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이 잘 키우려면 스스로 행복하라

하태욱·차상진 201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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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94169_P_0.jpg 칼럼에서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시쳇말로 ‘너나 잘해’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던져놓았습니다. 사실 이건 무책임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아이에게 열심히 사는 모습, 즐겁게 사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돕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그렇게 된다는 거지요. 가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이의 교육에도 무척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예전에 유학할 때 지도교수님이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보다 교육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마트에 갔는데 아이가 뭔가 사달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빡빡한 살림, 피곤한데다 장 보면서 심란해진 노동자 계급의 부모는 별로 아이의 욕구에 귀기울여 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들어주지 않으니 서서히 ‘땡강’ 모드로 돌입합니다. 엄마는 아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말합니다. ‘엄마가 이럴거면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버리고 가기 전에 조용히 해!’ 아이는 징징 울고 엄마는 아이 팔을 낚아채 끌고 가고. 대충 이런 장면이 상상되는 거죠.


그런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의 부모는 차분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뭐가 먹고 싶어? 그럼 ○○이가 먹고 싶은 거 한번 골라봐. 이빨 썩으니까 사탕 같은 건 안 되지만 아이스크림 같은 건 괜찮아.’ 중산층 부모는 특별한 교육적 자각 없이도 수많은 교육적 행위를 했습니다. 먼저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줬죠. 그리고는 아이의 욕구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줬지요. 그럼에도 엄마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열어준 겁니다. 이런 작은 행위들, 태도들이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사교육비 지출규모 같은 수치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실제로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교육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큽니다. 그렇다고 소득이 많으면 무조건 교육을 잘하고, 소득이 적은 부모가 항상 자녀교육을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부모가 자기 삶에 만족도가 높고 행복감을 느끼며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교육적인 행동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과 태도는 아이들의 성장에 학습지나 학원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최근 자녀교육과 관련된 책을 내신 법륜 스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자기 상처를 치유해서 자기 스스로 건강해져야 해요. 내가 건강해져야 남편도 사랑할 수 있고 자식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상처 받은 마음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중략> 부모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상처의 독기를 아이에게 뿜으면 아이는 잘 성장할 수가 없어요. (법륜, <엄마수업>)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의 대안학교 써머힐 (Summerhill School)을 설립한 교육자 닐 (A. S. Neill)은 ‘문제 아동은 없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아이에게 하는 많은 이야기들과 행동들은 모두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을 담고 있지만, 실상은 나의 가치관을 주입하거나 내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상처들을 심리적으로 왜곡해 낸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자이며 건강한 여성되기를 위한 운동을 펼치시는 문은희 선생님은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라는 책에서 가정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부모의 뒤틀린 욕심이 아이들을 ‘존중받지 못하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태도와 행동들이 쌓이면서 아이들을 위한다는 부모의 교육적 행위가 결국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겁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 상처가 없는 사람,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나의 행복 뿐만 아니라 아이의 성장이 함께 달려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 스스로가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예전에 트위터에서 본 글입니다.

 

음치가 음악을 가르칠 수 없고,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가르칠 수 없듯이 자존감이 약한 부모가 자녀의 자존감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itmembers)

 

우리 스스로 한 번씩 되물어 봅시다. 나는 행복한가?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하던 질문도 바꿔봅시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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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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