가 조금 헐렁해진 것도 있고. 전에 애들 어렸을 때는 많이 안 도와주네, 매일 늦게 오네, 주말엔 낮잠만 자네 하며 당신 원망 많이 했는데 지금은 뭐랄까, 같이 늙어가는 사람에 대한 애잔함이랄까? 서로 애쓰며 살아온 세월이 있다는 걸 아니까 그냥 고맙고 그래.

남편 다행이네.

 나도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고 내가 하고 싶던 일들 하나씩 하고 있으니까 좋아. 만 12년을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살았지만 이제부턴 당신하고도 제대로 친해보려고.

남편 어이쿠, 겁나네.(웃음)

 누구나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특히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이런 시간이 정말 절실하지. 나부터 충만해져야 애들한테도 편하고 기쁘게 흘러갈 수 있잖아. 당신도 부지런히 그런 시간 만들어서 누려. 필요하면 혼자 외출해도 상관없으니까. 아, 그리고 한가지 더. 막내까지 초등학교 들어가면 난 육아 안식년 들어간다. 일년이 안 되면 일주일만이라도 쓸래.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내 맘대로. 알았지? 당신도 떠나고 싶을 때 떠나. 내가 뒷감당할 테니.

남편 그러세요. 맘대로 하세요.

젊은 시절엔 연애가 늘 어려웠다. 기대했던 관계는 번번이 상처로 끝나고 여동생이 먼저 출가를 한 뒤에도 친정엔 내가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애인 없는 주말에 나는 혼자 지냈다. 거리를 걷고 찻집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자유로웠으나 늘 외로웠다. 혼자라는 사실이 지긋지긋했다. 명절이면 아이들에게 예쁜 옷을 입혀 시댁으로 향하는 언니들이 부러웠다. 결혼, 아이들, 남편, 가정… 그 시절엔 이런 것들이 내게 간절했다.

인생은 돌고 돌아 나는 마침내 결혼을 했고, 세 아이를 낳았다. 듬직한 남편과 보기엔 안락해 보이는 가정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바라고 바랐던 육아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훨씬 더 힘들었다.

남편 맨날 잠잘 시간도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블로그는 어떻게 했냐?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더만, 그게 다 혼자 보내는 시간 아니었어?

 애들 셋 다 재워놓고 밤잠 줄여가며 썼지. 그러다 아이 옆에 달려갔다 다시 재우고 돌아와서 또 몇 줄 쓰고. 그것마저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애 키우면서 힘들고 외롭고 속상한 것들을 블로그 이웃들과 나누는데, 그들의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되더라고.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시간을 좀 마련해줄 생각은 도무지 안 하더라. 애들 셋 다 봐줄 테니, 바람이나 쐬고 오라거나, 뭐 이런 게 별로 없었잖아.

남편 애들이 당신 잠깐만 안 보여도 찾고 난리인데 그런 애들 나한테 다 맡겨두고 나가면 맘 편하게 지낼 수 있기나 하냐? 분유도 아니고 다 젖을 먹여서 당신 아니면 맡을 수도 없었고. 내가 싫었던 게 아니고 상황이 그랬다고.

 흥, 당신은 애들 핑계 대기만 하고 일부러 노력하지도 않았거든요? 하긴 그렇게 억지로 떠맡기고 나왔어도 내가 편치 않았겠지만.

남편 이젠 맘대로 나가셔. 내가 다 볼 테니까.

누구의 아내나 엄마, 이웃이 아니라 그냥 ‘나’로 있는 시간. 별게 아닌데 닿을 수 없던 그 시간 속에 드디어 섰다. 고작 하루에 여섯시간이지만, 그마저도 약속과 일정으로 빼곡하지만, 원하면 모든 걸 취소하고 내 시간 속에 있을 수 있다. 아, 내게도 이런 날들이 오다니. 마흔여섯에야 이런 시간 속에 서보다니.

신순화/‘평온한 강가에서’ 육아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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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안녕하세요, 베이비트리 운영자입니다. 꾸벅~ 놀이·교육학자 + 소아과 전문의 + 한방소아과 한의사 + 한겨레 기자 + 유쾌발랄 블로거들이 똘똥 뭉친 베이비트리,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꼭꼭 싸놓지 마세요. 괜찮은 육아정보도 좋고, 남편과의 갈등도 좋아요. 베이비트리 가족들에게 풀어놓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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